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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년의 사유 --글 : 청야 김민식 (캘거리 문협)
 
캘거리 가을이 빠르게 깊어간다.
온난화 변덕이 로키산맥을 부추기는가, 여름이 해마다 늑장을 부린다. 공간을 빼앗긴 가을이 제 멋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낮의 무더위를 아랑곳 않는 듯, 가게 뒤뜰의 아스팔트 위로 샛노란 낙엽 하나가 팽그르르 돌며 ‘툭’ 소리로 인사를 한다.

8월 하순이면 어김없는 낙엽의 첫 만남이 있곤 했는데 9월 첫 주가 지나서야 반갑게 만났다. 떨어지는 낙엽길 따라 하늘을 본다. 포플러 나무 우듬지 한 모퉁이에서 노랑 색동옷 차림으로 햇살에 빤짝이며 천진난만하게 이별의 춤을 추고 있는 무리들.

밤새 세차게 부는 찬 공기의 떨림에 급히 색동옷을 입히고 매몰찬 이별의 버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버림은 새로운 창조의 길로 들어서는 것, 나무는 잎을 다 버리고 생명의 나이테 하나를 만든다.

대지를 희부옇게 물들이는 산불 매연에 지쳐 허우적 숨통이 죄어오는데, 일엽지추(一葉知秋), 낙엽 한 잎이 가을을 알리며 설렘의 기쁨을 선물한다.

가을은 노년의 계절이다.
노년은 버리고 비움을 실천하는 기간이다.
노년의 계절은 텅 빈 심연에 새로움을 창조하고 상승시키는 계절이다.

노년의 가을은 죽음을 향해 행진하는 막바지의 길, 이 성스러운 의식의 미학을 통과한 후, 삶의 열매를 대지에 뿌리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견실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팬데믹 이전 노년 존재의 의미는 마음껏 즐기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성공한 인생의 삶이었던가.

팬데믹 기간 동안 인간 죽음의 비참한 모습을 실시간 생방송으로 목격했다. 화장터에 시체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전염병에 감염된 시신들은 한적한 공터에 가족들의 입회도 없이 수 백 명의 시신들이 긴 백에 둘둘 말려 모내기하듯, 내동댕이 치며 매장당했다. 시신을 버릴 곳이 없어 강가, 다리 위에서 몰래 버리고 도망치듯 달아나는 모습을 시청한 것도 엊그제 일이다.

시립 묘지를 구매한 후 15년여 만에 지인의 장례 하관식에 참석한 후 바로 옆 나의 묘지 빈터를 방문했다.

15년 전 어느 날 저녁 무렵 정각 윤 병옥 합기도 관장이 가게로 들어서며 시립묘지공원 내 옆의 빈터를 예약했으니 계약하라고 당부한다. 반 강압적으로 강요해서 이튿날 함께 가서 계약을 했다.

묘지 사무실에 들려 개정된 규정을 확인하고 질문들을 했다.
묘지 한 기에 8명이 화장해서 안치할 수 있는 것이 10명으로 늘어났다. 나는 가족들에게 유언하듯 당부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르고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한 후, 유골을 화장해서 절반을 캘거리 묘지에 묻고 절반은 한국의 가족 묘지에 묻을 것을 당부했다.


팬데믹 이후, 나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나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며 자주 눈물을 글썽인다.
만나는 것들이 성스럽고 선하다. 소매 끝을 스치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나무가 혹한의 겨울을 견디어 내듯, 지난날의 부끄러운 삶을 훌훌 털어내고 숱한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자신이 대견하다.

나를 변화의 삶으로 이끈 것은 독서와 사유다.
그중에서 즐겨 고전 읽기를 좋아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시작으로 참회 수상록 인문 철학 서적 등 명서 600 여권의 e book을 구매했다. 핸드폰에 저장하고 틈나는 대로 읽는다. 지금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읽기에 도전하고, 헤세 전집을 다시 읽는다.

커피를 마시며 한두 시간을 독서하고 커피숍 바로 뒤의 한적한 길을 선택해서 걸으며 사유의 시간을 즐긴다. 홀로 걸으면서 독서한 내용에 몰입하고 메모한다. 사유의 실타래들이 슬슬 플러 나는 즐거움. 노년에 향유하는 것들이다. 글렌모어 저수지는 10,000년 전에 조성되고 철저히 자연환경 보존이 잘 다듬어진 철학적 에움길들이 여러 갈래 조성되어있다.

푸서리 길을 조성해서 만든 호젓한 오솔길을 지나면 완만한 언덕, 비탈 휘어진 후밋길에 들어선다. 호수를 끼고 자드락 숲길을 지나 자갈이 많은 돌서리 길 입구에서 맨발 걷기를 시작한다. 때로는 인기척이 드문 자욱한 길을 걷는다.

이처럼 길은 도로의 의미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철학과 문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 길들을 걸으며 수많은 생각들을 걸러낸다.
순간의 삶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기도 하는가 하면 대지를 사랑하는 힘을 고양시킨다.

가을은 사유의 계절이다.


기사 등록일: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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