가을이 늘 아쉬운 건 짧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짝 열다가도 어느새 닫아버리는 가을의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활짝 핀 가을을 만나러 멋있게 단장을 하고 나갔지만
갑자기 몰려 온 심술궂은 차가운 바람에 마음이 닫힌 일이 어디 한 두번 이겠는가?
그래도 기어코 다시 가을을 만나기 위해 나서는 이유는 너무 아름답지만 짧아서 안타까운 가을의 마음을 담아 두기 위함이니
그 가을의 마음이란 것이 무엇일까?
오래도록 머문 먼 친척보다 잠깐동안 함께 한 친한 친구가 더 그립듯이
짧게 지나갈 이 가을이 여전히 더 그리울 것이기에
우울한 가을 하늘을 보고 같이 우울하기보다 그 우울함을 감싸안아 줄 마음이 더 필요하고
낙엽이 뒹군다고 내 마음까지 마음대로 뒹굴도록 팽겨치지도 말며
곧 떠나갈 친구의 손을 꼭 잡듯이 그 마음을 깊이 담아 둘 일이다.
가을의 마음은 때로
오랜 시간의 무게에 눌린 빛 바랜 나뭇잎 속에 추억처럼 숨어 있기도 할 것 이고
서늘한 햇빛에 움츠린 구름 몇 점이 데리고 다니는 바람 서너 무더기 속에서 숨어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을 찾아 가을이 가기 전에 올 해도 가을의 마음을 앨범 속에 채워둬야 할 일이다.
가을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여름이 주고 간 흥분과 낭만을 추스리면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여름 옷을 잘 접어 옷장 속에 넣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가을 옷을 입는다는 건 쌀쌀해진 바람으로 부터 내 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의 마음을 감당하기 위해 먼저 내 주위를 정리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세밀히 다가갈수록 가을은 그 마음을 조금씩 연다.
가을의 마음을 여는 건 첫 사랑에게 조금씩 다가서는 것처럼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늘이 맑고 높아졌다고 들 뜬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서면 쌀살한 바람이 메섭게 산통을 깨는 수가 있으니 서두를 일이 아니다
가을을 만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자전거를 타고 노랗게 물든 가로수 길을 휘파람 불면서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다.
때로 나뭇잎에 윙크를 보내도 좋을 일이다.
그러면 떨어지는 낙옆 위로 햇살이 반짝 스치고 그 때 가을의 마음은 이미 열려 있을 것이다.
휘파람과 낙옆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그 위로 춤추는 가을 햇살
가을의 마음 속으로 점점 들어가면 가을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할 것이다
그 때 당신은 가을 낙옆을 먹고 있을 수도 있으며
자전거에서 내려 잔듸 위에 누워 가을과 소곤거릴 수도 있으리라
예전에 내가 들은 가을의 이야기를 하나만 전해주면 이런 것이다.
“난 봄처녀였어
흰 구름같은…
여름의 소나기를 만나 어느 샌가 엄마가 되어 아들을 낳았단다
번개같은 놈이었지.
틈만 나면 이리 번쩍 저리 번쩍거리며 돌아다니는 놈을 낳았는데
그래도 어릴 적엔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곤 칭얼대곤 했었지
그러던 어느 여름 날
봄처녀를 만나더니 엄마를 떠나 훨훨 날아갔어
내 가슴은 낙옆처럼 뒹굴면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거야
내 아들이 날 떠나기 전 자주 날 위해 불러줬던 그 휘파람 소리”
가을의 가슴은 이미 젖어 있었고
난 그 위로 얼굴을 묻을 수 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
해마다 가을을 만나고
그 때마다 가을의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난 이번 가을에도 여전히 가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을 수 밖에 없으리라
가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