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물고기 / 허영숙
흔들려야 바람을 읽을 수 있는 산사 추녀 끝 저 청동물고기는 몇 백 년 전쯤 내가 단청장이였을 때 매단 것인지도 모른다 일주문 밖에서 반배를 올리던 목련 봉오리처럼 참한 곡선을 지닌 너를 본 후 가슴에 사모의 별지화를 그려두고 너를 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추녀아래 긴 목 빼고 붓질하는 나를 소리가 날 때마다 올려다보라고 매달았을지도 모를 청동물고기 너는 목련처럼 내게 짧게 피었다 사라지고 붓끝을 따라다니던 내 간절한 기도도 사라지고 달의 옆구리를 돌아 나오는 몇 겁을 지나, 절터 한 귀퉁이 연못의 붉은 잉어로 다시 태어난 내가 몇 백년 전의 숨결을 물고 흔들리는 청동물고기를 올려다보는 밤 달빛에 숨구멍이 모조리 말라 추녀 끝 청동물고기되어 매달린다면 바람으로라도 한 번 쯤 나를 읽어달라고 온 몸 휘저어 물결의 산조로 너를 부르는 그 때 연못가 백목련 꽃잎이 한 잎 두 잎 고름을 풀며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별지화別枝畵 : 사찰 단청시 쓰이는 회화적 기법의 장식화
경북 포항 출생 부산여대 졸 2006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詩集, <바코드 2010> <시마을> 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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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저에게 있어, 사찰寺刹은 그 어떤 종교적인 장소의 의미보다도 포근한 장소로서의 의미가 더 많은 거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어릴 적에 독실한 불자佛子이셨던 외할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절을 많이 찾았던 기억에 연유緣由하는 것 같고 특히 기억에 남는 사찰은 집에서 가까왔던 서울 안국동安國洞에 자리한 '선학원禪學院'이었는데, 늘 고요한 곳이란 느낌이었죠 (근데, 무작정 고요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선학원에 무지 살찐 스님이 한 분 계셨었는데 어느 날, 그 스님보고 저게 바로 전생에 못먹어 굶어 죽은 <아귀餓鬼귀신>이라 했다가 머리에 김 나도록 스님에게 매를 엄청 맞았던 기억도..) - 웃음 각설却說하고 시를 읽으며, 전생前生에 단청장이었을 때 사모思慕의 흔적으로 남긴 '청동물고기'를 바라보는 '붉은 잉어'의 고적孤寂한 시선 때문인지 몰라도... 그냥, 그렇게 저 역시 어릴 적의 포근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네요 오늘 소개하는 시는 시적 대상對象과 화자話者의 의식意識간에 유려流麗한 조화가 일구어 낸, 한 편의 '고요한 아름다움'이라 할까요 시 . 공간의 차원을 뛰어넘어 먼 세월을 딛고 잔잔하게 이어지는, (영겁永劫의 바람결에 실린) 그리움의 깊은 정서情緖도 참 좋은 느낌으로 자리합니다 어쩌면 다소, 환상幻想적인 분위기도 느껴져서 그 환상 속으로 시인의 모든 감각이 빨려 들어간 듯한 인상도 있지만... 어차피, 시가 서로 차원이 다른 복수複數의 시 . 공간을 택하고 있기에 불가피한 시적 구도構圖인 것도 같네요 이 詩를 감상하면서, 언어가 한 생명을 획득하기까지 그 언어는 얼마나 오래 동안 시인의 가슴 속에서 아프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 희선,
何月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