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손자 2006-2-24
큰 아들 진이가 Rocky를 입양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아내가 심심할까 봐서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해서라고 했다. 진이는 회사일로 늦게 집에 오는 날이 많았고 학교 선생인 며누리는 저녁에 혼자 지내야 했다. 신혼살림에 빈집에 혼자 있는게 생각보다 힘들었다고 했다. 둘째는 아이를 가지기 전에 경험을 쌓기 위해서 개를 기른다고 했다. 처음에 그말을 듣고 “짜식 웃기고 있네! 경험은 무슨 경험이 필요해!” 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개를 기르는게 생각보다 힘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거르지 않고 개밥이나 주면 그만이었는데 카나다에서는 정말로 아이를 기르는 것 못지 않게 신경을 썼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 개를 기르면서 경험을 쌓는다는데 수긍이 갔다. 그덕에 우리도 개할배 개할매가 되어서 종종 baby-sitting(?)를 해야 했다. 아들과 며누리는 정말 자식을 기르듯이 Rocky에게 정성을 쏟았다.
난 아직 개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이를 뽑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Rocky는 병원에 가서 이를 뽑았단다. 세상에…! 아들부부는 Rocky와 셋이서 함께 8주간 학교도 다녔다.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었고 아들부부는 Rocky와 학교에 가는 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가끔 우리집에 오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보여주느라고 셋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학교가 끝날 때에는 시험도 보았고 시험을 통과해서 졸업을 했단다.
‘개를 가지고 저러니 진짜 자식을 낳으면 어떨까?’
Rocky가 입양된지 벌써 1년이 됐다. 이젠 정이 들어서 정말 손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월 어느 날 둘째 찬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우리 조금 있다가 집에 갈거예요”
“그래~? 알았어. 엄마한테 저녁 준비하라고 할까?”
“그럼 좋지요!”
“주문해!” 며누리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아버지, 시내가 회덮밥을 먹고 싶데요”
“OK~”
시내는 파란눈을 가진 며누리지만 한국음식이라고 하면 뒤로 넘어갔다. 비빔밥, 회덮밥, 만두, 김치, 갈비, 된장찌개, 생선찌개, 김치찌개 등등 못먹는게 없었다. 시내는 음식에 무척 신경을 썼는데 한국음식에는 red meat가 많이 안들어 가고 야채가 많아서 좋다고 극찬을 했다. 반면에 자기 친정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고기위주라고 친정부모 걱정을 했다. 사실 둘째 사돈부부는 약간 찐편(?)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찬이부부가 왔다. 문을 열었는데도 문간에서 머무적거리고 있었다.
“빨리 들어 와~!”
“아버지 잠간만요~”
‘오늘 따라 얘들이 왜 이래?’
“Surprise!!! 아버님~” 시내가 소리를 지르면서 뭔가 시커먼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 이게 뭐야~!”
“아버님, This is our baby!”
“뭐야~? 어디보자” 시내는 새까만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이었다!
3주 된 강아지라고 했다. 에미를 떨어져 새로운 환경에 와서 그런지 주눅이 들어서 축 늘어진 표정이 애처러웠다.
‘동물이지만 에미를 떨어진 심정이 오죽할까!’
“아버지, 예쁘지요?”
“그래, 예쁘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아들부부 앞에서 애처러워 보인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이름이 뭐냐?”
“이름표를 보세요” 목에 달린 이름표를 보니 “Winston Ro” 라고 쓰여 있었다.
‘아하~! 이젠 영락없는 개할배로구나!’ 녀석은 내 성까지 도용(?)하고 있었다.
시내한테는 12년간 기르던 “Joy” 라는 개가 있었단다. 2년 전에 Joy는 너무 늙어서 앞을 잘 보지 못했고 성인병(?)에 걸렸단다. 더 이상 손을 쓸수가 없어 안락사를 시킨 아픈 경험이 있었단다. 그 일 때문에 시내는 한동안 우울했었단다. Winston은 생김새나 색갈이 Joy를 쏙 빼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Winston를 입양하기로 했단다. Winston은 miniature Schnauzer였다. 시내는 옛날 Joy가 생각나는지 Winston을 꼭 껴안고 있었다. 정말 자기가 낳은 아기처럼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아버님, 예쁘지요?”
“그래, 아주 예쁘구나~!” 시내의 입이 함박만 해졌다.
“어머님도 한번 안아보세요~”
“얘~ 난 못안아”
“한번 안아 봐~” 내가 한마디 했다. 시내는 고개를 내졌는 순진이가 좀 섭섭한 모양이었다.
“엄마 한번 안아 보세요” 찬이도 옆에서 거들었지만 순진이는 종내 Winston을 안지 못했다.
‘한번 안아보지~! 그걸 못해~?’
아들부부를 위해서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여지껏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개에게 입을 마추면 이상해 보였었다. 난 아직 한번도 개에게 입을 마추어 본적이 없었다. Rocky가 귀여워서 안아주긴 했어도 입을 마춘적이 없었다.
“Winston, 이리 와” Winston를 시내에게서 안아들고 심호흡를 했다.
“으~음~ 우리 손자! 요~ 귀여운 놈!” 세상에 태어나서 개손자에게 해보는 첫 입마춤이었다.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시무룩해 있던 시내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시내는 내가 Winston에게 입을 마출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았다.
“아버님, Winston이 그렇게 좋아요?”
“그럼 조~오치! This is my grandson!” 다시 꼭 껴안았다. 아들부부는 서로 쳐다보며 환히 웃고 있었다.
‘에이구~ 제새끼 좋아한다고 저렇게도 좋을까?!’
찬이와 시내는 Rocky가 우리집에 오면 내가 재미있게 놀아주는게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Winston을 입양하자마자, 제일 먼저 우리집으로 달려왔단다.
Rocky와 Winston이 눈에 아른거렸다. 더우기 에미를 떨어져서 맥없이 웅크리고 있던 Winston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찬이에게 전화를 했다.
“찬아, Winston 잘있어~?”
“그럼요~!”
“이젠 잘 놀아? 엄마 안 찾아?”
“그럼요~ 잘 놀아요”
“Winston, say~ hi grandpa~! Hi~~~ grandpa~!” 시내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서 들려왔다. 시내는 내가 전화를 걸어서 Winston의 안부를 물어본걸 그렇게도 좋아했다.
지난 성탄절에 가족들 끼리 선물을 주고 받을 때, Rocky에게도 선물을 준비했다가 주었더니 큰 며누리가 무척 좋아했었다.
‘Winston에게도 입양선물을 사주어야지!’
Pat shop에 가서 Winston의 장난감을 요것저것 샀다.
‘녀석이 이 장난감들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시내와 찬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괜히 실실 웃음이 나왔다. 개손자에게 주는 선물을 사면서 이렇게 미친놈처럼 실실 웃는데, 진짜 손자라면 어떨까?
찬이부부는 주말이면 빨래를 하러 우리집에 오곤했다. 일주일만에 보는 Winston은 전혀 딴 녀석이 되어 있었다. 주눅들었던 모습은 하나도 없었고 제법 까불면서 뛰어 다녔다.
“Winston 이리 와~! 할아버지가 좋은 걸 줄께”
옷장에서 선물 꾸러미를 꺼내서 Winston 앞에 내밀었다. 시내의 눈이 똥~그래졌다.
“아버님, What’s this?”
“Winston 선물이지~!”
“Really~?” 시내는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얘~ 아버님이 이걸 사놓고 Winston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Wow~ Winston, look! This is your present!” 시내는 성탄절 아침에 선물을 뜯는 아이처럼 흥분했다.
“Wow~~~ Winston, look! So many, so nice!”
Winston은 장난감 중의 하나를 물고 좋아했다. 시내는 장난감들을 Winston 앞에 널어 놓고 내 목에 매달렸다.
“아버님, thank you so~~ much!”
순진이와 찬이는 옆에서 흐믓한 미소를 짖고 있었다.
‘이젠 손자가 둘이네~! 난 영락없는 개할배고……’
‘녀석들은 언제나 우리를 진짜 할배 진짜 할매로 만들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