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여년전 알버타 주는 40년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허물고 좌파 NDP (신민주당) 가
선거 혁명을 통해 집권을 하였고 레이첼 노틀리 당수가 역대 두번 째 여성 수상이 되었다.
알버타 정치는 지난 40여년간 보수당 깃발만 꽂으면 개가 나와도 당선되는 그런 곳이었다. 산업 노동자가 없고 거의 자원과 목축 농장 등으로 먹고 사는 곳이니 그러했다. 트뤼도 현 수상 이전의 캐나다를 10년간 장기 집권해온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수상이 알버타 캘거리 출신이었을 정도로 알버타는 보수일색이었다.
알버타 인구의 3분이 1이 사는 캘거리. 주도는 아니지만 오일 컴퍼니 헤드쿼터가 모여있는 이곳에 젊은 인구와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보수적 정치색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알버타 보수일색 정치에 첫번 째 파열음은 무슬림 이민자 출신, 나히드 낸쉬가 캘거리 시장으로 당선 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 3선째로 확고한 기반을 쌓은 인도 출신의 이 정치인은 역대 시장들의 보수적 꼰대성향을 뒤엎고 SNS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업고 캘거리를 잘 이끌어 왔다.
알버타는 그동안 캐나다 연방에서 NDP 가 한 번도 정권을 잡지 못했던 유일한 주로 남아 있었던 터라 노틀리 좌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수세력은 알버타 주민의 바닥에 깔린 보수심리를 이용하여 집요하게 흔들기를 해왔다. 마침 NDP가 정권을 잡을 즈음 시작된 글로벌 오일 가격 하락으로 알버타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보수 세력의 흔들기는 더욱 힘을 얻어가는 형국이다.
사실 알버타주 경제불황은 현 NDP 정권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이유도 현정권의 무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정권, 즉 보수당 정권의 무능과 장기집권의 후유증으로 인한 것이다.
과거 오일경기가 붐을 이루었던 시절 아시아등으로 원유수출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미국에만 의존했던 것과 엄청난 로열티 수입을 활용하여 알버타 경제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쓰지 않고 방만하게 써버린 결과 미국의 환경론자들이 득세하고 국제 오일 가격이 폭락해버리자 알버타 경제는 순식간에 바닥을 쳤고 이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무개념 포퓰리즘, 인기영합적 대중추수의 정치의 전형적인 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지난 40년 보수당 1당 장기 집권이 초래한 정치 비효율성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현 알버타 좌파 정부는 보수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올해까지 15불로 인상하는 안을 밀어부쳐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고 주민들의 저항에도 환경보호를 위한 탄소세를 도입하여 정착시켰는데 이는 다음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정치적으로는 자살행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소수와 약자 보호, 지구환경보존이라는 좌파정부로서의 철학을 잃지 않고 소신껏 나아가는 것을 보면 노틀리 수상의 정치인으로서의 일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10여년 전 알버타 주민들은 보수당 정권으로부터 1인당 40만원에 달하는 번영 보너스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4명이어서 160만원을 수표로 받았다. 당시 알버타 인구가 350만명 정도였으니 무려 1조 4천 5백억이라는 소중한 공적 자금이 주민들에게 1회성 선심으로 흥청망청 써버린 것이다.
이는 명백한 무개념 포퓰리즘 정치였다.
근래 이재명 성남시장이 이와 비슷한 선심행정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당당하게 스스로를 표퓰리스트라고 표명했다. 표풀리즘은 두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대중주의(또는 민중주의) 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추수주의다. 전자는 엘리트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재명 시장이 스스로를 포퓰리스트로 불렀을 때는 이와같은 민주적 대중주의로서의 의미일 것이다. 후자는 정책의 제도적 시스템화에 반하는 것으로 임기응변식 인기 영합주의를 말한다. 보수당 정부의 번영세 지급이 명백한 예가 된다. 시스템화를 벗어난 이와같은 인기영합주의는 매우 나쁜 정치의 한 형태이다. 나는 이재명 시장의 정치철학의 기본은 민중적 대중주의라고 보지만 이번 선심행정은 다분히 인기 영합 대중 추수의적 형태로 아주 나쁜 의미에서의 포퓨리즘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남아도는 돈은 당연히 공적 자금으로서 성남시의 미래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하지도 않았던 돈을 받으면 우선 기분이 좋다. 그리고 아무리 미미해도 탄소세등 세금이 오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이율배반이다. 환경과 복지는 좋으나 세금인상은 싫어한다는 것. 이게 일반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이와는 달라야 한다. 거꾸로 가야 한다. 정치가 민의를 반영해야하지만 진정한 민주정치란 정치인의 앞서가는 세상에의 비전을 주민들이 말하고 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버타 보수당이 지난 40년의 장기집권 동안 경제 다각화와 수출선 다변화 등 알버타 경제체질의 변화를 모색하지 않고 실상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무계획 무정책으로 일관해온 것은 보수정치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볼 수 있는 복지부동, 대중추수적 포퓰리즘 정치였다.
지난 선거에서 역사상최초로 알버타에 NDP 정부가 들어섰다. 만시지탄이나 세상 진보를 향한 위대한 걸음이었다고 본다. 이것은 오랜 보수당 장기집권의 결과 오만과 자만, 안하무인적인 군림정치에 대한 반발이 다분히 작용했으나 그만큼 늘어난 노동계급과 젊은 층 및 지식인층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은 바가 컸다.
노틀리 정부는 세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개념있는 적자 재정으로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고자 해왔다. 정부의 적자재정 정책을 과다 지출로 본다거나 단순히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도 근시안적이며 국가의 재정정책에 대한 이해가 안되어 있는 유치한 반대에 불과하다.
원래 불황에는 적자재정, 호황에는 흑자재정이라는 등식이 일반이다. 그러나 근래 어느 국가도 호황이라고 흑자재정을 펼치지 않는다. 옛날과 달리 국제경제환경은 하루가 달리 변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에 따른 소득 불균형은 근래 시카고 학파가 주도한 신자유주의와 통화정책의 남발로 인해 극심한 양극화로 치달아 경제가 호황임에도 불황의 그늘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요인이 되었다. 즉 적자재정은 호황이든 불황이든 거의 모든 국가 재정정책의 기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알버타 NDP 정부의 적자재정 역시 의료와 교육 등 사회적 복지 확대와 저소득 계층에 대한 소득보조, 각종 인프라 사업 및 리서취 등에 투자하여 직업 창출 등 중산층 및 저소득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과정에서 약간의 세금인상은 불가피하였으나 그것도 중대 기업 및 고소득자에 대한 세수 확대와 각기관 CEO 들에 대한 과도한 급여를 줄이는 것등으로 메워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균형성장을 기하는 것이 주안점이다.
이와같은 적자재정정책은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는 소득주도형 성장론과 어떤 점에서는 일맥상통한 면이 있는바 분명한 것은 정부가 주도하여 경제난을 이겨나가겠다는 것이고 그것의 중심에 사람을 놓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오늘날과 같은 세계경제질서에서 흑자재정은 사실상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고전주의 경제학파에 기초를 둔 자유시장 논리는 거대 금융 산업자본의 시대에 기업과 상위 5%의 사람들에게만 번영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으로 알버타 시민으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구시대적 발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알버타 NDP 좌파정부의 소신있는 정책 방향, 때론 주민들의 인기를 잃는 정책이라도 소수와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인류사회 나은 미래를 향한 것이라면 주저없이 시행하는 모습이야말로 참된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진보정치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