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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해피 버스데이, 캐나다
- 캐나다 생일의 유래 -
7월1일은 146번째 맞는 캐나다 생일이다. 이 국가적인 기념일은 흔히 건국기념일, 독립기념일등 투쟁적이거나 정치적 표현을 쓰는데 캐나다는 그런 표현보다 생일이라는 중립적 표현이 어울린다. 캐나다 역사를 보면 7월1일은 캐나다가 태어난 날이니 생일이다.
식민지 대표들이 모여 회합을 거듭한 결과 1867년 7월1일 노바 스코시아(뉴 스코틀랜드), 뉴 브른스뷕, 온타리오, 퀘벡 4개주로 구성되는 캐나다 자치령이 탄생했다. 뉴 펀들랜드와 P.E.I는 연방 합류를 거부했다. 이것이 도미니언 데이(Dominion Day)로 캐나다 데이의 효시가 되었다.
캐나다가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룬 1982년 도미니언 데이를 캐나다 데이로 이름을 바꾸어 경축하게 되었다.
자치령이 되었으나 처음에는 캐나다인이라는 정체성도 없었고 캐나다가 국가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국가는 여전히 영국이었고 여왕이 충성의 대상이었다. 캐나다인들 대부분은 자신을 영국인이라고 생각해 여왕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했다.
캐나다가 미국처럼 공화제를 택하지 않고 입헌군주제를 택한 것은 여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왕당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왕정이냐 공화정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민들 편에 서서, 국민들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 자치령이 되기까지 -

미국에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40,000명의 왕당파가 캐나다로 이주했다.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중산층이었다. 독립전쟁에 대해 미국인들은 혁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왕당파들 보기에는 여왕에 대한 반역이자 내전이었다. 세계사적인 보편적 시각으로 미국 독립전쟁은 혁명이다.
왕당파들이 독립전쟁 와중에 미국을 떠나 북쪽으로 이주해 새롭게 2개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래서 영국령 북아메리카(British North America)에는 뉴 브른스뷕(New Brunswick)과 어퍼 캐나다, 지금의 온타리오다 두 개의 식민지가 생겼다. 센트 로렌스 강을 경계로 지금의 퀘백을 로우어 캐나다(Lower Canada)라고 불렀다. 로우어 캐나다에는 프랑스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왕당파들이 미국을 떠나왔고 영국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영국의 직접 통치를 바라지는 않았다. 이미 자치제도에 익숙해진 이들은 대서양 건너의 귀족들에게 다시 통치 당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이젠 살아도 우리끼리 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국민적 감정이 좋지 않다. 우리와 일본, 혹은 우리와 지나(차이나)관계와 비슷할 것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이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가까워진 것은 독일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출현한 1차대전 이후다.
영국과 프랑스는 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북미 대륙과 관계 있는 전쟁은 나폴레옹과 전쟁이다. 전 유럽 연합군과 나폴레옹과의 전쟁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로 끝났다. 영국이 나폴레옹과 한창 전쟁 중일 때 미국이 캐나다를 공격했다. 이것을 1812년 전쟁 혹은 2차 독립전쟁이라고 한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은 것으로 계산하고 1812년 6월 병력 12,000명으로 캐나다를 공격했다. 전장은 어퍼 캐나다 일대가 되었다. 영국은 나폴레옹과 전쟁 때문에 캐나다로 군대를 파견할 여력이 없었다. 미국이 노린 것도 그 점으로 미군은 토론토를 점령해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프랑스군이 쉽게 항복하지 않았다면 영국은 캐나다로 증원군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캐나다는 미국에 점령당해 북미주 전체가 미국 영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고 항복하자 영국은 프랑스에 포로로 잡혀 있던 영국군 14,000명을 캐나다 전선으로 보냈다.
유럽 최강의 나폴레옹 군을 상대했던 역전의 용사 14,000명의 증원을 받아 그 때부터 공방전이 벌어져 영국군은 워싱톤 D.C.를 점령해 의사당, 백악관을 파괴했다. 미군이 토론토를 파괴한 보복이었다.
전쟁은 소득 없는 소모전을 거듭했다. 프랑스와 전쟁에 이어 광활한 북미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영국은 지쳤다. 미국도 승리의 기약 없는 전쟁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었다. 마침내 미국 대표와 영국대표는 벨기에 겐트라는 마을에서 만나 휴전협정을 맺었다.
1812년 전쟁은 캐나다 국가성립 이전에 일어난 전쟁으로 캐나다 역사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일어난 영국과 미국의 전쟁이지 캐나다가 전쟁 당사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미국에서 건너 온 왕당파들의 마음은 미국에서 멀어져 미국과 캐나다는 별개의 나라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연방에 합류하는 주 -

1867년 4개주가 모여 자치령을 구성할 때 영국령 북 아메리카법(British North America Act)은 연방정부의 역할과 주정부의 역할을 분명히 구별하고 법에 규정되지 않은 모든 사항은 연방정부가 잔존권한을 갖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것은 주정부 권한이 지나치게 커서 남북전쟁을 막지 못한 미국의 경우를 참고로 한 것이다.
연방이 구성되고 초대 총리에는 존 맥도날드가 취임하였다. 그는 10불 짜리 지폐의 주인공으로 캐나다 총리였으나 영 연방 국민의 일원으로 영국에 충성을 다짐했다. 그가 총리로 있을 때 매니토바주, B.C.주가 연방에 가입했다. 1873년에는 P.E.I(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가 연방에 가입했다. 앨버타와 사스캐추원은 1905년 연방에 가입해 캐나다의 일원이 되었다. 뉴 펀들랜드는 1949년 마지막으로 연방에 가입해 캐나다의 10번 째 주가 되었다. 2001년 연방 헌법 개정으로 뉴 펀들랜드 래브라도(New Foundland & Labrador)로 개명했다.

- 독립국가를 향하여 -

자치권을 부여 받았으나 캐나다가 외교주권을 갖게 된것은 1921년으로 최초로 워싱톤에 캐나다 공사관이 설치되었다. 1923년에는 독립국가로서 조약 체결할 권리를 부여받아 미국과 우호협정을 맺었다. 캐나다 최고재판소의 영국 추밀원에 대한 상고 폐지로 연방 대법원이 최고 재판소가 되어 사법주권 확립된 것이 1949년이다. 또한 자치령 캐나다에서 자치령이란 단어가 빠진 것도 1949년이다.
도미니언 데이가 지금의 캐나다 데이로 바뀐 것은 1982년이었다. 1982년에는 영국의회에서 캐나다 법이 통과되어 영국의회는 캐나다에 대한 입법권을 더 이상 다루지 않고 캐나다 의회에 입법권을 넘겨주었다. 비로소 캐나다는 영국 입법권의 종속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독립국이 된 것으로 도미니언 데이(자치령의 날) 에서 캐나다 데이로 바꾼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캐나다 정체성 -

캐나다는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매해 약 25만명의 이민자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다. 초기에는 영국계가 다수였고 프랑스계도 이민사회 주류로서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에 의해 권리를 보장받았다. 트뤼도 수상 재임 시에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채택되었다.
그 후에도 이민행렬이 이어져 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캐나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 다양한 인종을 배경으로 캐나다는 다문화사회(Multicultural society)를 지향한다. 각 인종의 고유한 문화가 어울려 다문화를 형성하는 모자이크 문화다.
캐나다가 영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 여왕이 국가 원수이고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여왕을 대리하는 총독이 있지만 이민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 이루어진 캐나다 사회는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영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홀로 서기에 성공했다.
캐나다 정체성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깨끗한 자연환경이나 풍부한 자원, 패권보다 공생을 추구하는 외교정책 등이 떠오른다.
캐나다는 또한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는 국가로 전국민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고 여성과 어린이들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라던가 여성들의 권리 신장이 어제 오늘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오랜 투쟁의 결과이다.
무상의료 시행을 위해 빨갱이 소리 들으며 돌 맞은 선구자들이 있고 여성들의 권리신장을 위해 싸우다 미친X 소리 듣다 진짜로 미친 여자가 있고 쥑일X 소리 듣다 정말 죽은 여자도 있다. 우리는 이민 와서 다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편안하게 밥을 먹고 있지만 밥상 차리려고 노력하고 애쓴 선배 캐나다 국민들의 노고를 생각하는 캐나다 데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사 등록일: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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