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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사람들의 유머와 향수병
작성자 토론토     게시물번호 -97 작성일 2003-10-13 09:59 조회수 2606
<< 캐나다 사람들의 유머 >> 캐나다에 살며 만난 웃음짓게 하던 순간을 잠시 돌아 볼까요? 말하자면 <캐나다에서 건진 우스개> 쯤 되겠는데 저는 이런 유머와 재치를 만난 순간에 아주 행복했더랬습니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그러니까 지난 7월 2일 인가 그 쯤이예요. 지방신문인 Whig Standard 지가 날짜가 잘못 인쇄되어 나왔지요. 7월 20일자로 잘못 찍혀 나온겁니다. 처음엔 몰랐지요. 아침결에 한 손님이 신문을 사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이러는 거예요. "이거 내가 너무 오래 잤구나! " 무슨 소린가 쳐다봤더니 빙그레 웃으며 날짜를 손으로 짚는거 있죠? 능청스런 그 손님이 나간 다음에야 웃음이 나왔어요. 자고 났더니 스무날이나 지나버렸으니 그럴 수 밖에요. 이 도시에선 가장 큰 신문인데 이런 실수가 있다니...! 그 실수 자체가 코미디 같기도 하고, 또 그걸 여유있게 웃어넘기는 손님의 유머감각에 덩달아 유쾌해져서 하루 종일 즐겁게 보낼 수 있었지요. 뭐 대단한 일도 아닌것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잔잔한 일상에서 건져낸 반짝 튀어오르는 순간들.... 이런 순간의 기쁨이야 말로 인생의 맛깔나는 양념같은 거 아닐까요? 토론토에서 만난 유머러스한 엽서 한장이 생각납니다. 뚜껑이 열려 있는 맨홀의 사진입니다. 차도 한 가운데 맨홀뚜껑이 열린걸 보니 공사중인 모양이예요. 주의표시로 세운 팻말에 쓰여진 글씨를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지하실 세놓음 (Basement for Rent)" 하하... 그 흔한 '공사중'이란 말 대신 얼마나 재치가 있습니까? 시궁창 냄새나는 하수도관에 세 들 사람도 있나...?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한 번씩 웃고 지나갔을 겁니다. 막 이민와서 힘들었던 그때. 이 엽서 한장이 내게 힘을 주었습니다. '캐나다'란 나라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 글씨를 적어넣은 손, 노동으로 거칠어진 투박한 손길이 던져준 따스함이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For Rent" 간판처럼 이 나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 "For Sale" 간판인데요. 매물로 나온 집 앞이나 자동차유리에도 써 붙인걸 흔히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어느 겨울철에 만난 "For Sale"은 정말 잊을수 없습니다. 겨울이면 지겹도록 많은 눈이 내리는 나라가 또 여기 아닙니까? 시에서 나온 제설차가 쉴새없이 다니며 도로변의 눈을 치워가지만 집집마다 사람 키만큼 높이 쌓아놓은 눈이 동산을 이루지요. 추우니까 쉽게 녹지도 않고 시에서 치워줄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어느 사내 하나가 부지런히 삽질을 합니다. (너비가 60-70cm 되는 눈치우는 삽). 수북한 눈더미가 동산을 이루자 "For Sale"이라는 팻말을 갖다 꽂아 놓았습니다. 누가 제발 이 눈 좀 사가라 이겁니다. 자기 집앞을 치우던 옆집 사내가 껄껄대며 뭐라뭐라 농담을 합니다. 또다른 옆집, 앞집 사람들도 내다보고 웃습니다. 겨우내 지겨운 눈 치우기에 지쳐있던 사람들... 흰눈에 질리도록 움추렸던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오릅니다. 그날따라 만나는 이웃마다 더 반갑고 정겹게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요? 아 참! 눈 이야기 하니까 한가지 더 떠오르네요. 밤새 눈이 많이 내린 어느 이른 아침, 온 세상을 덮은 하얀 마을풍경에 넋이 빠져 바라보고 있는데, 저기서 우리 가게 손님 하나가 스키를 타고 오는 겁니다. 스키... 스키 아시잖아요? 진짜 스키 타고 오더라구요. 도심 한 복판. 발이 푹푹 빠지는 거리를 유유히... 경직되지 않은 사고의 자유로움. 구속받지 않는 행동의 자유가 그녀의 웃음너머로 살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느낌표 하나! 일상에서 건져낸 그 튀어오르는 순간들, 그 반짝이는 느낌들을 가슴에 받아안고 싶습니다. 최근에 크게 웃어 본적이 언제인가요? 그리고 언제 다른 사람을 웃겨 보았습니까? 유쾌하게 웃는 것은 건강에도 대단히 유익하다면서요? 유모어를 아는 사람은 인생의 기쁨도 누릴 줄 아는 사람이겠지요. 순간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이는 영원한 기쁨도 누릴 줄 알며 괴로움도 목마름도, 그 지독한 향수병까지도 잘 견딜수 있을테니까요. << 캐나다에서 겪는 향수병 >> 어느 날 저녁, 어느 조촐한 모임의 뒤끝이었습니다. 모두 바삐 사는 우리에겐 아주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느긋하게 차 한잔 앞에 놓고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데, 이민와서 세 번째 가을을 맞는다는 준규엄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새벽녘에 밖이 소란스러워 잠을 깼지 뭐예요? 무슨 일인가 싶어 잠결에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생각해보니 여긴 한국이 아닌거라... ! 나가면 뭘해? 말을 알아 먹을수 있어야지. 에라, 그냥 다시 누워버렸지요. " 그런데 문득 서러운 생각이 들고, 지금 여기가 어디인가? 내가 왜 남의 땅에 와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더니 급기야는 그밤을 홀딱 지새우고 말았답니다. 그때 우리들은 모두 한마디씩 했습니다. "지금 딱 그럴때야. 이민 3,4년째가 제일 힘들더라구..." "새벽에 잠 깨는거? 그 괴로움 내 잘 알지..." "그래도 한국 나가 보니까 이젠 거기서 못 살 것 같아요." "맞아요! 난 숨이 다 막히는 느낌이더라구요." "어머! 난 좋기만 하던데? 한국이 얼마나 좋아?" 와글와글... 버글버글.... 잠깐 숙연해 지는가 싶던 분위기가 다시 와글벅쩍 해집니다. 모두들 공통으로 겪고 있고, 겪어 내었던, 어쩌면 영원히 겪어 내야만 할 감정의 공감대가 더욱 우리를 가깝게 해줍니다. 모국에 대한 영원한 향수.... 두고 온 핏줄과 거칠 것 없는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이 이따금 가슴을 먹먹하게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는 우리가 선택했고 살아내야 할 제 2의 조국이니까.... 내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이민 3,4년째.... 그때 나는 어땠었나? 토론토를 떠나온 후 401 고속도로를 달릴때마다 자주 착각에 빠지곤 했지요. 꼭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요. 이 고속도로를 주-욱 달려 부산까지 내려가면 거기 태종대랑 해운대랑 용두산공원까지 머릿속에 더듬어 집니다. 자갈치 시장의 횟집에서 소주 잔을 기울이며 불콰해진 모습이 보기 좋던 그이(?)의 얼굴도 떠오르고, 새우깡을 받아먹느라고 사람 두려운줄 모르고 덤벼들던 해운대 갈매기떼... 그 눈부신 모래밭... 파도소리. 그러나, 어느새 자동차는 부산이 아닌 Kingston City 에 도착하곤 했었습니다. 서둘러 집안일을 대충 꾸려놓고 가게로 출근하면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대개는 수십종류나 되는 담배를 채워넣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물건을 채우며 나는 콧노래를 부릅니다. 주로 학생때 부르던 노래들이나 때로 흥이나면 가곡도 나오고 찬송가도 이따금 나옵니다. 손으로는 일하며 콧노래를 부르지만 머릿 속의 나는 여의도로 떠납니다. 4월 그 화창한 봄날, 흰 눈처럼 날리던 벗꽃 무리 속으로... 윤중로를 따라 국회의사당까지 자전거로 달려 볼까요? 강변도로는 어때요? 지는 해를 받아 거대한 황금빛 거울처럼 우뚝 서 빛나던 63빌딩과 그 옆으로 잔잔히 흐르던 한강... 성산대교의 붉은 페인트가 영 촌스러웠는데 지금도 그대로일까? 때로 머릿 속의 나는 소공동, 명동, 충무로를 돌았고 어떤 날은 경기도 장흥유원지의 조각공원과 쟁반막국수가 맛있던 그 초가집을 다녀왔습니다. 마음이 내키면 평창, 용평스키장과 대관령을 넘어가기도 했지요. ...... 이민생활 7년이 넘어 '중포'의 삶에 들어선 지금, 나는 여전히 물건을 채우며 콧노래를 부르지만 이제 더 이상 머릿 속의 내가 우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왜 401 하이웨이가 경부고속도로가 되었다가 경춘국도가 되었다가 영동고속도로가 되곤 했었는지. 왜 몸은 캐나다에 있는데 머릿속으론 전국일주를 하고 다녔는지. ......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향수병을 앓았던 것입니다. 증세가 심한 이들이 일년이 멀다하고 고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 나는 그렇게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그 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세월이 약이 되어 저절로 치유가 된다고 믿지만 그러나, 이 병의 완전한 치유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아니면 완치불가능인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건강한 호기심, 어떠한 환경에서도 만족할 줄 하는 긍정적 사고방식, 단점을 장점으로 뒤집어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이 병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되어 줄것도 같습니다. .......이 향수병에 특효약 가지신 분, 어디 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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