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지마 류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 11 년 선배다. 나이는 박정희 보다 여섯 살이 많지만 박정희가 늦은 나이에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했고, 이 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특채형식으로 일본육사에 편입했기 때문에 기수 차이가 11 년이 나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세지마 류조는 1980 년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리더들에게 우상처럼 떠받쳐지던 인물이었다. 그들의 초청으로 서울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전두환과 노태우를 직접 지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지마 류조는 전-노에게 1964 년 도쿄올림픽과 1970 년 오사카 엑스포를 예로들며 99 퍼센트 대중들의 관심을 다른 곳에 붙잡아두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 때 한국국민을 '놀잇감을 주면 하루종일 거기에 매달려 다른 생각을 안 하는 단순한 개' 로 비유했었다.
박정희와 동갑이면서 일본육사 선배인 김정렬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일본명 카가와 사다오 였던 김정렬은 일제강점기 당시 특이하게도 일본항공사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차례로 졸업한 인물로 세지마 류조처럼 1980 년 당시 전두환 정권 출범을 측면에서 지도했다. 김정렬은 이 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민주주의는 철딱서니없는 지식인놈들이나 지껄이는 소리야.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것들 (개-돼지 같은 일반국민들)도 국민이랍시고 대접을 해줘야 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는 전두환 정권 당시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는 이 두 사람, 즉 세지마 류조와 김정렬 앞에서는 반드시 무릎을 끓고 앉았다고 한다.
친일파 이명세를 할아버지로 둔 덕분에 유명해 진 이인호 KBS 이사장은 EBS 교육프로그램에 초청강사로 나와 이런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류대학 출신 중 출세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이 근면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졸업이후에도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지 결코 학맥이나 인맥 때문에 출세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일부분 타당할 수도 있겠다고 동의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인호 씨의 내면적 사고방식에서 그 '일류대학'이란 구체적으로 서울대학교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들으면 그저 '저런 한심한 연놈들이 있나?" 하고 장탄식하며 그저 극히 일부 상류층의 탈선적 망언이겠거니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적어도 법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한 문명국가 중 하나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대한민국은 적어도 내용상으로는 명백한 신분제 국가다.
그 신분제 상층부 귀족계급을 구성하는 핵심조직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재벌혼맥이다. 한국인들은 평소에 15 대 재벌과 3 대 언론사,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명문들이 혼맥을 통해 한 가족으로 뭉쳐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곤 한다.
그 가족 안에서도 '성골'은 서울대학교와 미국 동부 명문대 출신들이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이 두 학맥은 교차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이 가족집단 밖의 정재계, 언론계, 법조계의 두 학맥 (서울대-미국 동부 명문대 출신들)을 진두지휘하며 국가 전체를 통제하는 강력하면서도 호율적인 신분제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이한 현상이 있는데, 미국 위스콘신 학맥이 패거리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비리그가 아닌 학맥이 친박핵심을 장악하면서 벌어진 일이지만 아마도 일시적 현상일 것이다)
그들 중 미국 대학 출신이 많은 가족들은 식사모임에서 대화할 때 영어로만 지껄여대는 바람에 영어대화에 참여할 수 앖는 다른 가족들이 소외되기도 하는, 자기들끼리의 이상한 결집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가십거리도 안 될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나라 상류계급에 강력하게 남아있는 "공고한 신분제 사회"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의 유전자는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그 악명이 자자한 조선의 신분제 질서가 남긴 유산임에 분명하다. 유산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들은 한국이 현재도 신분제 사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조선시대처럼 제도적으로 공고하지 않다는 점이 불만일 뿐이다. 한국의 상류계급은 전 국민의 주민등록증에 신분을 표시하는 낙인이라도 찍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문화유산임에는 분명한만큼 그 무형문화를 표현예술로 공연한 나향욱 정책기획관을 이번 기회에 살아있는 인간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버드 대학교 사회학자 올랜도 패터슨은 세계의 노예제 사회연구 부문에서 독보적인 연구자라고 한다. 아마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노예제에 관심을 가지고 파고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동서고금을 통해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잔혹하고도 강력한 신분제 사회로 조선 (북코리아가 아니라 이씨조선을 말함) 을 들었다.
조선도 처음부터 그런 무지막지한 신분제 사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이막동 씨가 집권하고 나서부터 벌어졌다고 한다. 이막동 씨 집권기 이후 반인륜적인 종천법을 실시하고 그 바람에 인구의 절반이 사대부계급의 사유재산인 노비로 추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지난 번 종묘여행기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더구나 조선의 노비는 경국대전에서 그 가격을 2 년 노동가치로 정해놓는 바람에 이자율이 4 할에 달했던 그 시대에 영원히 속량될 수 없는 영구노비였다.
나 뭔 가 하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라는 자가 괘씸하신가? 그가 미친넘 같으신가?
나 뭔가하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란 사람은 괜히 술먹고 진심을, 그것도 기자들 앞에서 폭로하는 바람에 곧 그 자리에서 해임 내지는 파면되어 곧 "개-돼지' 반열로 추락할 불쌍한 인간일 뿐, 별로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
자신이 상류계급에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자들 중 대부분이 겉으로는 격조있게 놀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뿐, 그들의 생각은 대동소이하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이 어떻게 해야 유지되는지 잘 알고 있다. 상류계급의 격이 단순히 돈이나 학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근면과 겸손과 끊임없는 자기훈련으로 유지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우선 말이 별로 없다. 자칫 나 씨 처럼 상스러운 소리라도 지껄여 '계급의 배신자 내지는 꼴뚜기'로 찍혀 파문이라도 당하면 큰일이므로 조심하기 때문이다. 조현아 사건 후 그들 내부의 이런 조심조심 기류가 확산되어 왔다고 한다. 몽고간장이니 대림산업이니 나 씨 망언이니 하는 사태가 터질 때마다 그들은 속으로 "저런 병x같은 것들이 여기저기서 산통을 깨고 있네" 하며 장탄식을 연발할 것이다.
그들 역시 나 씨 처럼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기들처럼 똑똑하거나 근면하지 않으며, 미련하고 게으른 만큼 자신들의 지배와 멸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을 존경하고, 일제강점기 당시의 친일관료들을 두둔하는 이유는 그들의 조상이 사대부 또는 친일파였거나 그들의 해골이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 시대 지배계급들이 "자신들처럼 똑똑하고 근면한 자질을 가졌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지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고 믿기 때문이다.
나 씨 같은 사람 하나 미친넘으로 만드는 건 아주 쉽지만 별로 의미가 없는 일 같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결코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이 교육정책을 담당하고 있으니 이 나라 교육이 이 모양이다'는 말도 문제의 본질을 지적한 게 아니다.
나 씨보다 더 한 넘들이, 나 씨보다 더 높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수두룩뻑쩍널려 있다. 문제는 그런 사고방식이 대한민국 상층부에 만연해 있으며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암튼 신분제 말썽이 나니, 또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사람이 그 피해막심한 문화유산을 남긴 고 이막동 씨인데,
그래도 그의 공과를 공정하게 상고해서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오늘은 그의 업적으로 널리 칭송되는 훈민정음 해례나 먼저 읽어보야야 겠다.
물론 이 해례는 싸르니아가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니만큼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신빙성만큼은 믿어도 별 손해 없을 것이다.
나랏말쌈이 중국과는 전혀 달라
문자와 발음이 서로 사맛디 아니할 쌔
어리석은 사신마다 중국어 발음이 시원찮아 천자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곤하니
사신들이 바른 발음을 배우고 싶어도 표음과 기호가 없으니 배울 도리가 없었도다.
내가 이를 한심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개의 발음기호를 만들어 반포하노니
명나라에 가는 사신마다 쉽게 익히고 날마다 연습하여
대국의 관리와 중국어로 소통함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최초의 제작 이유야 어찌됐든 훈민정음은 나중에 한글로 부활하여 이렇게 간편한 표음문자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그의 업적이라면 업적임에 분명한 것 같다.
이막동 씨가 훈민정음과 함께 창제했다는 대명사대주의의 폐해를 절반 쯤은 상쇄할만큼 좋은 의미의 대박결과를 가져왔음도 부정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그 망령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강력한 신분제 유산'과 관련해서는 고 이막동 씨가 남긴 폐해가 너무나도 심대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왜 이막동 씨의 동상을 세종로 중앙에 만들어 놓은 것인지, 그 진짜 의도가 궁금해진다,, 이막동 씨 동상을 세종로 한 가운데 세우기로 결심한 세력의 핵심배후인물들은 틀림없이 종천법적 신분제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말을 마치겠다.
나 씨에게 너무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랬다가는 세지마 류조가 말한 '놀잇감에 정신을 팔고 있는 존재'가 되기 쉽다.
나 씨는, 그의 말이 아니라도 엄연히, 그리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신분제 사회의 떨어져나간 깃털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정상을 참작하여 '쓸쓸한 깃털' 나향욱 피고인에게만 너무 무거운 비난을 가하지는 말기를 바라면서 횡설수설 변론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