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날 / 권터 아이히
너의 날은 잘못 간다 너의 밤은 황량(荒凉)한 별만 찼구나 百 가지 생각이 자꾸만 오고 百 가지 생각이 자꾸만 간다 너 기억하겠느냐 ? 일찌기 너, 다만 푸른 강 위에 뜬 한 조각배였더니 일찌기 너, 나무의 발을 가지고 이 세상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더니 너 다시 그리로 돌아가야만 하겠다 옛날의 비(雨)를 마시고 푸른 잎들을 낳아야 하겠다 네 걸음이 너무 성급하고 네 말과 네 얼굴이 너무 비겁하다 너는 다시 말 없는, 거리낌 없는, 차라리 보잘 것없는 한 마리 모기 혹은 일진(一陳)의 광풍(狂風), 한 떨기 백합이 되어야겠다
Gunter Eich (1907~1972) 독일 <레부스>에서 출생. 서구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중국문학을 전공하였고, 제 2차 세계대전의 광풍狂風에 휩쓸려 시베리아 포로 수용소에서 극심한 강제노역을 하다가 귀환. 하지만, 포로 시절에도 詩는 놓지 않았다. 시작활동詩作活動 이외에 방송국의 극작가로도 활동. 작품으로는, [Gedichte] [Untergrundbah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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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그리고 한 생각>
간명(簡明)하게 정의해 주는 詩를 만나면, 그 詩를 통해서 파악되는 내 모습도 선명해지는 것 같다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나의 날들은 정녕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깊은 눈 없이 세상을 바라 보았고, 가벼운 혀로 무거운 삶을 말했으며, 고단한 노력 없이 결과에 성급하기만 했다 그리고, 현실 앞에서 항상 비겁했다 또한, 내 고통은 언제나 남의 탓으로 돌리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정말 말 없는, 거리낌 없는, 차라리 보잘 것 없는, 저 한 마리 모기도 나보다 훨씬 정직하게 사는 것을 세상의 거센 바람에 부대끼면서도 정신을 놓지 않는, 저 한 떨기 백합(百合)이 나보다 훨씬 당당한 것을... 출발했던 최초의 항구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살아오며 헛되이 지나친 모든 것들에게 내가 그렇게 살아서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