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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기도 _ 남파/캘거리 문협
 
어부였던 할아버지한테 시집와 평생 남녘 바닷가 선창 앞에 살면서 7남매를 억척같이 키우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다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시골에 홀로 살기 힘들다고 생각한 자식들의 결정으로 할머니는 평생 살던 남해 바닷가를 등지고 서울로 어쩔 수 없이 오시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캐나다로 이민 와서 살아보니 할머니의 서울 생활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사무친다.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던 나는 무뚝뚝한 말투,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 마디 굵은 커다란 손을 가진 할머니를 내심 무서워 했었고, 어린 나의 기억에도 당신의 불편한 몸보다 아는 이 없는 낯선 도시와 며느리 눈치를 더 힘겨워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평생 버릇이라 할일 없어도 매일 새벽이 일어나서 흰 사발에 약수터에서 떠온 물을 담아 두 손 모아 기도 했다.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던 나는 이불속에서 어렴풋이 깨어 방 한 구석에서 불도 켜지 않고 다소곳이 앉아서 기도하던 할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 까지만 또렷이 들리고 그다음은 웅얼웅얼 알아들을 수 없는 긴 기도를 동이 틀 때까지 했더랬다.
학교에 가려고 가방 들고 신발 신고 있는 내 등 뒤에서도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 하는 할머니의 기도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왔고, 제삿날에도, 명절에도 항상 그 기도를 했더랬다. 중학교 때 할머니는 나를 앞장 세우고 산에 있는 절에도 자주 갔었다. 절 뒷간 벽에 그려진 벽화도 재미있고 절밥도 맛있던지라 나는 마다 않고 따라갔었는데, 절에서도 할머니의 기도는 항상 똑같이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가 결혼해서 분가하고 사회생활하느라 바빠서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았을 때 할머니는 손에는 묵주가 들려있어고 얼마 전부터 천주교 성당에 다닌다고 하셨다. 동네 친구분들이 교회도 다니고 성당도 다녀도 같이 안 하시던 할머니는 성당에서는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했다면서 너무 기뻐하시며 성당을 다니셨고, 나와 손주며느리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꼭 감고 이마에 성호를 긋고 묵주를 한 알 한 알 세며 기도했더랬다.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

자손들 걱정으로 평생을 사시던 할머니는 자손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했는지 앓아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고 그렇게 할머니의 기도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기도를 많이 자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기도가 항상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로 시작한다는 것을 안 것은 내 딸이 알버타 북쪽 시골에 살다 캘거리로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였다.
딸을 혼자 도시에 남겨두고 오면서 이제는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도와 줄 수가 없다는 무력감에 안타까워할 때 갑자기 할머니의 기도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서야 할머니의 기도가 모두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로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지금까지 내가 아무 탈없이 살아온 것이 할머니의 기도 덕분일 것이 분명하기에 25년이 지난 후 내가 할머니의 기도를 내 딸들을 위해서 읊조린다. 얼마전 딸이 처음 차를 샀을 때도 나는 어김없이 기도했다.

'자손들 오는 길 가는 길 아무 일없게 굽어 살피시고......'

기사 등록일: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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