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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그 날...... 진짜 모두 죽을 뻔 했다
작성자 clipboard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4314 작성일 2011-07-13 11:03 조회수 3518
유튜브는 펌 ------------------------ 1953 년 7 월 27 일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에 전면전이 재발할 뻔 한 위기는 몇 번이 있었을까? 국지전의 위험까지 포함하면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겠지만, 정말 위험천만한 위기는 딱 두 번 있었다. 내가 딱 두 번이라고 못을 박은 이유는 이 두 번의 위기야 말로 말 그대로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될 뻔 한 위험천만한 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전>이라든가 <1.21 사태> 따위는 이 위험천만한 위기 범주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발할 뻔 한 두 번의 위기 중 한 번은 1994 년 6 월 16 일이었고 또 한 번은 1976 년 8 월 21 일이었다. 이 두 번의 위기는 모두 한국과는 관계없이 미국과 북한의 직접 충돌을 계기로 발생했는데, 두 위기 때 모두 미국은 북침전쟁을 확고하게 결심하고 추진하다가 북한의 막판 양보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전쟁을 피해가는 결과로 귀결되곤 했다. 이 글에서는 <1976 년 8 월 21 일> 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만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1994 년 6 월 16 일>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점이 있어서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알려진 대로 1994 년 위기란 <제 1 차 북핵위기>를 말하는데 당시 북한이 영변 핵발전소에 있는 5MW 급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추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계기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영변 등 북한 전역의 핵시설을 조준정밀폭격 (Surgical Strike) 하기로 결정하고 D-Day H-Hour 까지 수립한 사건을 말한다. 문제는 당시 대통령 김영삼이 지금도 틈만 나면 자기가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 폭격 계획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항의했기 때문에 이 날 전쟁이 터지지 않은 것이라고 자랑해 온 것과는 전혀 달리, 한국정부는 백악관이 영변 핵시설 조준폭격을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 북침전쟁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1994 년 전쟁위기의 내막은1998 년 신동아 11 월 호 에 Daniel Poneman <북핵위기 당시 백악관 핵비확산담당 보좌관>의 증언이 보도되면서 국내에 처음으로 알려졌었다. Poneman 에 따르면 당시 백악관이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가족들을 비롯해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철수 계획을 극비리에 수립했을 정도로 상황은 긴박했고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제 1 차 폭격 미사일이 날아가기 한 시간 전에 북한 주석 김일성의 전권을 위임 받은 외교부부장 강석주가 백악관으로 전화를 걸어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참화를 간신히 피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날 Poneman은 이런 증언을 하면서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오갔던 이야기들 중 일부는 기밀해제기한인 30 년 이 지나더라도 공개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한 사항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대체 30 년이 지나도 공개할 수 없는 민감한 사항이란 무엇일까? 이 기사에 따르면, 1998 년 9 월 위싱턴 DC의 어느 식당에서 YS 시절 장관급 공무원을 지낸 사람들의 모임인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과 미국 민주당 모임 중 하나인 <Centre for National Policy> 회원들이 연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Poneman 전 보좌관이 구체적인 전쟁계획이 추진됐다는 고백을 하자 한국측 참석자인 박관용이 이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박관용은 북핵위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금시초문인 일을 대통령 혼자만 몰래 알고 북침전쟁을 추진하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반대하고 항의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므로 김영삼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던 셈이다. 참고로 박관용은 2004 년 3 월 12 일 날아오는 집기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대통령 노무현의 탄핵소추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 의사봉을 두드려댄 당시의 국회의장 그 박관용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명령에 따라 태평양사령부가 추진했던 북한에 대한 정밀조준폭격계획이 추진되고 취소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실제로 했거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미국의 침공계획이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 감지한 북한 지도부가 전쟁발발 일보직전에 미국에 굴복함으로써 참화를 비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기들의 운명과 생사가 걸린 문제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주제인 <1976 년 8 월 21 일 전쟁위기>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이 날 아침 7 시 정각, 판문점에서는 백악관으로부터 태평양사령부에 하달된 이른바 <Paul Bunyan> 작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Paul Bunyan>이란 신출귀몰한 솜씨로 도끼를 잘 휘두르던 미국의 전설적인 나무꾼 이름이다. <Paul Bunyan>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미군과 한국군 병력을 태운 23 대의 차량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으로 들이닥쳤다. 물론 북한측에는 일체의 사전통보를 하지 않았다. 지상작전을 수행할 이 특명연합부대의 이름은 <Task Force Vierra>였다. 명목은 3 일 전에 자르려다 북미 양국 병력간에 패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끝내지 못한 나무자르기 과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수립된 작전이었지만, 사실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치밀한 계획아래 북한군측의 조그마한 공격이라도 끌어내 보복전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일종의 시비 걸기 작전이었다.   이 차량에 탑승한 병력 중에는 8 명 2개조로 구성된 미군 제 2 사단 소속 공병대 <2nd Engineer Battalion, 2nd Infantry Division>가 끼어 있었는데, 이들은 무기대신 대형 전기톱을 휴대하고 있었다. 공병대를 엄호할 병력은 미군 제 2 사단에서 차출된 2 개 소대 60 명으로 브라우닝 저격용 피스톨과 도끼자루를 휴대하고 있었다. 이들을 따라 한국군 특전사 소속 8 명 8 개조 64 명이 미군복으로 위장하고 GMC 트럭에 분승해 그들 뒤를 따라 붙었다. 한국군 특전사 병력은 쇠파이프와 각목을 휴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한국군 병력이 일단 <돌아오지 않는 다리> 옆에 트럭을 주차한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럭이 정차하자마자 한국군 특전사 병력 64 명은 타고 온 트럭아래로 모래 주머니를 던지더니 숨겨가지고 들어온 각종화기를 조립하고 배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부대원들은 M-16 자동소총과 M-79 유탄발사기로 무장했다. 들어온 지역이 비무장지대였으므로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인 셈이었다. 특전사 병력 중 일부는 스위치를 손으로 작동해 발사할 수 있는 크레모어 대인지뢰를 가슴에 차고 북한 경비병들을 향해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일부는 휴대하고 있던 베이스볼 클럽과 도끼자루등을 휘둘러 북한군 초소 4 개와 차단기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며 다리 북쪽으로 후퇴해 간 북한경비병들을 향해 계속해서 조롱과 야유를 했다. 이미 상부로부터 일체의 유도전술에 말려들지 말 것을 명령 받은 북한 경비병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같은 시각, 하늘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려 20 대에 달하는 미군 전술 헬리콥터와 일곱 대의 코브라 공격용 중무장 헬리콥터가 그들의 바로 머리위인 비무장지대 상공 안에까지 들어와 선회하기 시작했다. 역시 같은 시각, 군산비행장에서는 미 공군 B-52 전략폭격기가 F-4 Phantom IIs 편대의 엄호를 받으며 북쪽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 전략폭격기 편대 뒤에는 한국 공군 소속 F-5 Freedom Fighter 편대가 따라붙었다. 미 공군 전략폭격기 편대는 괌과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부터 출격해서 군산비행장을 거쳐 이 날 작전에 참가한 것이었다. 이 전략폭격기 편대는 만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진입해 있는 미 지상군 병력이 북한군의 조그마한 공격이라도 받게 될 경우 곧바로 북한 영공으로 진입해 들어가 개성 해주 등에 위치한 군사시설과 민간 전략시설에 집중폭격을 가해 잿더미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작전 중인 병력은 후방 지원부대를 포함해 813 명이었고 이 중 64 명의 한국군 특전사 병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군 병력이었다. 공동경비구역 후방에서는 한국군 제 1 사단 소속 수색대대가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전쟁빌미를 만들기 위한 유도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군 특전사 소속 특명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예비부대역할을 수행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것은 주한미군사령관 Stillwell 이었다. Stillwell 이 한국군과 주한미군에게 이미 언제든지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게 데프콘 3을 발령한 상태에서 주한미군의 상급부대인 태평양사령부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1 천 800 명과 1 만 2 천 명에 달하는 전투병력을 한반도로 급파하라고 명령했다.               대구 비행장에서는 미 공군 <430th Electronic Combat Squadron> 소속 General Dynamic F-111 전폭기들이 조용하게 활주로상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미국 본토에서 날아 온 이 전폭기편대는 전술핵탄두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었다. 만일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북한의 공군과 기갑부대가 출동할 경우 공중으로 날아오른 이 F111 편대는 북한군 지휘부와 전략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북한 주요도시를 향해 공대지 전술핵미사일을 날려버릴 계획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초기 기습전에서 사실상의 전쟁지휘본부역할을 할 미 제 7 함대 소속 항모강습단이 한반도 영해로 진입했다. 항모강습단은 함재기와 지원병력을 가득 실은 5 만 2 천 톤 급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중심으로 미사일 순양함과 미사일 구축함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날의 전쟁발발은 거의 확실한 상황으로 보였다. 1976 년 8 월 21 일의 상황이 2010 년 12 월 21 일 (연평도 해병대의 보복 사격훈련)의 상황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2010 년 연평도 보복사격훈련 때는 미국이 오히려 이명박 정부를 말리는 입장이었고, 한국 모르게 북한에 파견됐던 미국 특사들이 북한 당국을 설득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남한민심>때문에 포사격훈련을 강행할 수 밖에 없다는 사정을 북한에게 공지했고, 포사격 훈련 당일에는 미국군 합참의장 마이크 멀린이 참모들을 대동하고 펜타곤 전쟁지휘본부 상황실에서 밤을 세워 가며 한국군 연대급 규모의 포사격 훈련의 방향과 실탄 수까지 직접 통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1976 년 8 월 21 일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이날 미국은 정말 북한과 전쟁을 벌일 심산이었다. 미국은 한국군 특전사 병력까지 동원하여 공동경비구역 안의 북한 시설들을 파괴함으로써 어떻게 하든 북한 경비병들의 무력 대응을 유도해 보려고 노력했다.             1976 년 8 월 21 일에 벌어졌던 이 전대미문의 전쟁유도 책동은 3 일 전인 8 월 18 일에 발생한 <판문점 나무자르기 사건>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이 사건을 <Tree Cutting Incident> 라고 부르고, 한국은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으로 미군 장교 두 명이 북한군 장교가 휘두른 도끼 뒷부분에 얼굴과 머리를 난타 당해 한 명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다른 한 명은 후송 중 사망했다. 두 명의 사망자 외에도 미군과 북한군 측에서 약 10 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미군측이 자기들의 관측소에서 북측을 감시하는데 큰 미루나무 한 그루가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북한측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나무를 자르는 도중 북한측 경비병력과 마찰을 빚다가 서로 감정이 격해져 우발적으로 발생한 폭력사태로 정리할 수 있겠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미군측과 북한군측의 주장이 서로 다르므로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북한측은 이 나무가 자기들이 심고 기른 것이기 때문에 자르려면 자기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군이 자기들 멋대로 나무를 자르려다 항의하는 자기들 <북한측> 경비병에게 먼저 폭력을 휘둘러 다섯 명이 부상당하는 바람에 방어를 하려다 빚은 불상사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미군측은 북한측의 동의 없이 그들이 심은 나무를 일방적으로 자르려 한 사실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먼저 물리적 공격을 가한 쪽은 자기들이 아니라 북한 경비병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1976 년 8 월 18 일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판문점 나무자르기 사건>이 아니라 그로부터 3 일 후에 벌어진 전쟁위기의 본질이다. 당시 남북한 5500 만 민족은 이 우발적 사건에서 비롯된 미국의 감정적 대응으로 인해 또 한 번 전 국토를 잿더미로 만들고 생사의 갈림길에 설 뻔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우리들은 전혀 알지도 못했던 사이에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남의 나라 정부와 군대의 감정과 의사결정에 운명을 내맡긴 채 말이다. 지금이라고 그 때와 별로 달라 진 게 있을까?   ----------------------------------------- 1976 년 8 월 18 일 북한과 미국 경비병력간에 벌어졌던 패싸움에 사용됐던 도끼는 북한 <평화박물관>에서 보관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기본참고자료http://en.wikipedia.org/wiki/Axe_murder_incident 2011-07-13 11:00 (MST) sarnia (clip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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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1-07-13 12:4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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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영변핵 조준 폭격 시도에서 남한이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요.
김영삼이 뻥친거지요. 사실 IMF 사태가 정말 김영삼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칩시다. 그래도 자기 재임시 일어난 일에 대해 일말의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지, 말하는 품새가 얼굴을 완전 스텐레스 합금으로 깔아놓고서는...

그 76년 판문점... 그때 들어간 특전사가 박희도가 여단장 하던 1공수여단 일부 병력이거든요. 그 이듬해 홍성에 무장간첩 들어온 걸 추적하다 놓쳤는데 1공수가 김포반도를 지키고 있었는데 1공수 경계지역 &#46903;고 유유히 북상에 성공.

육군총장 이세호가 박희도 이새끼 군재에 넘기라고 한걸 정병주 특전 사령관이 손이 발이 되게 빌어서 살려줬더니 79년 12월12일에 사령관 배신 때리고 쿠데타 일으키고. 그날 육군본부 점령한 반란군이 1공수 여단.

clipboard  |  2011-07-13 13:1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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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월 12 일, 아니 13 일 새벽 전두환의 직접 지시에 의해 김포여단으로 달려가서 병력을 차에 때려싣고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쳐 들어갔지요. 차도에서부터 청사 안에다 대고 불문곡직 기관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원래 박희도는 12.12 저녁에 경복궁에 있었는데 육본측과의 신사협정 (서로 병력을 동원하지 말자는)을 깨고 자기 여단으로 가서 무장병력을 끌고 온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노태우는 자기 사단참모에게 전화를 걸어 9 사단 29 연대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켰지요.

박희도는 나중에 육군참모총장에 까지 올랐는데 1986 년에는 그 유명한 국방위 회식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극방부 회식사건이란 국회 국방위소속 의원들을 요정에 초대해 놓고 기를 죽이기 위해 시비를 걸다가 두들겨 팬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민정당 소속 이세기와 신민당 소속 김동영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는데,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개헌정국에서 군부가 국회에 경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민 사건입니다.

암튼 건달이나 하면 딱 알맞을 껄렁패같은 인간들이 대한민국 군부를 지배하고 있던 암울한 시절이었지요.

sattva  |  2011-07-13 15:5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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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결정에 의해 한민족의 생사에 걸려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전시작전권을 2012년에 회수하기로 협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명박과 극우단체 한나라당이 연기하려고 하고 있지요.

clipboard  |  2011-07-13 17:0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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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반환은 이미 2015 년으로 연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쓸개빠진 보수세력이 구걸을 하다시피하긴 했지만 전작권 반환연기 결정은 미국 스스로의 이익을 기준으로 한 판단에 의해서 내려졌다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2010 년 토론토 G20 당시 어느 호텔에서 오바마가 이명박에게 통보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지연과 학연에 의해 지배되는 나라가 이런 말 쉽지 않지만, 저는 영남 출신도 아니고 호남 출신도 아닌 입장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한다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노무현 이 두 사람만큼 비교적 확실한 비전과 국정철학을 가지고 자기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대통령도 찾기 어렵다는 것 입니다. 특히 노무현의 경우에는 당시 &lt;대한민국의 처지&gt;에서 감당하기에는 좀 과분하다 싶을만큼 뛰어난 면이 있는 대통령이었다는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이것 역시 영남 출신도 아니고 호남출신도 아니며 노사모 츨신은 더더욱 아닌 &lt;중립인&gt; clipboard 개인적인 평가라고 하겠습니다.

philby  |  2011-07-13 21:1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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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경복궁에 있다 박희도가 김포에 있는 여단을 갔는데 사령부에서 이순길 부사령관을 보내 부대 장악해서 출동 못하게 하라고 했단 말에요. 그랬는데 박희도가 명령 안듣고 출동하려니까 \"출동하지마, 명령이다.\" 그러면서 권총을 꺼내니까 \"부사령관님 쏠려면 쏘세요. 그러나 부사령관님도 온전치 못할겁니다.\"

상관에게 공갈협박이나 일 삼고... 사령관에게 총질도 하는데 공갈협박은 우습지요. 이런 군대를 어디다 쓸지 참...

근데 말이지요. 내 운명을 남의 손에 맡겨놔야 안심하고 잠이 온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요.

sattva  |  2011-07-13 21:3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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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15년으로 연기가 되었군요.
언제나 다시 민주세력이 정권을 회복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이 그렇게 나라를 말아먹고 있어도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박근혜가 1위를 달리고 있으니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그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같다는데 언제나 우리 국민의 수준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수준이 될까요?

토마  |  2011-07-13 21:5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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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한 북한의 관계만큼 드라마적인 것도 드문것 같습니다. 세월은 다시 흘러 이미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두나라의 운명과 미래는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이명박과 그의 친구들은 \"새로운시대\"에서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도 참으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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