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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이막동 선생의 다른 면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9138 작성일 2016-05-28 20:06 조회수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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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 갔다. 그 날은 외출을 삼가하라는 경고가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했다. 맞은 편 건물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공기가 탁했다. 종묘는 그래서 갔다. 숲이 있는 곳이므로 air quality 가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종묘 입장료는 10,000 이었다. 안내문에 종로구민은 5,000 원이라고 써 있었다. 지갑에서 1 만 원 권 한 장을 꺼내 입장권을 판매하는 아줌마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1973 년 까지 종로구민이었는데요"  


아줌마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 때 가까워 진 요금표가 바로 보였다. 입장료는 만 원이 아니라 천 원 이었다. 공기가 뿌얘서였는지, 아니면 선글래스를 끼고 있어서 였는지 0 하나가 더 붙어 있는 것으로 잘못 본 것이다. 


"아무것도 아녜요. 그냥 어른 한 장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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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를 피해 엉겁결에 들어간 종묘에서, 

싸르니아가 잘 몰랐던 고국의 옛날 역사에 대해 조금 배울 수 있었다. 

가르침을 주신 분은 종묘 정전 왼쪽칸에 그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고 이막동 선생이었다. 

고 이막동 선생은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신에게는 불명예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나에게 들려 주었다.    


종묘는 14 세기 말부터 1910 년까지 코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왕조의 왕과 왕비 등의 위패들을 모아놓은 사당이다. 왕조가 지배했던 이 나라의 국호는 조선이었다. 


조선은 독립국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밍 다이너스티와 칭 다이너스티의 제후국이었다. 조선이라는 국호도 왕조를 개국한 새 집권세력이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었고, 밍 다이너스티 조정의 선택에 따라 정해진 것에 불과했다. 


조선은 엄밀한 의미에서보면 전제군주제라든가 절대왕정을 채택한 나라는 아니었다. 당시 인구의 10 퍼센트 내외를 차지하던 사대부가 지배하던 나라였다. 사대부는 지식과 토지를 독점하고 있던 엘리트 계급이었다. 다만 이들은 권리만 무성하고 납세와 국방의 의무는 양인계급에게 덤터기를 씌운 채 자기들 스스로는 거의 지지 않아도 되는 좀 이상한 지배계급이었다. 


이같은 전통은 현재까지 계승되었는지, 아직도 10 퍼센트 상류계급은 납세의 의무는 절반 이상 떼어먹고 국방의 의무도 거의 지지 않는다.   


그들은 사전 과전 공신전 등의 명목으로 나라의 토지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거대한 전답의 경작과 유지를 위해 그들은 노비가 필요했다. 정규시민인 양민에게 소작을 주는 것 보다 마소나 다름없는 노비를 이용해 전답을 경작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훨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길 이었다. 


사노비의 확보와 증식을 위해 그들은 잔혹하고도 기상천외한 법을 만들었다. '종천법'이 그것이었다. 양인과 천민간 혼인을 허용하는 대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모두 노비로 귀속시킨다는 것이 종천법의 골자였다. 


이 법은 현재에 와서 더욱 강화된 형태로 계승될지도 모르겠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물론, 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도 모두 비정규직으로 한다는 무슨 노동개혁법이 그것이다.


이 법으로 말미암아 조선 전체 인구의 절반가까이가 말이나 소 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비참한 노비계급으로 추락했다. 중앙권력을 과점하고 있는 집권 사대부들이 모여 사는 서울 북촌의 경우에는 거주민의 60 퍼센트가 노비였다는 통계도 있다. 이들은 주로 사대부들이 패거리를 지어 자기들끼리 다구리를 붙을 때마다 사병으로 동원되곤 했다.  


악랄하기 짝이없는 종천법은 조선 왕조의 네 번 째 임금인 세종 시기에 만들어져 경국대전이 출간된 성종 때에 이르러 성문화됐다. 특기할만한 일은 세종부터 문종을 거쳐 단종에 이르는 시기 동안 사대부계급이 그들의 권력기반을 급속하게 확충해 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세 명의 임금들이 사대부 계급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그들의 이익추구에 이견을 달지 않았던, 보기드문 순둥이 임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중 단종은 순둥이라기보다는 나이어린 소년이었으므로 의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사대부 수장들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타탕하겠다.    


오히려 이 세 임금의 뒤를 이은 세조는 조금 달랐다. 그는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 준 새 공신세력, 즉 계유정란 이래 새롭게 등장한 공신 사대부 파워에 대항하기 위해 과전을 폐지하고 종천법을 종량법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세조의 증손자 연산군은 무슨 작심을 하고 그했는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예문관 등 성리학적 지배이념을 보위하는 핵심통치기구들을 견제하고 구박했다. 그는 사대부 전체의 권력기반에 해당하는 나무둥치=성리학적 지배이념을 혼자서 통째로 끌어안고 실성한 인간처럼 흔들어 대다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비해 훨씬 과다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왕위에서 쫓겨나는 개봉변을 당했다. 


반면 세종과 성종은 각각 종천법을 도입하고 완성해 사대부계급의 재산증식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사대부 지배계급으로부터 대대손손 훌륭한 임금님으로 칭송되었다. 


이 게시판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절반이 노비의 후손이며, 그 이유가 킹 세종 시절 만들어진 종천법 때문이었다는 것에 생각이 이르면 광화문 광장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동상을 당장 치우자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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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세종의 성은 물론 전주 이 씨다

이름은 '도' 

아명은 막동이다.

오늘은 이막동 선생의 다른 면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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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6-05-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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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토지제도는 조삼모사에요. 토지는 제한되어 있는데 대가리수는 늘어나고 토지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사화가 빈번했던 이유도 경제에 국한시켜 생각한다면 지배계급의 경제적 이득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배계급의 면세특권 포기에 따른 갈등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세계사적 현상인데 그래도 조선이 500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은 신권의 왕권 견제가 나름 역할을 한거지요. 조선이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했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고.

clipboard  |  2016-05-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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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권과 왕권은 나머지 대다수 양민들의 입장에서는 지배계급의 양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대부 계급의 광범위한 수탈과 착취를 왕권이 견제하기도 했지요. 물론 왕실이 사대부를 견제할 때 그 동기는 백성들이 불쌍해서는 천만에 아니고, 말씀하신대로 재한된 전답이 공신전이다 뭐다해서 빠져나가고 세습되어서는 안되는 과전이 세습되는 등 사대부 권력 (신권) 이 왕권을 눙가하고 이에 따라 왕실곳간이 텅텅 비는 사태가 올 때 시도되곤 했습니다.

이 여행기를 올린 이유는 좀 더 '재미있는 부분'에 있는데, 성리학과 경국대전 등 조선의 지배사상과 법전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진보진영이 아닌 뉴라이트 논객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진보진영 논객들은 침묵하고 있구요. 아마도 적의 장단에는 춤추지 않겠다는 망국적인 진영논리 때문에 토론을 기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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