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다시 현충원 언덕에 서서 - 윤용재 (토론토 교민)
 
 
토론토 애국지사기념 사업회(회장 김대억)에서 매년 주최하는 호국보훈문예작품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싣는다. (편집자 주)


돌아보니 꼭 45년만이다. 서울현충원을 처음 방문했던 것이 고교 1학년 시절 현충일이었으니 근 반세기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당시 함께 했던 그 친구와 같이 오고 보니 더욱 감회가 새롭다.
가끔 모국을 방문하면 추억의 장소를 찾아 친구들과 옛 기억을 되새기곤 하는데 이번에 작정하고 서울현충원을 방문한 것은 청소년기에 처음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나름 속을 터놓고 각자 미래 계획에 대해 얘기하게 된 강렬한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동작동국립묘지로 불리던 이곳에서 당시 어린 학생이었던 우리는 적지 않은 충격과 감동, 그리고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혼란한 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20여년 밖에 되지 않아 매해 현충일이면 자식과 남편을 잃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묘역을 중심으로 비석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삼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끊임 없는 남북충돌과 월남전쟁이 한창일 때여서 불행히도 많은 희생자들이 새로운 묘역에서 호국의 영혼으로 거듭나는 안장식 행사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현충원은 언제나 하루 아침에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남겨진 이들의 깊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비록 철없는 나이였지만 당시 친구와 함께 일제 강점기 순국한 선열들의 묘역부터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그리고 평시 임무 중 순직자에 이르기 까지 제법 엄숙한 마음으로 묘역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주 벌판에서 풍찬 노숙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친 선열을 기리"는 묘비명 부터 "어미는 언제나 너를 자랑으로 기억하며 다시 만나는 날 까지 편히 쉬라"는 6.25 전사자 어머니의 의연한 외침, "조국을 지키는 빛나는 별이 된 당신을 사랑하며, 어린 아이들 훌륭히 키울 것을 약속한다"는 공군장교 부인의 애끓는 망부가, "이루지 못한 우리의 사랑 다음 세상에서도 영원하기를"이란 가슴 아픈 사연을 남긴 월남 전쟁 전사자의 묘비명에 이르기 까지 그 사연들이 아직도 기억에 맴돈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왠지 모를 설렘과 궁금함을 안고 서울현충원에 들어서니 워낙 오랜만의 방문이어서일까 마치 새로운 곳에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현충문을 지나 "미수습용사"의 위패를 모신 곳에서 부터 다시 기억이 되살아 나기 시작하면서 마치 45년 전으로 되돌아 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때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단지 그 당시만해도 묘역 한켠이 크게 공터로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그곳마저 빈틈없이 호국용사들의 묘비로 가득하여 이내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낀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애끓는 묘비명들을 생각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조국에 한 몸을 바쳤는지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추모 글은 어떠한 지 하나하나 참배하는 마음으로 읽으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본다. 이제는 찾아 올 어머니도 아내도 이내 그리운 이를 찾아 떠나 버렸을 세월이어서 한눈에도 오랜 세월 찾는 이가 없는 묘역이 대부분이다.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던 중 나는 한 묘역에서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묘비를 이웃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당시 31세의 공군조종사로 작전 중 순국한 아버지의 묘비엔 당시 아들 잃은 어머니가 애끓는 마음을 묘비에 남겼고 5살 이었던 그의 아들은 훗날 자랑스런 아버지의 길을 따라 공군조종사가 되었지만 야간비행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27세의 찬란한 나이에 이내 아버지의 곁에서 영원히 빛나는 호국의 별이 된 묘역이다.
당신의 젊은 아들을 영원히 조국의 하늘로 올려 보낸 것도 모자라 훗날 애지중지하던 손자까지도 아들이 있는 하늘의 또 다른 별이 될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당시 법규상 합동안장이 불가능 하였으나 그 가족의 호국정신과 기막힌 사연을 정부가 참작하여 부자가 나란히 자리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부자의 희생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면을 기도하였다.
수 많은 사연과 숙연한 분위기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귀한 영혼들을 마주하다 보니 어느덧 짧게만 느껴지는 2시간 여가 지나고 오랜만의 방문을 마무리 할 시간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한 특별한 장군의 묘역을 가 보기로 했다. 바로 베트남전 한국군사령관으로 많은 전공을 세우고도 사후엔 특별히 마련된 장군 묘역을 마다하고 월남전에서 전사한 5천여 장병들 곁에 잠든 한 군인의 묘역이다.
정말 특별한 것 없이 많은 병사들의 묘비 사이에 그의 묘역도 있었다. 그러나 작지만 초라하지 않고 오히려 기개가 있으면서도 따듯함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용맹함과 온화함을 함께 갖추기가 쉽지 않지만 모름지기 전장의 장수는 물론 여느 지도자라도 이러한 모습 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충원 언덕 저 아래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도도히 흐르는 푸른 한강의 물결을 내려다 보며 여기 잠든 호국 영혼들의 고귀한 정신은 필시 저 물결 처럼 영원하리라 확신한다.
이번 방문은 나 스스로를 한번 뒤돌아 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인생이고 나와 국가는 또한 어떤 관계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현충문을 나서며 머지않은 날 자녀들과 함께 다시 이곳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날엔 나의 가족들이 이 특별한 공간에서 그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개인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45년 전 그 날 내가 그랬던 것 처럼......

기사 등록일: 2022-09-30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캘거리-인천 직항 내년에도 - ..
  “범죄 집단에 비자 내주는 캐나.. +1
  (종합) 앨버타 두 곳 대형 산..
  앨버타 최고의 식당은 캘거리의 ..
  캘거리 4월 주택 매매량 올라 ..
  캘거리 대학 ‘전례 없는’ 상황..
  캘거리, 에드먼튼 타운하우스 가..
  캘거리 일회용품 조례 공식적으로..
  전국 최고 임금 앨버타, 어느새..
  캘거리 주민들, 인근 소도시로 ..
댓글 달린 뉴스
  주정부, 여성 건강 및 유아 생.. +1
  요즘은 이심(E-Sim)이 대세... +1
  에드먼튼 대 밴쿠버, 플레이오프.. +1
  캘거리 시의회, “학교 앞 과속.. +1
  “범죄 집단에 비자 내주는 캐나.. +1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 마침내..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