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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나비 / 고성복 (캘거리 문협)
 
내 어릴 적, 나이 열 살에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나서부터 나는 죽음과 신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절에서 사십구일 간 제를 올렸는데 그 때문에 저녁이면 뒷산에 있던 절에 올라가야 했다. 절에서는 수없이 절을 거듭해야 했고 스님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독경소리를 들으며 추운 법당에 오래오래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했다.
매일 이렇게 염불을 들으며 기도를 하다가 일 주일마다 이름난 절에서 오신 큰스님의 설법이 있었다. 설법은 밤을 새우며 있어서 할머니 친구분들과 동네 노인네들 몇 십 명이 법당에 꽉 차게 모여 앉아 스님의 설법을 들었었다. 이때에 상제인 우리 형제들은 오래 계속되는 절의 의식에 그만 지쳐서 법당 구석 할머니들 치마폭 사이에서 잠에 곯아떨어져 있곤 했다.
사십구일 째 마지막 날 밤에는 큰 스님 중에서도 큰 스님이 오셨다고 설법 듣는 사람들이 법당에 넘쳤다. 춥고 바람 부는 겨울 밤이었는데도 마당에 불을 피우고 서서 듣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날도 나는 촘촘히 앉아 있는 할머니들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잠을 잤다.
내일 또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큰 스님의 설법이 몇 시간 만에 끝난 새벽에 나는 흔들어져 깨워졌다. 아버지의 유품 몇 가지와 저승에서 쓸 노잣돈을 태우는 화톳불 옆에 서있기 위해서였다. 저승에서 쓴다는 노잣돈은 조선종이로 만들어졌는데 엽전 모양으로 오린 종이 뭉치가 주렁주렁 달린 책이었다. 유품들을 태우기 전에 절의 주지 스님은 상좌에게 "소방서에 전화해라, 불 난 줄 알라" 하셨다. 곧이어 유품과 함께 섞은 넉넉한 저승 노잣돈이 불티를 깜깜한 하늘로 날리며 타서 없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없어지셨다. 불티와 함께 하늘로 빨려 올라 가버리신 것이다.

아침에 절에서 집으로 내려와 아침밥을 먹는 참에 형은 엄청난 비밀을 몰래 알려 주는 것처럼 소리를 낮춰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어젯밤에 자지 않고 설법을 다 들었는데, 뭐 복잡하게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죽으면 못 만난다는 거라. 우리가 죽으면 어떤 사람은 우주의 저어 동쪽 끝에서 나고 어떤 사람은 저어 서쪽 끝 어디서 나 버려서 만나기가 절대 어렵단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만난 것이 얼마나 어렵게 어렵게 만난 것인 줄 아느냐고 자꾸만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그런데다가 우리가 이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나지도 않고 부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강물로 태어난다는 거라. 그 강물과 그 바람이 어찌어찌 하다가 우연하게 우연하게 한 번 다시 만난다면 그게 얼마나 큰 인연이냐고 밤새 그 이야기만 하더라."

언제였던가? 어느 젊은 날,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라는 책 제목을 언뜻 듣고는 아마 저 책의 목소리가 그 큰 스님의 설법과 같으려니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슬프게만 만들어진 무심한 세상이란 말이냐? 그저 강물같이 묵묵히 흐르기만 하고, 그저 바람같이 말없이 불기만 하란 말이냐?

나이 마흔 살이었던 어느 날, 처가 거실에서 혼자 앉아 소주를 한 병 마셨다. 여름날 저녁이라 마당으로 면한 여닫이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검정 마루 깔린 거실이 어둑한 무렵이었다. 술은 별로 취기를 느끼지 않는 정도였으나 아무래도 약간의 흥분 상태였으리라 생각된다. 이때 옆방으로부터 아내와 장모님의 조용한 찬송소리가 새어 나와서 내게 경건한 마음이 들게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문득 하느님께서 정말 계실까 하시고 궁금해진 끝에 마룻바닥에 웅크린 채 두 손 모아 하느님께 기도 드렸다. 정말 하느님이 있는다면 꼭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떼를 썼다. 반 시간가량이나 그렇게 기도하며 엎드려 있었는데, 소리가 나서 눈을 떴던 것인지 눈을 뜨자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자, 이래도 못 믿겠느냐?" 하는 소리에 놀라서 앞을 보니 불붙는 사람 모양의 화염 덩어리가 내 앞에 떠억 서 있었다.
장작불이 한참 거셀 때 뿜어져 나오는 화염 같은 것이 그의 검은 몸을 온통 감싸고 있어서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입을 따악 벌리고 숨을 멈추었다. 화염에 싸인 거인은 잠깐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가 열린 거실 문 밖으로 스르르 나가 버렸다. 아! 아...... 나는 놀라서 불덩어리가 빠져나간 어두운 마당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숙이니 이번에는 투명하고 빨간 색의 내 팔이 나를 또 놀라게 했다. 팔 속에 백열등이 들어 있는 듯이 주홍빛으로 빛나는 내 팔, 아! 또 내 다리.
으으으,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나는 빨간 내 두 손을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 정신이 쏙 나갔다. 이런 신비로움에 놀라고 있다가 문득 불을 보면 죽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크, 이것이 바로 불이란 것 아닐까? 절 입구에 서 있는 불붙는 사천왕 그런 모습을 본 것 아닐까?
그 후 불을 보면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이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고 살았는데 십 년쯤 후에 진지한 교인 한 사람과 종교적 체험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그의 체험 이야기 듣고 나서 내가 본 불을 이야기 하였더니 그 경건한 양반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소주를 꽤 마신 거라 이거지요. 그럴 수가 있지요. 어두운 데서 오래 눈 감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뜨면 환각을 볼 수 있어요. 소주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요."
그렇다면 내가 본 것은 모처럼의 신비로운 기적이었던가? 아니면 황당한 개꿈이었던가?
내 나이 오십쯤 되었을 때, 성철 스님이 입적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큰 거짓말쟁이라. 지옥에 떨어져 벌을 받을 것이라"
역사에 남을 고행을 하신 분의 말씀이라, 말씀 듣고는 어깨가 처졌다. 득도는 고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같다. 더 멀어지는 하나님의 그림자. 하나님의 흔적이나 훑어야 하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은 소설 '개미'의 글 속에서 수상한 신호가 감지되었다. 디스토마가 민물고기를 중간 숙주로 삼다가 이를 눈치챈 인간들 때문에 별 재미가 없자, 돼지를 중간 숙주로 삼는 시도를 하는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말은 몹시 수상하다. 디스토마 따위가 그들의 중간 숙주를 바꾸는 모의를 한다고? 그것도 종족이 함께? 언제 회합을 했을까?
내 나이 육십이 넘은 어느 날, 여러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 사진을 보았다. 그 날개에 그려진 너무도 아름다운 문양을 나는 감히 흉내 내지 못한다. 누가 이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겠는가? 나비가? 그렇다면 우리의 여자들은 뭐 하고 있었던 건가? 나비 조차가 그 날개 위에 태극 무늬를 새기고 있었을 때 인간은 왜 그 뺨에 태극 무늬 하나 올리지 못했을까? 나비보다 우리 여자들이 예뻐지기 싫었던 것일까?
그리고 만일, 나비가 자신의 날개 위의 태극 무늬를 직접 그리지 않았다면, 누가 그 태극무늬를 그렸을까?
그리하여 나는 세상이 절대자가 다녀간 자리라고 믿게 되었다. 태극 나비를 본 후 내 마음은 한없이 평온해졌다.

기사 등록일: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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