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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_ 마이클의 음악산책
팀웍(Team work)이란 중요한 것이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운동경기도 마찬가지고 보컬그룹도 마찬가지로 팀웍이 중요하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있는 한 팀웍이란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중요한 것이다 60년대 혜성처럼 나타나 단숨에 대중음악계를 석권한 비틀즈에게 브라이언 앱스타인이라는 매니저가 있었다. 비틀즈 멤버는 음악적 재능이 출중할 뿐 아니라 각자 개성이 뚜렷했다. 죤 레논은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는 페미니스트, 링고 스타는 재능 있는 엔터테이너, 죠지 해리슨은 철학자 스타일의 기티리스트, 폴 메카트니는 작곡가. 브라이언은 비틀즈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매니저 역할을 하며 음악적으로 개성이 뚜렷한 멤버를 화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브라이언을 구심점으로 네 명의 멤버들은 큰 어려움없이 음악활동을 했는데 브라이언이 67년 9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죽었다. 브라이언이 죽고 난 후부터 비틀즈에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들려오며 해체설이 나돌다 1970년 4월 폴 메카트니가 비틀즈 탈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예수 보다도 위대하다’던 비틀즈는 해체 되었다. 비틀즈가 예수보다 위대하다는 소리는 죤 레논이 했는데 그 발언 이후로 비틀즈는 곤욕을 겪기도 했고 그 후부터 살해 위협에 공연을 중단 했다. 공연 중단에는 살해위협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지만 죤 레논의 ‘예수 운운’ 발언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돈, 명예, 인기를 한 손에 움켜쥔 젊은이들의 치기로 봐주기에는 세상이 너그럽지 않은 것 같다. 비틀즈의 해체에는 브라이언의 죽음 말고도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폴 메카트니의 공식 탈퇴 이전부터 그들은 이미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링고 스타는 Senti mental journey 라는 독자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고 죤 레논은 Instant karma를 준비하고 있었다. 비틀즈의 Let it be 가 발표되어 빌 보드 차트 6위에 올랐을 때 죤 레논의 첫 솔로 작품 Instant karma도 빌 보드 차트에 올라 경쟁을 했다. 그런데 Instant karma는 3위에서 끝났다. Let it be는 곧 바로 1위로 올라갈 것 같았는데 Simon & Garfunkel의 명곡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이미 1위를 차지하고 있어 3주를 기다린 끝에 1위를 차지했다. 그 후 Long and winding road가 빌 보드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끝으로 비틀즈 곡은 차트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비틀즈 해체 이 후 끊임없이 재결합설이 나돌았고 재결합을 바라는 펜들이 많았으나 번번히 말로만 끝나고 펜들은 1980년 죤 레논의 죽음으로 비틀즈 재결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비틀즈 이야기에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노 요코이다. 죤 레논 과 함께 무수한 화제를 제공했던 오노 요코는 죤 레논 보다 7살 연상의 일본출신 여자히피로서 죤 레논 과 만나기 전 두 번 째 결혼을 하고 있었는데 죤 레논을 만나면서 결혼으로부터 ‘도망’했다. 그 두 사람의 만남은 천생연분이라 할만하다. 비틀즈는 리버풀의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돈과 명성을 얻고 난 후 폴 메카트니는 제도권에 들어가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죤 레논은 여전히 비주류에 속하면서 평화와 자유운동을 하며 사회 소외계층을 위해 돈을 쓰며 살았다. ‘예수보다 위대하다’면서 튀는 언행을 보여 온 죤 레논은 오노 요코를 만난 게 고기가 물 만난 격이 되었다. 그는 비틀즈 멤버들에게 ‘나는 이제 너희들이 중요하자 않다’고 할 정도로 죤 레논은 오노 요코에 빠져들었다. 같은 보컬그룹을 하는 동업자 이전에 오랜 친구들로서 형제와 같은 유대감을 갖고 있는 다른 멤버들에게 죤 레논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4명 이외에는 절대 다른 사람의 출입이 금지 되었던 스튜디오에 오노 요코가 들어 와 불문율을 깨뜨렸을 때 다른 멤버들은 ‘비틀즈가 4명이냐, 5명이냐’며 불쾌해 했으나 오노 요코에게 마음이 돌아간 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노 요코의 등장이 비틀즈 해체의 한 가지 원인은 되겠지만 그녀가 비틀즈 해체에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은 아니다. 죤 레논 과 오노 요코의 튀는 행동 중에 침실 시위가 있었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그는 오노 요코와 침실에 들어가 평화를 위한 시위를 하며 러시아, 그 당시에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이었는데,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서기장 동무 와 미 합중국 대통령에게 ‘당신들도 침실에 들어가 사랑을 하시오, 그러면 세계 평화가 올 것이오’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죤 레논 과 오노 요코의 튀는 행동이 신문 가십란이나 해외토픽 난을 장식하며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기도 했지만 미국정부로서는 노래보다도 사회운동, 평화운동 하는 좌파 선동가 죤 레논이 골치거리였다. 죤 레논의 마약 경력을 문제 삼아서 미국이 한 때 입국을 거부했을 정도로 죤 레논은 미국정부의 감시와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실제로 FBI에는 죤 레논 관리파일이 있어 90년대에 파일이 공개 되었는데 국가 안전상의 이유로 파일이 몇 군데 검은색으로 지워진 채 공개되었다. 1980년 죤 레논이 체프먼이 쏜 총에 맞아 죽었을 때도 뒤에 배후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의혹이 있었던 것도 파일이 공개된 후에 생각해보면 지나친 의혹은 아닐 것이다. 살해 이유는 ‘편안히 앉아 세계평화를 팔아먹는다.’ 죤 레논이 죽기 하루 전, 에니 레이포비츠 라는 사진작가를 만났다. 오노 요코를 사랑하는 방식을 말해보라고 하자 죤 레논은 벌거벗고 요코에게 키스를 했는데 그 사진이 죤 레논의 살아 생전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그 한 장의 사진으로 에니 레이포비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각자 상상해 볼 일이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7년 3/16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7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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