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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2대 주 수상 랄프 클라인 영면(1942.11.1-2013.3.29)
▣ 랄프(Ralph)라고
불리는 사나이

3월29일은 성 금요일(Good Friday)로 많은 사람들이 이날은 경건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그날 오후 필자는 산악회 회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공원으로 나오라는. 차에 시동을 걸자 라디오가 나오는데 아나운서는 랄프 클라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는 12대 앨버타 주 수상으로 1992년 12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만 14년을 재직하고 정계를 은퇴한 정치가로 앨버타 주민들에게 좋건 나쁘건 강하고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랄프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가 샤 컨퍼런스 센터(Shaw Conference Centre)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40분 기다린 일화는 유명하다. 그날 연설이 끝나자 어린 소녀가 다가와 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고 했다. 그는 흔쾌하게 허락했다. “엄마에게 가서 카메라 가져 올 테니 기다려 달라.” “염려 말고 다녀와.” 일행들이 다음 약속 늦었다고 성화였으나 그는 여자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누구도 수상이 40분을 기다려줄 것을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는 기다렸다. “내가 그런다고 했잖아.”
그는 주 수상이었으나 Mr. Premier 혹은 Mr. Klein으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코믹한 표정,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랄프(Ralph)라고 불러달라.” 그는 동양에서 이민 온 사람에게도 친근한 느낌을 주어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면 스스럼 없이 담배 한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동네 형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사나이다.
그는 친근감을 주고 소탈한 느낌을 갖고 있는 정치인으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장점이 있다. 이것에 대해 정적들도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그의 선천적 장점”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가끔 실수도 했다. 특히 술로 인한 실수. 2001년 그는 술에 취해 에드몬톤 홈리스 쉘터(Edmonton’s Herb Jamieson Centre)에 찾아가 돈을 바닥에 뿌리며 입주자들이 직업 없이 빈둥거리며 복지를 누린다고 몰아세웠다.
그는 곧 대중에게 사과하고 술로 인한 문제를 깨닫고 술 버릇을 고치고 절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물러날 때가 되지 않았냐?”라는 압력을 은연중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인기는 여전히 높았으나 하락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 불패의 선거기록

그는 정치적 배경이 전혀 없이 1980년 캘거리 시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재선, 삼선에 성공해 시장으로 입지를 굳혔고 88 동계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쳤다. 시장에서 물러난 후 멀루니 행정부에 들어가 각료직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당시 주 수상 돈 게티가 속해 있는 앨버타 토리에 입당했다.
그는 캘거리 엘보(Elbow)지역에서 PC 소속으로 당선되어 주 의원이 되었다. 그는 당에서 환영 받지 못했고, 동료 의원들은 그를 자유당원이라며 배척했다. 중간보스를 중심으로 뭉치는 계보정치에서 초보 주 의원이 설 자리는 마땅치 않았다.
돈 게티가 1992년 가을 은퇴를 선언한 것이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그는 당권경쟁에 나서 2차 투표에서 Nancy Betkowski를 물리치고 당수 겸 12대 앨버타 수상이 되었다. 뒤이어 치른 1993년 총선에서 45% 지지율을 얻으며 83석 중 51석을 얻어 승리했다. 97년 총선에서는 51% 지지율로 83석 중 63석을 얻는 승리를 거두고, 2001년 총선에서는 62% 지지율로 83석 중 74석을 얻는 승리를 거두어 날이 갈수록 야당과 격차를 벌렸다.
2004 총선에서 격차가 약간 줄어 12석을 잃었다. 그러나 여전히 압도적 다수당이었다. 총선 후 그는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2006년 12월14일 주 수상 재임 만 16년 되던 날 정계를 은퇴했다. “내가 그런다고 했잖아.”


▣ 파격적 행동, 논란의
대상

그는 절제되고 단정한 매너를 지닌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논란과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 그 중에서 특히 2001년 음주사건은 두고 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음주사건은 그에게 정치인으로서 이미지 관리에 적잖은 손상을 안겨 주었다.
캘거리 시장 시절, 한창 오일붐이 일어 흥청거리는 도시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그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a lot of creeps and bums”라고 일갈했다. 그의 발언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비판과 분노가 쏟아졌고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그는 그의 발언에 대해 해명했으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가 환경부 장관으로 재직 시 대규모 펄프공장 건설 발표를 하자 그는 환경론자들의 거친 항의에 부딪쳤다. 환경론자 한 명이 연단에서 그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는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순간 그의 행동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의 행동이 논란의 대상이 되자 그는 말했다. “그쪽에서 먼저 그랬어.”
2003년 앨버타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다. 미국에서 “캐나다 소고기 사절”이라고 하자 다른 나라들도 같은 행동을 취하며 일부 국가들은 고소를 할 기세였다. 앨버타 소고기 값이 폭락해 그야말로 헐값에 팔렸다. 소를 키우는 농가들은 울상이 되었다. 그 때 그는 기발한 발언을 했다. “일본인 아무나 캐나다에 와서 광우병 병력을 역추적한 소고기를 먹고 병에 걸린다면 100억불을 주겠다.”
그는 주 수상을 사임하기 전 로열티 받은 돈이 남아 14억불을 앨버타 주민들에게 400불씩 나눠주었다. 체크가 왔으니 쓰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개운치 않은 마음이었다. 남았다고 자기들끼리 착복 하지 않고 나눠준 것은 잘한 것이지만 그 14억불을 인프라 건설에 쓰는 게 좋았을 것이다. 400불씩 나눠준 것은 전형적인 인기영합주의(포플리즘)다.


▣ 그의 정치성향

그는 보수주의 정치인으로 작은 정부, 감세가 정책의 핵심으로 주 수상 재임 시 주정부 부채를 모두 갚았다. 그가 주 수상에 당선되었을 당시 부채는 230억 불이었는데 2004년 7월 “앨버타는 더 이상 갚아야 할 부채가 없다”고 선언했다. 많은 한인들은 지금도 환호하는 군중들 앞에서 “Paid in full”이라고 쓴 대형 간판을 들고 있는 주 수상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부채를 다 갚은 것은 아니었다. 부채 갚을 돈이 재정담당부서로 들어가 부채를 갚으려면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가 군중들 앞에서 주 정부 부채가 없다고 공언한 것은 11월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행동이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그는 삭감의 칼을 휘둘러 수천 명에 달하는 주정부 공무원을 감원 시키고 주 정부 통신회사 AGT를 민간에게 넘겼다. Telus가 AGT를 인수했다.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술 가게(Liquor store)와 등록사무소(Registry)도 민간에게 넘겼다.
29개의 주 정부 각료직을 17개로 줄였다. 1994년에는 정부 지출을 9억5천만불 줄였다. 취업 가능한 웰페어 수혜자 3만명에게 혜택을 중단했다. 의료보험료가 오르고 대학 등록금도 올랐다.
1992년 겨울, 그가 주 수상이 되었을 때 혹독했던 추위만큼이나 주 정부 재정도 혹독한 추위를 겪었다. 그러나 그가 주 수상에서 은퇴할 때 부채 제로, 재정적자 제로, Heritage Fund 140억불, Sustainability Fund 170억불을 남겼다. 그러나 정치의 목적은 기업처럼 이윤을 추구해 많은 돈을 남겨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구 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교토 협약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동성결혼에도 반대했다. 2005년 동성결혼이 연방 의회를 통과했을 때 “앨버타는 동성결혼자들의 결혼 증명서 발급 문제로 (연방정부에) 투쟁을 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연방법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법적 방법이 없었다.
그는 캐나다 의료법이 규정한 100% 공적 의료보장정책에 반해 의료보험 이원화, 사설의료보험을 도입하려다 실패했다.


▣ 인간 랄프 클라인

그는 정치인으로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주 수상 되자 천연자원(천연가스 와 원유)가격이 뛰기 시작해 주 정부 살림에 숨통이 트였다. 그는 정치감각이 탁월한 사람으로 문제의 핵심이 무언지 알아내는데 동물적 후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레슬링 선수였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 후 재혼 했는데 두 번째 부인 Colleen을 만난 곳은 그가 잘 가던 술집으로 Colleen은 술집의 캐셔였다. 그들은 1972년 결혼해 둘 사이에 자녀가 한 명 있고 Colleen이 데려온 자녀가 2명 있다.
그의 사인은 C.O.P.D.(만성 폐색성 폐질환)에 의한 합병증이다. 2010년 흡연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폐기종 증세가 발견되었다. 그 후 치매가 찾아왔다. F.T.D.(Frontotemporal Dementia 전측두엽 치매)였다.
이번 금요일 장례식이 캘거리에서 열린다. 국장은 가족들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숱한 화제를 뿌리고 모든 생명체가 언젠가는 가야 하는 그 길을 갔다. 거기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면 하기를 바란다.

기사 등록일: 20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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