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혼자 넘는 깊은 산 길
가끔씩 들리는 밤짐승들의 울음소리
나뭇가지 스치며 바스락 댄다.
달빛 만으로 길을 찾아 오르는 밤
오스스한 한기가 살을 파고 든다.
예민하게 곤두선 신경에
오금이 저려 길을 재촉한다.
그때 , 바람을 가르는 소리
누군가 귀신처럼 앞을 막아 선다.
난데 없이 검은 두건을 쓴 검객이
섬광처럼 칼을 뽑아든다.
달을 등지고 서 얼굴 없는 그 그림자
어둠을 압도하고 있다.
한눈에 고수임을 직감한다.
살기가 흐르고 정적이 맴돈다.
퇴로가 없어, 도망갈 틈도 없어
별 수 없다.
힘껏 발을 벌려 크게 맞선다.
얼마나 숨길 수 있을까
내 두려움과 애통함에 창백해지는 표정
달빛 맞 받으며 훤히 노출되어 있다.
흐르는 침묵에 목이 마르다.
등줄기로 피처럼 진 땀이 흐른다.
움직일수 없다.
무림에서 그건 바로 죽음 이기에
미동도 할수 없다.
마침내 그의 칼이 다시 빛을 발할 때
바람이 쪼개지는 소리 들린다.
일격을 당한다고 생각 하면서도
나는 죽은 나무처럼 박혀 만 있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렇게 그가 칼을 거두어 들이고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돌아 선 후에야
흙바닥에 풀썩 주저 앉는다.
단지 목숨 부지했슴에 안도 한다
식은 땀을 닦고 먼지를 훌훌 털어낸다
분함도 서글픔도 부끄러움도 없다
당당하게 패하기로 한다.
( 2004. 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