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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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의 영화 중에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작품이 있다. 원제는 ‘Apocalypse Now’ 다. 1979 년에 미국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수입금지에 묶여있다가 6 월항쟁 이후에야 한국에 들어왔다. sarnia는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자마자 보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의 첫 대사와 마지막 대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첫 대사는 요란한 헬리콥터 프로펠라 소리끝에 마틴 쉰이 내뱉은 “Saigon…… Shit” 이었고, 마지막 대사는 말론브란도가 마틴 쉰이 휘두르는 특전대검에 난도질 당한 후 죽어가면서 반복해서 중얼거린 “Horror……” 다.
sarnia는 어렸을 때부터 전쟁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 집안에 군출신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은아버지는 부부가 모두 육군장교출신이다. 사촌매형은 해군사관학교 11 기 출신으로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했는데, 그 아들과 손녀가 대를이어 군인이다. 이 사촌매형은 해병대 교관으로 배트남전에 참전했다.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형 역시 육군으로 이 전쟁에 참여했다. 이런 인연때문이었는지 예전부터 베트남전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보았다. 지옥의 묵시록은 대여섯 번 이상 보았을 것이다.
이 영화 중 압권은 킬고어 대령이 지휘하는 헬기편대가 베트남의 한 마을을 무자비하게 공격할 때 헬기에 장착된 붐박스를 통해 바그너의 악극 The Ride of Valkyries’가 장엄하게 울려나오는 장면이다. 이 무지막지한 살육자들이 요란한 백뮤직을 틀어놓은 채 로켓포와 유도탄, 발칸포를 퍼 부으며 마을을 습격하기 직전, 마을 학교 공터에 어린이들을 모아 피신시키던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젊은 여선생의 모습이 아직도 뚜렷하게 떠 오른다.
어린이들이 뛰놀던 이 평화로운 마을학교가 순식간에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생지옥으로 변하는 그 갑작스런 장면변화도 잊을 수가 없다. 학교 공터에 불시착한 코브라헬기 안에 ‘농라’ 속에 감춘 폭탄을 집어던지고 도망가다 벌집이 되어서 죽어가던 베트남 소녀는 몇 살이었을까? 아마도 열 댓살을 넘지 않았을 것 같다.
작년에 처음으로 베트남에 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느닷없이 십 수 년 전에 본 어떤 베트남전 관련 드라마에서 느꼈던 ‘특별한 분위기’가 떠 올라서였다. 박중훈과 이경영,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베트남 여배우가 출연한 ‘머나먼 쏭바강” 이라는 드라마였는데, 함락 직전 사이공 시내의 그 몽환적인 무질서가 사무치게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한마디로 필이 꽂힌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마틴 쉰이 이끄는 암살단이 고속정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던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잇는 그 강이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영화의 실제 촬영장소가 필리핀 마닐라 근교에 있는 팍상한 폭포라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래서 마닐라로 여행 목적지를 변경했다. 헌데, 팍상한 폭포 투어예약이 여의치 않았다. 갑자기 한국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바람에 동남아 여행일정을 줄일 수 밖에 없는 돌발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결국 그냥 세부에 가서 나흘간 쉬고 왔다.
이게 내가 작년에 엉뚱하게 필리핀 세부에 가서 태풍으로 잿빛이 된 바다와 판자촌만 실컷 보고 오게 된 여행스토리의 어이없는 전말이다.
그러나 올 가을에는 무조건 베트남에 간다.
베트남 뿐만 아니라 커츠 대령 (말론 브란도)가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피안의 왕국’을 차렸다가 결국 죽음의 문턱에 도달해서야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맞이햇다는 그 캄보디아 땅도 함께 밟고 돌아와야겠다. 물론 커츠 대령의 영화 속 정글왕국은 캄보디아에도 베트남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 말했다시피 그 영화의 정글 장면들을 필리핀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대신…… 호치민에서 출발해 프놈펜과 씨엠립을 거쳐 앙코르와트를 왕복하는 장거리 버스투어나 해 보려고 한다. 길거리에서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 코스라고? 괜찮아. 난 버스 오래 타는 거 좋아하니까. 다만 우등고속이었으면 좋겠다.
Sinh Tourist 를 검색해 보니 호치민과 앙코르와트 간 2 박 3 일 투어가 호텔 버스 포함해서 127 불이다. 혼자 숙박하면 좀 더 낼지도 모르겠다. 버스와 배 커누 비슷한 보트를 번갈아 타는 메콩델타투어나 호치민 시내투어는 하루종일 하는 게 각각 10 불대다. 그렇다면 베트남에서는 기를 쓰고 혼자 다닐 필요없이 투어에 참가하는 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길 같다.
근데 문제는......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이 나라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다는 거다. 호치민 탄손넛 국제공항으로 입국해서 캄보디아에 나갔다가 다시 입국하는 여정이니 싱글비자도 아닌 멀티플비자가 필요할 것 같은데, 내가 짜고 있는 여행일정의 경우 정확하게 어떤 종류의 비자를 요구하는지 베트남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아래 사진은 또 뭐냐하면......
내가 20 일 이상 장기여행을 할 때마다 그 여행기획의도와 일정 연락처 등을 메일로 작성해서 발송해 주는 가족들이다. 모친, 누나, 형수, 조카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수신거부를 한 전과(?)가 있는 와이프를 포함해 피드백에 영 성의가 없는 일부 직계가족은 징계차원에서 이 액자에 넣지 않았다. (sarnia/clip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