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고층 빌딩가를 걷다 보면 가끔 소나무를 조경수로 심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도심의 매연에 시달리는 소나무는 산속에서 보는 소나무와는 달리 솔잎이 듬성듬성하고 까맣게 솔방울이 잔뜩 달려 있다. 등산을 하다 보면 자리를 잘못 잡아 성장이 늦고 뒤틀린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재수가 없어서 응달해서 자라났거나 돌틈에 뿌리를 내린 경우다. 그런 소나무들도 스트레스성 탈모를 앓는 것 마냥 솔잎이 듬성듬성하고 솔방울이 건강한 소나무 보다 많이 달려 있다.
식물학자가 말하길, 이런 소나무들은 자신이 건강하게 오래 살지 못할 것을 깨닫고, 오로지 후손을 많이 남기는게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성장이나 솔잎을 늘리는 것보다 솔방울을 만들어 내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이다.
식물의 이런 특성을 농업에 이용하기도 한다. 서울에 살 때 아내와 함께 도시 농부학교에 다녔었다. 그때 식물에게 위기 상황을 겪게 해서 수확을 늘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배웠다.
먼저 콩 순치기가 있다.
이것의 유래는 이렇다. 소가 콩잎을 아주 좋아한다. 어느 날 사람의 감시망을 피한 소가 콩밭의 콩잎 일부를 뜯어 먹었다. 농부는 소를 매질하여 쫓아냈다. 그런데 가을에 농부는 소가 잎을 뜯어 먹은 콩에서 더 많은 콩깍지가 열린 것을 목격하게 된다. 소에게 느닷없이 생장점과 잎을 뜯어 먹힌 콩은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자기 자신의 몸을 키우는 것보다 후손을 더 많이 남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열매가 열렸다. 그 후로 콩 순치기는 정식 농사법이 되었다.
콩이 어느 정도 자라면 농부는 낫으로 콩의 윗부분을 쳐서 잘라내며 지나간다. 느닷없이 날벼락을 당한 콩들은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 걸 포기하고 부지런히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고추를 재배할 때는 ‘방아다리 제거하기’ 라는 기법이 있다. 어린 고추나무가 자라다가 처음 두 개나 세 개의 가지로 분기되는 지점을 방아다리라고 한다. 고추 꽃은 이렇게 분기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첫 방아다리에서 한 개 내지 세 개의 고추꽃이 피어난다. 이 첫 분기점의 고추꽃 혹은 고추들을 몽땅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첫 아이들을 잃은 고추나무는 화들짝 놀라 그 위에 분기되는 모든 지점에서 최대한의 고추꽃을 발생시키기 위해 애쓴다. 따라서 수확이 늘어난다.
위 사례가 알려주듯 식물들은 조건이 좋으면 우선 자기 자신을 키우는데 집중한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면 후손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인간도?
현재의 인구를 똑같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2.1의 출산율이 필요하다. 즉 여성 한 명이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 OECD 국가 중에서, 유대교 근본주의자 하레디들이 7명 이상의 아이들을 낳는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하면, 이런 높은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는 나라가 없다. 혹시 인간은 후손을 남기기엔 너무 좋은 조건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인간은 유사이래 최대의 풍요를 즐기고 있는게 맞다. OECD 국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연기관과 전기를 활용한 현대 문명은 각 개개인이 중세 시대 왕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누군가 계산하기를, 현대 상품 제조 및 유통체계와 교통수단과 가전도구들이 과거 하인 100명 이상의 노동력을 각 개개인에게 제공한단다.
더 이상 인간은 굶주림과 추위와 비바람과 맹수에 대해 과거처럼 걱정하지 않는다. 사방이 막히고 지붕이 둘러 쳐진 안락한 집에서 포근한 침구 안에서 잠들며, 비디오 게임과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통해 옛 귀족보다 훨씬 더 풍족한 유흥거리를 즐기고 있다. 나 홀로 먹고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르다. 연애도 귀찮고 출산과 육아는 꿈도 안 꾸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매연 속의 소나무 조경수처럼 일부러 환경을 악화시켜야 할까? 콩처럼 순치기를 해야 할까?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계속)
결혼 출산 육아 - 지난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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