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11월 5일 <법륜스님 희망세상 만들기 세계 100회 강연-캘거리편>에 참석하여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 시간 가까운 긴 시간동안 불편한 자리에서 경청해 주신 분들, 자신의 고민을 어렵게 내놓으신 분들, 멀리서 비행기 타고 운전하고 찾아오신 분들, 책을 구입하신 분들, 크고 작은 보시를 해주신 분들, 사정이 있어 못 오셨으나 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분들 모두께 감사드립니다. 또, 전체 행사를 물흐르듯 매끄럽게 만들어주신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교민들이 잘 알고 찾아오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홍보해 주신 CN드림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모두들 조금더 즐겁고 행복해지셨기를 기원합니다.
한분한분이 마음에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다음날인 11월 6일 미국 시애틀에서 있었던 74번째 강연에서의 스님의 여는 말씀을 함께 나누며,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즉문즉설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고뇌와 의문들을 여러분들이 구체적인 사실을 갖고 던지게 되면 저와 함께 대화를 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해나가면서 그 대화 중에 무겁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괴로운 마음이 조금 사라지고, 답답한 것이 조금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하면서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대화를 하면서 문제가 개선될까요? 그것은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주로 한 측면만을 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부모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한국사람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하는 것처럼, 한 측면에서만 사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사물의 전모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말해요. 저와 대화를 하면서 앞면만 보는 사람에게 ”뒷면은 어때요?“ 하고, 옆면만 보는 사람에게 ”저쪽 옆면은 어때요?“ 하고, 윗면만 보는 사람에게 ”아랫면은 어때요?“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다른 면을 보게 되면 그냥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면까지 보게 되면서 사물의 전모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아내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남편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한국 사람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일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기독교인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불교나 다른 종교의 입장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전모를 볼 수 있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고, 이 통찰력을 ‘지혜’라고 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깜깜한 방에서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아서 더듬어서 어떤 사물을 찾는데 이때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모를 보면, 즉 불을 확 켜서 보면 ‘아, 저기 있네’ 하고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통찰력을 갖게 되면 무겁던 마음이 금방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대화를 해가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문제지만, 저렇게 보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자기 입장에만 서서 생각에 사로잡히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거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게 참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될까요?” 하는 질문이나 “이것이 정말 있나요?” 하는 질문처럼 단순히 ‘되고’, ‘안되고’ 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도 어떻게 사물을 봐야 하는지의 관점에서 우리가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설명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편안하게 얘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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