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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대해서, 이정도 열정이시면 '개인' 혹은 '기독교' 블로그를 하나 따로 만드셔서들 의견을 서로 나누시는게 어떨까요? |
작성자 니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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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8382 |
작성일 2015-09-25 09:48 |
조회수 3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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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드림이 = Church N드림의 약자였나요?
이정도 열정이시면 '개인' 혹은 '기독교' 블로그를 하나 따로 만드셔서들 의견을 서로 나누시는게 어떨까요?
'자유'게시판이지만 너무 자신의 종교적인 '자유'를 이용해서 다른 유익한 정보를 얻으러오는 사람들의
'자유'에 방해가 되지않나 싶습니다.
예전과는 좀 다른 게시판의 양상을 보고 혹여나 간간히 찾아오던 CN드림 사용자들에게 혹여나
'외면' 받게 되어 캘거리의 유익한 정보교환의 장 하나가 퇴색이 될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글남겨 봅니다.
운영팀의 어느정도의 개입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바 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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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앞으로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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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런 요청이 많았어요. 그래서 수년전 종교게시판 따로 만든적 있었는데 제 기억에 1년동안 대여섯개의 게시물만 올라오고 말았던 적이 있어요.
이곳 동포사회가 이 LA나 토론토 규모가 아닌 이상 종교나 정치 게시판까지 따로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인듯 합니다.
그리고 이미 증명되었듯이 종교게시판을 따로 만든다는 것은 결국 종교 이야기를 일체 막으려는 의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유게시판에서는 어떠한 의견들도 나눌수 있으며 자율적이고 자연스러운 정화작용과 조율이 있기 때문에 (님께서 지적해주시는 것도 정화작용중의 하나로 볼수 있구요) 운영팀이 강제적으로 조정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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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그리고 이용자분들을 위해 제목을 상세하게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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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적인 명확한 대답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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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무 종교 이지만 이분들의 지식 나눔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늘봄님의 말씀은 종교는 사상인가 인간의 최대치한 상상력인가 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너무 유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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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이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종교적인 글에 관심이 없으면 읽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올리면 됩니다. 글에 대한 판단은 읽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글이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거나 어떤 개인에게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글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클을 거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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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자유롭게 의견을 쓰고 자유롭게 읽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읽는 사람도 읽고 싶은 것만 읽고 읽기 싫으면 안 읽으면 됩니다.
필요한 정보 얻는데 종교적인 글이 방해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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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의 본격적인 자유토론마당은 열린마당이었는데, 씨엔드림이 개인홈페이지에서 신문사홈페이지로 바뀌면서 알버타의 주요 웹싸이트가 되었습니다. 씨엔드림에서 종교토론방도 여러분의 요청으로 생겼는데 일부 종교단체의 자기 교리 광고의 성격으로 전락해서 거의 죽은 상태가 되어서 운영팀에서 공고를 한 다음에 다시 없앤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자유게시판 글의 성격의 기준은 운영팀에서 결정하는 것이라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캐나다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구요. 다문화사회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종교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 다양성은 종교의 다양성, 즉 기독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시크교, 사이언톨로지, 라엘리안 등의 다양성이 있고, 성향의 다양성, 즉 극보수, 중도, 극좌 등의 다양성이죠. 믿음으로는 천국과 지옥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도 있고, 천국지옥 따위는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의 내용으로는 원시적인 믿음도 있고, 철학적 믿음도 있고, 과학적 지식이 혼융된 믿음도 있고, 주술적 믿음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인정되었을 때 대화란 가능하겠죠.
굳이 남의 종교나 자기 종교를 자폭하듯이 공격하지 않더라도 대화와 열린마음으로 인정하면 좋은 대화가 되겠죠. 옛날에 만민교회 광고 사태 때, 제가 이단비판을 비판했더니 저를 이단옹호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단이니 삼단이니, 몰몬교니, 통일교니, 무신론적 기독교니 등의 차이에 거의 개의치 않습니다. 게이나 레즈비언이나 바이섹슈얼이나 퀴어나 등등 이런 성적 성향의 차이는 우리가 축복해야 할 다양성이고 다문화입니다. 저는 극우적인 기독교인들도 문제지만 진보의 이름으로 자기 신념만 최고고 다른 신념은 덜떨어졌다고 하는 그런 열려있지 않은 “이상한 열린대화”를 지향하는 닫힌 마음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업적인 면을 이야기해서 죄송한데, 종교학에서 경계대상이 바로 극우 극좌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신학적이거나 자기 신념을 선포하기 보다는 타종교,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이 더 앞서야 되고, 그럴 때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죠. 보수적인 기독교인과 대화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만큼 힘들 수도 있죠. 제가 여호와 증인들과 대화하자고 하면 여호와 증인 종북주의자나 이단옹호가 되나요? 저는 저희 집을 방문하는 여호와 증인들이나 몰몬교도들을 한번도 야박하게 돌려보낸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몰몬교 교리를 도배하면 보기 좋지 않지만, 몰몬교 교리의 핵심이 뭐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몰몬교도나 저같은 아마추어가 대답할 수도 있구요. 저, 늘봄님의 신학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하나의 종교적 현상이라서 1960년대 일어난 "신의 죽음"의 신학과 비교하곤 하고, 또 시대의 징조로서 보곤 하죠. 저는 늘봄님의 아름다운 신념이 아름답게 표현되면 좋을 것 같구요. 그래도 여전히 타자의 종교, 남의 신념을 판단하기 전에 배우려는 자세가 더 좋겠죠. 이것은 사적이지만, 제 서고에 있는 책장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책과 존 셀비 스퐁이나 무신론적 기독교 또는 신없는 종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책을 나란이 꽂아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극과 극을 한꺼번에 두고 보면 흥미롭고, 두 현상 모두 척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저는 그래서 아래서 lakeside님의 늘봄님의 글에 대한 comments를 좋은 것이라고 했던 거예요. 한 때 저와 언쟁도 있었지만, 소박하나마 lakeside님의 입장이 진보신학의 구루이신 늘봄님보다 종교현상을 이해하려는 first steps를 더 잘 내디셨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남의 먼지를 힐난하기 전에 내 눈의 끼인 먼지도 봐야하는 것은 저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의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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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뭐냐 님이 씨엔드림이 교회드림 이냐고 반문하실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토론이 아니라 시장터의 말싸움입니다. 비기독교인들이 항상 교회를 향해 너희는 왜 그렇게 싸움만 하느냐? 고 빈정대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게시판을 통해 믿는 이야기보다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믿음보다 삶을 중요시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토론의 결론은 사는 방식을 찾는 것이 되기 바랍니다. 얼마전에 언급했지만 자유게시판은 신학교의 교실도 아니고, 학회의 토론장도 아닙니다. 저는 자유게시판에서 저의 신학적인 지식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자유게시판을 통해서 우리 각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사는 것이 한인사회와 캐나다사회의 모든 사람들 - 종교인 비종교인, 신자 불신자, 이성애자 동성애자, 한인 서양인, 가진자 못가진자, 배운자 못배운자, 남성 여성, 경상도사람 전라도사람, 북한사람 남한사람 - 이 인정받고, 존경받고, 버림받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장이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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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앞으로 자유게시판에서 이분법적으로 누구는 천당가고 누구는 지옥간다고 차별하지 않고, 누구는 병이 낳고 누구는 징벌받고, 누구는 선택받았고 누구는 제외되었고, 등의 이야기보다 우리 모두 천당가면 함께 가고, 지옥가면 모두 함께 간다는 우주적인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말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믿지 않으면 저주와 징벌이 따른다는 위협은 삼가하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분들은 믿는 사람들을 업신여겨서도 안됩니다. 저의 믿음은 내세와 물질적인 보상과 축복을 바라는 믿음이 아니라,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믿음입니다. 저는 이것이 역사적 예수의 믿음이었고 그 분의 정신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신/하느님을 믿거나 않믿거나 함께 평화롭게 정의롭게 사는 것이 종교의 황금율입니다.
부탁이 있다면, 앞으로 저의 글에 신학적 논쟁을 달기 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답글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공평하게 존중합니다. 다만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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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늘봄님.
늘봄님께서 신학적인 이야기를 하시기 때문에 신학적인 이야기를 다른 분들이 하신다고 저는 생각됩니다. 같이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같이 가든지 하는 문제처럼 다른 사람은 천국을 가고 다른 분들은 지옥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그 분들의 정의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것 또한 그 분들의 함께 살아가는 생각의 방식이고요
강요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분들의 의견은 피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강요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늘봄님의 실력이시고 사색의 깊이가 있으시면 충분히 깊게 토론하셔서 더 깊은 이야기를 알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함께 사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역사적 예수의 믿음을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근본주의라고 불리던지 어떠든지 간에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 같이 지옥에 가고 싶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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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게시판이 생기고 천당지옥간다고 말한 사람을 본 기억이 안납니다. 저는 늘봄님과 "신학" 토론을 한 적이 없습니다. 늘봄님께서 강한 규범적인 진술과 신학적 진술을 하셨기 때문에, 늘봄님의 신학적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 드린 것이었구요. 제가 제기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종교현상적 사실과 관련된 것이지, 저 (다른 분들을 포함해서)는 늘봄님께서 천당지옥을 믿지 않는다고 늘봄님 지옥간다고 말씀 드린 적이 없습니다.
올라온 글에 문제 댓글이나 문제제기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님의 글에 트집을 잡은 표현이 있으면 트집잡았다고 지적해 주시면 되구요. 늘봄님께서 1700년 기독교 역사에 문제삼는 것도 늘봄님의 트집에 속하는 것인가요? 토론은 토론입니다. 토론하기 싫으시면 논쟁적인 글을 안 올리시면 되구요. 제 글도 수십편 있는데 얼마든지 앞으로도 트집 잡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런 트집잡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늘봄님께서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늘봄님께서 어느 교역자보다도 신선한 글을 올리신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질문도 많을 겁니다. 일단 글이 올라오면 그 글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표절한 사람은 추방당할 것이구요. 도용한 사람도 추방당할 것이구요. 화가 나서 감정적 싸움을 건 사람도 경고를 받거나 추방당할 것입니다. 어떤 글이라도 좋겠지만, 그 글이 비평이나 시비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게시판은 교수니, 목사니, 승려니, 저널리스트니 등등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글을 통해서 평가받고 글을 통해서 자기 생각을 펼치는 곳이 자유 게시판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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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의 댓글을 올리고 보니 brandnew님께서 비슷한 생각을 올리셨네요. 님의 글보고 댓글 단 것 아닙니다. 와~ 우연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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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이야기하자면 신학적 토론(논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첨단과학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대안을 찾으려면 신학적 토론을 전면적으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1700년 동안 기독교 믿음체계가 만든 삼층세계관적 신학 즉 창조론, 이분법적 구원론, 축복론으로 인류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으로 분리시키고, 교회권위와 교리에 복종하도록 위협했습니다. 따라서 교리적인 믿음만이 소중하며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율성이나 창조성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21세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인간의 삶이고, 온 인류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차별되지 않고 모두가 공평하게 인간대접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1700년된 진부한 신학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학적 토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신학적 논쟁을 그만 하자는 제안은 학문적이고 관념적인 논쟁으로 끝나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뜻이었습니다. 과거의 패러다임의 신학을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학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21세기의 새로운 삶의 방식은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극히 신학적인 것을 인정합니다. 사는 이야기를 하자면 신학적 토론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자유게시판의 토론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논쟁으로 시작해 논쟁으로 끝나기 보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사회와 세상을 건설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장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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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벗어난 것은 오래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공평한 인간을 지향하자면 다분법적인 생각으로 이미 변화가 되어있고 지금 전통적인 기독교인이든 아니든지 간에 이미 기존의 기독교가 말하는 이분적인 생각을 교회 안에서 조차 설득력이나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성경대로 사는 것은 바보같은 것이라고 내어 놓고 이야기 하지 않지만 삶을 가만히 살펴보자면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고는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인데 삶이 보여주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다면 이미 사고는 성경적인 것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이미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늘봄님 말씀처럼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어떤 일들이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더욱더 서양적인 개인주의가 강화되지 않겠나 혼자 상상해봅니다. 이 개인주의가 기존 전통적인 교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개인적으로 흥미롭습니다. 늘봄님, 아프리카님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요 개인적으로는 인문학의 부흥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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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늘봄님,
제가 늘봄님 글 지적한 것은 말꼬리보다는 논리적 적합성과 현상적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볼 때, 대화를 가장 가로막는 것은 늘봄님의 신학적 입장의 확고함입니다. 어쩌면 일반 세속사회에서 인간 이해에 기독교 신학적 접근과 불교적 접근이 별로 필요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늘봄님께서 보수교회를 비판하셨지만, 늘봄님의 신학이 보여주는 것은 사실 먼저 서술적, 설명적, 해석적 접근 보다는 독단적, 배타적 규범적었는가를 지금 늘봄님의 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진술이라도 현실적 요청이 배제되면 독단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도그마를 욕하면서 본인 스스로 도그마의 독에 빠진 셈이 됩니다.
그럼, 인간을 이해하려고 인류학자들이 부족사회를 찾아가서 몇년동안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연구를 하거나 사회학자들이 근본주의 교회에 가서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21세기의 방법과 틀리나요? 그럼, 동물학자들이 평생을 고릴라와 침펜지를 연구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21세기적 방법이 아닌가요? 앞으로도 말꼬리가 될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질문할 것입니다.
심리학, 인류학, 종교학, 사회학, 정치학 모두 자기의 개인적 판단을 가급적이면 배제하고 (즉, 신학적 독단론을 배제하고) 연구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을 알기 위한 노력 아닌가요? 그래서 이런 학문을 철학이나 신학과달리 경험적 학문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21세기 패러다임이 무엇인가요? 마크스 보그의 패러다임 말씀인가요? 존 스퐁의 새로운 기독교인가요? 저는 그런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이 최고라는 자기 확신입니다.
그리고 사족을 붙입니다. 늘봄님의 "세월호 진실 규명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라는 두개의 포스트는 세월호 진실규명의 필요성에 대한 것은 없고 기성 기독교 비판하는 내용이 압도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소한 글을 쓸 때 저도 항상 벗어나는 실수를 범하지만, 어쨌든 "topic question"이 반드시 필요한데, 위의 제목은 너무나 훌륭한 topic question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없습니다. 이 질문에 긴장을 했다면, 무척 훌륭한 세월호 진실규명의 필요성에 대한 글이 나왔을 겁니다. "세월호 진실 규명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3)에서는 진짜 왜 진실규명이 필요한지 설명해 주시면 매우 감사할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신학적 진술이 필요합니까? 오히려 세월호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한국사회의 상황에 대한 진단과 그 극복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어쩌면 현 정권의 진앙지인 경상도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욕먹을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topic question에 대한 늘봄님의 답, 즉 질문과 답이 아구가 제대로 맞을 때 우리는 이것을 "meaningful"하다고 합니다. 저는 늘봄님의 두개나 되는 글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구가 안맞아 별로 "meaningful" 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진짜 좀 말꼬립니다. 실례했습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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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new님께서 댓글을 더 다셨군요. 인문학 말씀해서 말씀드리는데, 한국에서는 사회과학을 포함해서 인문학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보니까 humanities와 social sciences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종교학의 경우 인humanities에 속하지만, 종교사회학이나 종교인류학은 social science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류학은 북미에서는 주로 문화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라고 부르고 영국에서는 사회인류학(social anthropology)라고 부릅니다. 거의 같은데 한쪽은 문화에 강조점을 두고 다른 한쪽은 사회에 관심을 둔다고 합니다.
제 뜻은 위의 내용이 아니고요. 늘봄님은 종교법(율법)이 종교권력자들의 거짓 때문에 형성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여러번 하셔서 숨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지나친 독단적 평가이기 때문이죠. 가령, 히브리 성서의 토라(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것이 율법으로 가득찬 레위기입니다. 이 레위기를 인류학적 측면에서 기념비적으로 쓴 책이 바로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의 [Purity and Danger]라는 책입니다. 언젠가 여기에서 제가 한 번 언급한 것 같은데요. 이런 인류학적 이해는 기존의 "신학적" 이해와는 너무나 달랐는데 요즘은 성서학자들도 더글라스가 제시한 틀을 인용 많이 하더군요. 아직 못봤지만, 더글라스는 아예 레위기 자체를 분석한 책을 냈는데, 이것이 바로 [Leviticus As Literature]입니다. 아마존 독자 리뷰보면 별이 다섯개입니다. 인류학자 더글라스는 신학이 아니라도 레위기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일차 자료(primary sources)로서 잘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신학은 지식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헌신이며 희생이며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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