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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대전, 붉은색 퍼피, 플랑드르 참호전 _ (기자수첩)
-붉은 퍼피와 Remembrance Day-

11월11일은 일차대전 종전 기념일로 영 연방 국가들이 Remembrance Day로 기념하고 있다. Remembrance Day는 우리말로 한다면 현충일로 전몰장병 기념일이다. 11월이 되면 캐나다 국민들은 왼쪽 가슴에 붉은 색 퍼피(Poppy)를 달며 일차대전뿐 아니라 2차대전, 한국전, 유고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전몰장병들을 추모한다.
캐나다 재향군인회에서 주관하는 퍼피 달기 운동은 학교, 정부기관 등 단체나 개인들이 약간의 돈을 기부하며 구입한다. 기부금은 재향군인회에서 퇴역장병들의 복지에 쓰이고 있다. 특히 연로한 퇴역장병들 중 장기적 질환이나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후생복지에 쓰이고 있다.
1차대전 때 캐나다군으로 참전한 군의관 죤 맥크레 중령(John McCrae)이 친구 알렉시스 헬머 중위의 전사 후 “플랑드르 전장에서”(In Franders Fields)라는 시를 썼다. 일차대전 때 쓰여진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로 전장(戰場)에 피어난 붉은 색 퍼피를 보고 시를 썼다. 그 때부터 Remembrance Day에는 붉은 색 퍼피를 가슴에 달게 되었다.
3년전 11월 서울에서는 G-20 회의가 열렸다. 그 때 참석한 영국총리도 가슴에 선명한 붉은색 퍼피를 달고 있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는 호금도(胡錦濤) 차이나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차이나정부는 영국정부에 총리 가슴에 단 퍼피를 떼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영국정부는 거부했다.
퍼피(양귀비과의 개양귀비꽃)가 갖고 있는 양국의 역사적 의미가 다른 것이다. 한쪽에는 국가를 위해 산화한 전몰장병의 넋을 위로하는 의미가, 다른 쪽에는 아편전쟁에 패하고 수모를 당한 쓰라린 역사가 있는 것이다.

-플랑드르 평야의 지옥 같은 참호전-

플랑드르는 유럽 대륙 북해연안 지역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3개국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교통, 전략 요충지로 고대부터 유명한 전쟁터였다. 중세 유럽의 최대 모직물 생산지인 플랑드르 지역은 영국-프랑스의 100년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일차대전 때도 플랑드르는 격전지였다. 플랑드르 평야는 북해 수면보다 약간 낮은 저지대로 토양이 점토질이라 물이 스며들지 않아 배수가 안되고 동쪽으로 가는 저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이 저기압은 대서양을 건너 오면서 습기를 머금어 연중 내내 전선성 강수를 동반한다.
일차대전의 특징은 참호전, 철조망, 기관총이다. 특히 서부전선이 그랬다. 레마르크가 쓴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참호전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레마르크는 일차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참호전의 비극을 그려냈다. 배수가 되지 않고 증발도 안 되는 지역에 비가 내리면 플랑드르 평야의 참호 속은 진흙뻘로 변했다. 포격전도 소용없었다. 진흙 속에 틀어박혀 불발탄이 되는 경우도 많았고 포탄이 진흙 속, 물구덩이에 박히면서 터져 상대방에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참호전은 공격하는 측, 방어하는 측 모두 다중의 참호를 파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면에는 철조망을 친다. 그리고 기관총을 설치한다.
그 후 공격하는 측은 대규모 포격으로 상대방 참호를 공격한다. 방어하는 측은 참호 속에 들어가 포격을 견딘다. 대규모 포격으로 철조망 등 장애물이 제거되지만 포격으로 인해 생기는 구덩이는 아군의 돌격에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비가 와서 지난번 포격한 구덩이에 물이라고 잔뜩 고이면 돌격에 장애물이 되어 우회하여 돌격해야 한다.
포격이 끝난 후에는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진다. 보병들은 착검을 하고 적의 참호를 향해 돌격한다. 방어하는 측은 참호에서 돌아와 돌격해 오는 적들에게 기관총을 퍼붓는다. 운이 좋아 일개 열의 참호를 점령한다 해도 2열, 3열의 참호가 있다.
방어하는 측에서는 후속병력을 보내 점령당한 참호를 다시 탈환한다. 이렇게 되면 공격하는 측은 다시 물자와 병력을 모으고 방어하는 측은 참호선을 재정비하며 다음 공격에 대비한다.
이런 식의 전투가 무한대로 이어지며 4년을 끌었다. 1차대전이 천만 명 가까운 엄청난 병력의 손실을 가져온 것은 야전지휘관들이 기관총 항공기 잠수함 등 발전된 무기의 성능은 고려하지 않은 채 보병 기병 위주의 돌격 앞으로 식의 나폴레옹 시대의 전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적의 포탄과 탄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날라 들었다. 끔찍한 참호 속에서 정신이 허물어져 내리는 병사들도 생겼다. 참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언제 적군 저격병의 총탄에 희생 될지 몰랐다.
플랑드르 평야 참호전이 지옥과 다름 없었던 것은 비가 내린 점토질 참호가 물이 빠지지 않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비가 와서 참호 속에 고이는 물이 깨끗할 리가 없다. 장병들은 그런 속에서 침식을 해결해야 했다. 적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진흙뻘 속에서 장병들은 적과의 전투보다 추위, 더위, 습기와 싸워 이기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참호생활의 괴로운 것 중 하나가 대소변 해결이었다. 적의 공격으로 무너진 야전 화장실이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빗물이 고인 포탄 구덩이에 해결해야 했다. 오물이 참호 속으로 스며 들어와 빗물과 범벅이 경우도 흔했다. 때로는 양동이가 지급되기도 하였는데 양동이를 잘못 다루면 오물이 참호 속으로 쏟아져 진흙뻘과 흙탕물 속에 범벅이 된다. 장병들은 군화도 벗지 못했다.
군화를 신은 발로 오물이 뒤섞인 물 구덩이 속에서 며칠을 견디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참호족(Trench foot)이라는 병이 생겼다. 동상과도 비슷한 이 병은 발의 신경이 마비되면서 심한 경우 발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다. 시체를 파먹고 사는 쥐는 고양이 만하게 크게 자라 돌아다녔고 이와 벼룩이 우글거렸다. 쥐들은 시체의 눈과 간부터 뜯어 먹었다. 움직일 수 없는 부상병들은 산채로 쥐에게 뜯겼다.
참호전은 지옥 그대로였다. 그런 전쟁이 4년 동안 지속되었다. 무의미한 돌격과 방어 속에 엄청난 병력손실만 생겼다. 영국군은 단 하루의 돌격전에서 6만명 이상의 병력 손실을 입기도 했다. 일차대전 당시 캐나다군은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사망 19,240명, 중상 35,493명, 포로 및 실종자 57,470명, 독일군 사상자는 단 8천명. 플랑드르 평애 참호전에 참전했던 독일군 연대의 기록에는 영국군 피해 5,121명 독일군 피해 280명으로 기록되었다.

-트렌치 코트-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지옥의 참호전, 추위와 습기를 막기 위해 영국군은 새로운 복장을 개발했다. 그것이 트렌치 코트(trench coat)다. 방수와 보온기능을 갖춘 트렌치 코트로 인해 사망자가 훨씬 줄어 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버버리(Burberry) 사에서 만들어내 큰 돈을 번 버버리 코트는 일차대전의 산물이었다.
이 트렌치 코트는 한 때 남자들의 필수 의상이 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트렌치 코트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배우는 워털루 다리(한국에서는 애수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에 나오는 로버트 테일러와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드가 아닐까?
-1914년 12월24일-
전쟁이 시작된 지 5개월이 되었다. 소집된 병사들은 춥고 습한 참호 속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시체는 곳곳에서 썩어가고 시체를 파먹어 엄청나게 살이 찐 쥐들. 버려진 음식 찌꺼기와 오물에서 발생하는 악취. 드넓은 플랑드르 평야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 때 독일군 참호에서 위문용으로 온 크리스마스 트리가 점화되었다. 트리에 불을 밝힌 독일 병사들은 캐롤을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군 참호의 병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독일군 참호를 응시했다. 잠시 후 몇몇 병사들이 참호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런데 저격병의 총탄이 날라오지 않았다. 병사들은 참호 밖으로 나와 독일군 참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독일군 참호에서도 병사들이 기어 나와 영국군 참호를 향해 마주 달렸다.
중간지대에서 조우한 양국 병사들은 환성을 지르며 담배를 나눠 피우고 과자도 나눠 먹었다. 그들은 마치 이웃집 사람들처럼 어린 시절 성탄절 추억, 전쟁 이야기를 나누고 죽어간 전우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만이 넘는 군인들이 다음날 아침까지 서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사들뿐 아니라 장교들도 가담했다. 후방 사령부에는 축소해서 보고했다. 사령부의 장군들도 아무 소리 안 했다. 무언의 휴전은 하루가 지나서 끝났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헤어져 각자 참호로 돌아왔다.
20 몇 시간의 짧은 해프닝, 수만 명의 군인들은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장교 사병의 구분 없이 국가, 명령, 전쟁 따위를 잊어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 돌아왔다.
죽고 죽이는 전쟁터, 인간성이 상실된 참호 속에서 피어난 잠깐 동안의 인간애, 그들은 다시 싸움터로 돌아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전쟁은 천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피해를 입은 후에야 끝이 났다. 1918년 11월 11일에.

기사 등록일: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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