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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양심적이고 정직한 기독교인들을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2121 작성일 2019-07-30 06:37 조회수 2232

인간의 정직성이 종교인의 믿음 보다 더 소중하다!

신앙과 지성, 믿음과 양심은 정직하게 조화되어야 한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는 말은 정직하지 못한 상업적인 속임수에 불과하다!

오늘날 부정직하고 비상식적인 하느님은 무용지물이 됬다!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정직한 신앙이 절실히 필요하다!

기독교 교회는 정직성을 잃었기 때문에 버림받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

인간의 정직성이 성서를 문자주의의 감옥에서 해방시켰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예수가 선포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현실(실제)이다. 하느님은 마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바다와 같다. 하느님은 생명체들이 숨쉬는 공기와 같다. 하느님은 경계 넘어 모든 개체들을 포용하는 포월적 사랑이다. 하느님은 구체적이거나 특수하지 않다. 하느님은 불확실한 우주에서 살아가는 세속적이고 평범한 삶 속에서 느끼는 신비스러움과 경이로움과 황홀함이다. 하느님은 정답 속에서 느낄 수 있기 보다는 의심과 고민과 갈등과 질문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 하느님은 기쁨과 행복과 희망에서만이 아니라 절망과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하느님은 인간의 제한된 문자적 언어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하느님은 단순히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제도적 종교의 신조와 교리적 공식 속에 감금할 수 없다.

 

하느님이 진노하고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이분법적이며 부족적인 것은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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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19-07-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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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정직성과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에 대한 책이 서점에 나왔습니다. 여기에 책 제목과 저자와 내용을 소개합니다: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
저자: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Jose Maria Mardones)
출판사: 신앙과지성

1. 공포의 하나님에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2. 간섭의 하나님에서 의지의 하나님으로
3. 희생의 하나님에서 생명의 하나님으로
4. 강제의 하나님에서 자유의 하나님으로
5. 멀리 있는 하나님에서 가까이 있는 하나님으로
6. 개인의 하나님에서 연대의 하나님으로
7. 폭력의 하나님에서 평화의 하나님으로
8. 홀로 있는 하나님에서 함께 있는 하나님으로(삼위일체 하나님)

내사랑아프리카  |  2019-07-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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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의 주장은 잘 알겠는데요.

먼저, 틸리히가 불트만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받았는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답변 부탁드리고요.

두번째로, 늘봄님이 그동안 기독교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 (naturalistic approach)을 그 동안 줄기차게 주장하셨는데요. 이번 글은 그냥 지나갔는데 직접 자기 답글을 다셔서 여쭙습니다. 도대체 늘봄님의 자연주의적 접근의 정의는 어떤 것인가요?

원글에 인용하신 존 힉(John Hick)은 전형적으로 자연주의적 해석을 거부한 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입니다. 자연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폴 틸리히도 같은 경웁니다. 힉이나 틸리히를 인용하는 것은 좋지만, 늘봄님의 자연주의적 접근에 왜 이들이 인용되는지 설명없이 선언만 하면 안됩니다. 소칼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지적 사기꾼”이라고 비판한 것은 그들이 사기를 쳤거나 거짓말했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 *도 모르는 인간들이 과학에 대해서 운운해서 열받아서 그런 거예요. 즉 과학을 그들이 mispresent 했다는 겁니다. 진화 생물학자 E. O. 윌슨도 그랬구요. 늘봄님께서 힉의 중요한 책을 자세히 보셨다면 힉을 함부로 인용하시지 못했을 겁니다. 틸리히의 경우도, 궁극적 실재, 궁극점 관심, 존재의 지반, 신넘어 신 등등도 자연주의적 종교해석과는 상관이 없는 형이상학적 구축/구성 (construction)입니다. (참고로, 종교학자 황필호 교수가 힉의 [The Existence of God]을 [종교철학개론]으로 번역소개를 35여년 전에 했었습니다.) 힉이 포이어바하를 까고 있는데, 그를 열렬히 받아들인 늘봄님은 힉을 깠어야 합니다.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도 신학적 방법론은 바로 에피스테메이기 땜에 엄청 중요하다는 것을 아실 것이라 봅니다.

세번째로, 위의 늘봄님께서 자기 답글 다시고 또 자기 댓글 다신 마르도네스의 한 장 제목인 “홀로 있는 하나님에서 함께 있는 하나님으로(삼위일체 하나님)”은 왜 퍼 오셨나요? 그동안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으신다면서요.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었잖아요. 삼위일체는 실체라기 보다는 교리적 구성이고 이런 교리가 신자에게 효용성이 떨어지면 의미없는 것이라구요. 폴 틸리히는 이것은 실체론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 보고,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었어요. 이런 비일관성은 바로 늘봄님께서 주장하신 자연주의적 접근에 대한 늘봄님의 이해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늘봄님의 신학은 여전히 자연주의적 접근과 이에 대해서 비판적인 틸리히, 불트만, 본회퍼, 존 힉, 그리고 키쓰 워드(Keith Ward; 한 때 인용하셨던…이 분은 캘거리대에 와서 강연하셨어요. 저도 참석했었죠. 아마도 15년 전 쯤)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시는 것 같아요. 이들 모두 제가 알고 있는 한 자연주의적 해석에 비판적입니다. 종교학(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인지과학 포함)의 방법론으로 자연주의적 해석은 매우 중요하지만 신학적 구성으로는 쉽지 않죠.

마지막으로, 늘봄님은 종교를 은유나 상징의 실재로 보기보다는 이전의 문자주의에 빠졌다가 놀라서 비문자주의 “개종”을 하긴 하셨는데 종교를 보는 태도는 거의 문자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거든요. 결국, 자연주의적 접근을 한다고 하시면서 “하느님/하나님”이라는 말을 누구보다 열심히 쓰고 또 이 말의 의미를 찾는 편집증을 보여주는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지요? 늘봄님은 여기 게시판에 향린교회 출신이고, 불트만의 지적 제자이자 민중 신학자 안병무 교수가 늘봄님 주일학교 선생님이이셨는데도 불구하고 지질학 박사과정에 들어 가신 후에도 삼층세계관을 가지셨다고 토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진보교단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한국기독교 장로회 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회중의 하나인 향린교회 출신이면서도 그 정도였다면 일반 복음주의 교회 사람들은 어떤 정도일까요? 이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보면 지질학에서 신학교에 들어가시는 결정을 하는 순간까지도 늘봄님은 성서비평학에 노출이 안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런 늘봄님이 “불행하게도 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은 정신적 무뇌(無腦) 상태에 빠져 있다.”고 일갈을 하시는데 낯뜨거워지지 않습니까? 이른바 진보적인 목사가 다른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생각을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내리까는 모습은 스스로 자신의 면상을 까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직.

내사랑아프리카  |  2019-07-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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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이 언급하신 [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 가 무슨 책인지 방금 검색을 해봤습니다.

저자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Jose Maria Mardones) 소개를 보니 위르켄 몰트만(Jürgen Moltmann)과 한스 큉 (Hans Küng)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되어 있군요. 그래서 위의 한 chapter에서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몰트만은 독일개혁교회 출신이라서 그런지 스위스 개혁교회출신인 칼 바르트(Karl Barth)의 영향을 받았고, 한스 큉의 경우 의외로 가톡릭 신자면서 바르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그를 가톨릭의 바르트라고 해요. 큉은 2002년 토론토에서 열린 미국종교학회에서 바로 옆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마음 떨림이 컷죠. 큉과 몰트만은 전통적인 신학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큉의 책은 분도출판사에서 번역되었었고,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박봉랑 교수가 번역했고, 그 다음은 박봉랑 교수의 제자였고 또 몰트만의 제자였던 연세대 김균진 교수가 거의 번역하셨습니다. 몰트만의 신학은 전형적인 개혁/장로교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책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나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 등을 봐도 어떻게 그가 철저히 개혁교회(Reformed Church)에 소속된 사람임을 알 수 있죠. 이와 달리 루터교단 출신인 폴 틸리히 (Paul Tillich)가 상징이나 성례전(sacraments)을 강조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죠. 고백교회 출신인 로돌프 불트만 (Rudolf Bultmann)이 그의 신학은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한 것도 놀라운 것은 아니죠.

이른바 바르트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로서 전통적인 신학으로 회귀했지만 보수 근본주의 신학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죠. 그래서 그 제자들에 따라 좌파 바르트, 우파 바르트로 나눠지기도 합니다. 이른바 좌파적 바르트는 이화여대 박순경 교수였습니다. 바르트가 포이어바하의 [기독교본질]의 서문을 썼는데, 박순경 교수가 포이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을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바르트는 철저한 유신론자인데 그럼, 바르트와 박순경 교수는 수구전통신학자인가요? 좌파 바르트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사람이 박순경 교수의 제자 김애영 한신대 교수입니다. (참조: 칼 바르트 신학의 정치. 사회학적 해석 : F. W. 마르쿠바르트를 중심으로김애영 저 · 대한기독교서회,[1991].)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의 간단 이력을 보면서 그의 신학적 전개가 어떤지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학적 계보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하죠. 그림이 쉽게 그려집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9-07-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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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더 덧 붙입니다.

이 책의 서평 요약을 보니 다음과 같은 말이 있군요.

“저자는 이렇게 개인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부르주아적 기독교’로 부르면서 ‘나 중심주의(I-centrism)’의 침투로 인한 결과로 분석한다. 개인주의적 기독교는 너무 쉽게 뉴에이지운동이나 네오(Neo) 불교와 유사한 영성주의자들과 연대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신앙을 인간 내면의 문제로만 여기는 극단적 형태인 것이다.” (신상목 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30182

위의 요약을 보니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는 전형적인 기독교 신학자인 것 같아요. 요즘 “I am not religious but spiritual” 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경향성에 대한 비판을 저자는 한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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