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소개하는 특정 자료는 구굴에 들어가서 한국의 통계청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 내용들 중에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한국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쇠퇴하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카톨릭이 증가하는 이유는 모두가 아다싶이 개신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 카톨릭은 세계의 어느 카톨릭들과는 퍽이나 다르게 대단히 진보적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캐나다연합교회 역사는 캐나다의 개신교의 역사입니다. 이 교회도 교인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캐나다 카톨릭은 신부가 태부족이라 문닫는 성당들이 즐비합니다. 일부 보수적인 지방 교회들이 (몰몬 교회를 포함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듯 하지만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가 앨버타에서 10년동안 영어교회목회하는 동안 보수적인 타 교단들의 교회들을 보아왔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커녕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외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이것을 거부하지 말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제목 통계청, '개신교인 862만명...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1.03.22 조회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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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개신교인 862만명...' 발표 전하는 소식
통계청 “개신교인 860만”… 교계 반응은 “갸우뚱”
통계에 의문 제기 “현실 받아들이고 자성하자” 의견도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인구부문)’에서 우리나라의 개신교인이 86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내세워왔던 ‘1200만 성도’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해석과 반응이 분분하다.
또 이번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각 종교별 신자수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순으로 10년 전과 변화가 없지만, 불교와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폭 하락한 반면 천주교의 비율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이번 발표에 따르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약 4천7백만명의 한국인 중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2천497만명(53.1%)에 달했다. 총인구 중 불교 인구가 22.8%(1,072만)로 가장 많았고 개신교 18.3%(861만), 천주교 10.9%(514만)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불교가 0.4%, 개신교가 1.4% 감소했고 천주교는 4.3% 증가했다.
그러나 이번 통계청 조사결과를 접한 교계 지도자들은 모두 예상 밖의 수치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기총 직전회장 최성규 목사(순복음인천교회)는 “교회가 보다 성숙했기에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기준을 교회 출석여부에 두지 않고 제자훈련을 비롯한 실질적인 신앙생활의 수준에 따라 응답한 것 같다”며 기독교인 수가 급속히 하락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또 최성규 목사는 “지금도 주변에서는 교회의 성장이 멈췄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으나 오히려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바른 인식”이라며 “교회 건물을 채우는 단순한 숫자개념에서 벗어나, 진정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고 있는 단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오덕교 총장(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도 통계청 결과가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독교인의 분포와는 다소 다르다고 말했다. 오덕교 총장은 “통계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기독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반해 이번 통계청 조사는 매우 낮은 수치로 나타났다”며 “매년 교회수가 늘고 있고 특히 대형교회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기독교인 숫자는 보다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덕교 총장은 “본인이 나름대로 접하는 통계를 볼 때 기독교인의 숫자는 1천만명을 훨씬 상회한다”며 “정부가 기독교와 가깝지 않아 다소 낮은 수치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KNCC 박경조 회장은 “통계를 절대적인 지표로 삼을 수는 없으나 기독교인의 숫자가 준 것으로 나타난 것은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며 “교회가 이번 통계청 발표를 계기로 더욱 자성하고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6. 5. 26. 크리스천투데이 / 김대원,류재광 기자)
한국 기독교인 1300만이 아닌 862만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발표…기독교는 15만 줄고, 가톨릭은 300만 늘어
2005년 11월 현재 종교인은 249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3.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인구부문 전수집계결과'에 따르면, 이 중 기독교 인구는 전체 861만 6000명(18.3%)으로, 불교(1072만 6000명, 22.8%)에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일부 보수교계가 한국 기독교 인구를 1300만 명이라고 밝힌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한편 직전 조사(1995년 11월) 때의 결과(876만 명, 19.7%)보다 15만 명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집계돼 기독교 교세가 하락세로 접어들었음을 드러냈다.
한편 가톨릭은 514만 6000명(10.9%)으로 나타났고, 뒤이어 원불교 13만 명(0.3%), 유교 10만 5000명(0.2%) 순으로 조사됐다.
성별 종교인구를 살펴보면, 여성이 56.4%로 남성(49.7%)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여성은 60~70대, 남성은 50~60대 계층이 가장 많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의 수직성장 "눈에 띄네"
이번 통계 결과,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가톨릭 신자 수이다. 기독교가 하향세인 반면, 가톨릭은 지난 10년동안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1월 1일 현재 천주교 인구는 514만 여 명. 10년 전인 1995년보다 295만여 명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체 인구에서 천주교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10.9%로 조사돼, 10년전의 6.6%에 비해 4.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와는 불과 8% 격차이며, 신도수로 봤을 때에도 350여만 명 차이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 신자수가 줄어든 배경에 가톨릭의 성장이 여파를 미쳤는지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6. 5. 25. 뉴스앤조이 / 김용민 기자)
“기독교, 새롭게 거듭나라”
통계청 발표에 충격 받은 교계를 향한 진언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 (인구부문)’는 교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개신교 인구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그간 가졌던 통상적 이해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에 교계는 이번 통계 결과가 시사하는 바의 의미를 잘 깨달아, 그간의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계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 정도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기독교(개신교) 인구는 861만6천명으로 10년 전의 876만명보다 14만4천명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교계는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긴 하지만, 10년 전보다도 줄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 인구를 1200만 또는 1300만이라 외치며 그 ‘세’를 자랑하던 이들에게 있어 ‘860만’이라는 숫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천주교) 인구가 10년 전의 295만1천명보다 무려 219만5천명이나 늘어난 514만6천명으로 집계된 사실도 교계가 받은 충격을 보태는 데 일조했다. ‘정체 상태’로 여겨왔던 천주교의 성장세에 대한 교계의 통념이 여지없이 무너뜨려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일부 인사들은 통계의 의미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까지 나타냈다.
한 인터넷 신문 기사에 의하면 순복음인천교회 최성규 목사는 “교회가 보다 성숙했기에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기준을 교회 출석여부에 두지 않고 제자훈련을 비롯한 실질적인 신앙생활의 수준에 따라 응답한 것 같다”며 “기독교인 수가 급속히 하락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모 신학교의 총장은 “(종교 관련)통계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기독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데 반해 이번 통계청 조사는 매우 낮은 수치로 나타났다”며 “정부가 기독교와 가깝지 않아 다소 낮은 수치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심지어 이번과 같은 충격적 조사결과가 있게 한 원인을 ‘출산률 감소’에서 찾으려는 목소리마저도 들렸다.
모 신학교의 총장은 “산아제한에 동참했던 기독교계에 비해 낙태를 반대하는 천주교는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 통계의 결론”이라며 “기독교계가 출산문제를 좌시할 경우 천주교에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가 여타의 어떤 통계보다 신뢰할만한 것이기에 이번 통계가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를 잘 깨달아서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원대학교 김성건 교수는 “보통의 통계들은 표본추출방식에 의한 것으로 표본의 크기가 클수록 신뢰도 또한 높다”며 “현 시점에서 ‘2005 인구주택총조사’야말로 가장 신뢰할만한 통계”라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한국교회는 이번 통계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 근본적인 것부터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은준관 총장도 “통계란 것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이번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한국교회는 이번 통계청의 발표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김 교수는 자신도 “한국갤럽이 지난해 5월 발표한 ‘200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에 관한 조사 결과, 2004년의 천주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6.7%로 나타났는데 어떻게 1년 사이에 10.9%로 증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겼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갤럽 정지영 차장은 “종교에 관한 각종 통계를 3개월마다 내고 있는데 천주교는 기독교나 불교보다 모집단 수가 적어 대개 6-11% 사이의 수치를 나타낸다”며 “따라서 전체 인구에서 천주교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8-9% 정도로 추정한다”고 해명했다.
버릴 것 버리고, 취할 것 취하고, 본질에 충실해야
특히 이번 기회에 천주교와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냉철히 분석하고 그 원인을 밝혀, 본받을 것은 본받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신앙의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이원규 교수는 “한마디로 이번 결과는 ‘기독교의 전통적 선교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기복신앙ㆍ물량주의ㆍ개교회주의ㆍ열광주의’ 등과 같은 부정적 요소들은 모두 내버려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이 교수는 “천주교가 사회로부터 어떻게 ‘정의 구현ㆍ사회봉사ㆍ사회에 대한 포용성ㆍ말보다 실천’ 등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들을 얻게 됐는지를 잘 살펴, 본받아야 할 것은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건 교수도 “갤럽이 개방형 질문을 통해서 2004년을 기준으로 주요 종교에 대한 건의사항을 수집하였던 바, 그 중 공통적인 것으로서 많은 응답자들이 ▲종교는 교세 확장의 수단으로 헌금이나 시주를 강요하지 말고 ▲사회봉사와 이웃 사랑을 실천해 주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 사회에서 여러 종교들 중 천주교가 이러한 기대감에 가장 잘 부응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왜 기독교가 종교를 찾는 사람들의 해답이 되지 못하는 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토했다.
은준관 총장 역시 “그동안 교회성장이니 뭐니 하며 개신교가 난리를 쳐왔는데 결과적으로 얻은 게 무엇이냐”며 “수평이동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을 통해 개별적으로 성장한 교회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선교라는 차원에서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이 오히려 ‘시간과 돈, 에너지, 이미지’만 잃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은 총장은 “이번 일을 통해 ‘성도들의 온전한 신앙을 키워주는 일에만 전념하면 비록 시간은 걸릴지라도 전도는 자연히 되게 돼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성건 교수는 “원불교가 비록 아직은 교세가 작은 종교이지만 (2005년 기준 130만 신자로) 최근 10년 사이에 무려 49.6% 나 증가하게 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원불교의 성장 원인도 천주교의 성장 원인들과 거의 비슷하리라 본다”고 밝혔다. (2006. 5. 27. 구굿닷컴 / 이병왕 기자)
개신교 인구 감소 원인을 찾아서
최근 통계청의 발표가 개신교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려하고는 있었지만 개신교 인구가 급속히 감소 추세에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개신교 인구의 감소를 단순히 종교에 대한 시대적 현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동일한 기간에 천주교와 불교, 원불교는 모두 성장했기 때문이다. 개신교 인구가 지난 10년동안 14만4천명 감소하는 사이에 천주교는 219만5천명, 불교는 40만5천명, 원불교는 4만3천명이 성장했다.
한국 개신교가 정체 상태라는 위기감은 10년 전부터 일부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이 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체가 아니라 급락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장로교에서 가장 큰 교회, 감리교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는 한국, 선교사를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송한 한국의 개신교가 이젠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통계에 대해 교계에서는 교회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어 버렸다, 교인들이 성숙해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워 통계에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대중집회를 통한 대량 전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티기독교 때문이라는 등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기간,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천주교가 성장한 원인은 개신교의 감소 원인을 가장 정확하게 반증해 준다.
1960년말 개신교 인구는 대략 225만, 천주교 인구는 80만이라고 추정된다. 1985년이 되면 개신교는 649만, 천주교는 186만이 된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때이다. 한국전쟁, 독재 치하에서 고통받던 한국인들에게 교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당시 종로 5가와 명동성당은 민주인권운동의 산실이었다. 당시 교회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는 선지자적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시대의 혼란기를 지나 1995년까지 개신교는 계속 성장해 876만, 천주교도 295만이 된다. 그런데 이후가 문제다. 그전까지 개신교와 천주교는 비교적 비슷한 성장율을 보이지만 1995년도부터 2005년까지 개신교는 14만이 감소하고 천주교는 이전보다 더 높은 성장율을 보이며 219만이 증가했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한국 개신교는 무엇을 잃어 버렸는가? 천주교가 중앙중심적 시스템과 권위를 갖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 문제에 참여해 갈 때, 한국교회는 개교회 성장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이미 사회 속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되어 버린 마당에 불신자들의 마음 속에서 개신교회는 이미 떠나 버렸다.
일부 사회 참여적인 개신교회들이 있었지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져 대처는 커녕, 토론조차도 제대로 못했다. 근간에 발생한 배아복제 등 생명윤리문제, 사학법, 북한인권문제가 비근한 예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한국교회의 역사는 “사회문제에 적극 뛰어들어 민중의 고통을 함께 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개신교가 자기 교회 성장에만 급급하고 서로 싸우기에 바쁠 때, 천주교는 일관된 목소리를 유지하며 사회문제에 참여해 민중의 교회로 성장했다.
리더십도 그러하다. 개신교가 한창 성장할 때에는 한경직 목사 등 위대한 지도자들이 많았다. 천주교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민주화를 외치며 명동성당에 모인 학생 시위대를 경찰이 강제진압하려 할 때,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은 역사적으로 회자된다. “경찰은 성당에 오면 가장 먼저 나를 만날 것이고 그 이후엔 신부와 수녀를 만날 것이다. 당신들이 찾는 학생들은 그 뒤에 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와 신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 이날 이후 결국 6.29 선언이 발표됐다. 지금은 그때와 같은 독재정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는 불안하고 사람들은 진리를 찾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개신교에는 한경직 목사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헌신적 어른을 찾기 어렵다.
또 천주교는 중앙협의체에서 사제를 파송하고 교회 건물이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사제에게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리가 적다. 그러나 개신교는 교단도 개교회의 재산을 간섭하기 쉽지 않으며 적절한 법적 장치가 없어 비리에 무방비 노출돼 있다. 또 비리가 발생할 시 은혜로 덮고 사랑으로 품고 무조건 용서한 관례가 오히려 신실한 회개의 가능성까지 막아 버렸다. 이제 교회의 비리가 사회에서도 지탄받는 형편이다.
무엇보다도 천주교는 숫자에 있어서 솔직하고 전략적이었다. 개신교가 속으론 병을 앓으면서도 겉으론 성장 성장을 외치는 동안 천주교는 교세 감소 문제를 적극적,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성도 증가율을 점검하며 대책을 세워왔고 사제 양성에도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불신자들을 적극 전도함과 동시에, 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잃어버린 양’에 해당하는 냉담자들을 다시 교회로 회복시키는 일에도 적극 관심을 가졌다. 개신교가 당장 눈에 보이는 양적 성장만 추구할 때, 천주교는 질적인 내실을 기한 것이다.
개신교는 일단 교적에 등록만 되면 그 후에 그가 교회에 나오건 안나오건 성도 수로 집계해 교세를 부풀린다.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이 이중교적을 갖고 성도 수가 부풀려졌다는 숫자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적에 대한 무관심한 관리는 그 신도가 냉담자가 되었을 때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커녕 그가 어디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게 만드는 현실적 영혼 구원의 문제다.
결국 거품이 빠진 한국교회는 1천3백만 성도에서 860만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통계는 교회의 전체적인 사회참여, 리더십, 교회 개혁과 구령에 있어서 실제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런 통계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회개나 통감, 대책 없이 여전히 거품 속에서 허우적거린다면 한국 개신교계는 내년에 더욱 충격적인 통계에 경악하게 될 지 모른다. (2006. 5. 30. 크리스천투데이 / 사설)
한국교회, 미래는 있다
인구 조사 결과에 대한 개신교 관점의 분석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통계청은 2005년 11월 1일부터 15일까지 15일에 걸쳐서 실시한 인구주택 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 중 교회의 관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을 중심으로 개신교에 대하여 갖는 시사점을 따져보고자 한다.
이농 현상 심화로 농촌 목회 위기…도농 통합 네트워크 목회 모델 필요
통계청의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로 2005. 11. 1 현재 우리나라의 총 조사 인구는 4,728만 명으로 2000년(4,614만 명)에 비해 114만 명(2.5%) 증가, 연평균 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0년 전인 1955년(2,153만 명)보다 2.2배 증가한 것이다. 또한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 인구는 2,277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8.2%를 차지하며, 2000년보다 141만 명(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인구의 수도권 편중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동 지역이 4.8%, 읍 지역이 5.0% 증가한 반면에 면 지역은 14.3%가 줄어들어 여전히 도시 지역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읍 지역의 인구증가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이고 청장년층은 감소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농촌 인구의 고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이것은 갈수록 농촌 목회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농촌 교회에 대한 지원과 함께 농촌 교회들 사이에 연합 활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도농 교회들 사이에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를 해결할 도농 통합의 네트워크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노년인구 크게 증가…노인 상대 목회 모델도 필요
다음으로, 연령별 인구구조는 30대, 40대 인구가 가장 많으며, 유소년 인구가 감소하고 노년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항아리형’ 인구피라미드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계층별로 보면, 유소년 인구는 1970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고, 청장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증가율이 둔화되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71.6%)이 2000년(71.7%)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65세 이상 노년인구는 1995년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2000년의 300만 명 대 진입에 이어 5년 만에 400만 명대로 진입하였으며, 노년인구의 비중이 9.3%로 2000년의 7.3% 보다 2.0%p 증가하여 인구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경이 주를 이루었던 전통 사회에서는 노인을 포함한 대가족이 생산 활동에 참여했고 이러한 상황은 생산 활동의 주체이자 가산의 대표인 노인이 가장 존경받고 중시되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리고 농촌 사회를 토대로 한 유교 사상은 예로부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통합시키는 중요한 종교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유교가 그 사상의 토대를 상실한 현대 산업사회는 이에 걸 맞는 새로운 종교 이념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개신교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의 개신교가 근대화와 산업화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 하는 것은 많은 반성을 필요로 한다.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소외 계층으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층에 대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의 태도로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 출산은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의 산물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와 함께 최근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저 출산 문제이다. 이번 조사에서 유소년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을 봐도 저 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저 출산과 관련된 최근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임신기피의 첫째 이유는 경제적 이유 곧 양육비 부담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경제주의식 사고방식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문제를 지나치게 돈 문제로 귀결시키는 경향이 짙다.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중대한 사안을 문제시하는 것도 국가 경쟁력 약화라는 경제주의식 사고이고,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도 경제주의식 발상인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산아제한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아기를 많이 낳는 것이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하며 강요하다시피 주도하여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정부나 국가 기관에 의해 출산을 강요한다면 개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중심주의 인식에서 벗어나 출산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고귀한 일임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공공성을 지진 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의 연구 결과, 남성중심의 사회일수록 저 출산이 심각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면서 직장이 중시되고 가정은 소비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출산과 육아는 사사로운 개인의 일이며 하찮은 일로 인식되어 왔고, 특히 출산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돼 왔다. 그러나 대부분 산업 사회의 경제는 가사 노동이 떠받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에서는 어떠한가? 한국에서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일수록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이 강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당회나 기획위원회에 대한 기회는 여성들에게 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교회에서 여성들은 대개 주방일이나 행사 동원 등과 같은 보조 업무를 맡고 있다. 교회 안에서 양성평등의식을 높임과 함께 가부장식 교회 구조에 대한 개선이 절실하다 하겠다.
교육은 입신출세를 위한 것? 기독교인 부모의 문제의식 절실
다음으로 교육 상태별 인구를 보면 초?중?고, 대학 등 정규학교 졸업자의 학력별 분포는 초등 및 중학교 졸업자는 750만 명(24.5%)이며, 고등학교 졸업자는 1,263만 명(41.2%), 대학 졸업 이상은 1,050만 명(34.3%)으로 조사됐다. 특히 우리나라 30세 이상 인구의 평균 교육열 수는 11.01년으로 2000년(10.24년)보다 0.77년 증가하여 고학력화 경향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교육열이 교육을 받는 당사자인 학생들의 교육열이 아니라 교육을 시키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입신출세를 위한 교육이 되지 않도록 교회 차원의 지도가 필요하리라고 생각된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최고가 되라고 가르치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고 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고 약한 사람을 배려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산업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고학력화가 진행될수록 혼인 시기는 더 늦춰지는 것이 보통이다. 교육을 마치고 결혼이 가능한 시기가 그만큼 더 늦춰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는 연령별 혼인상태가 2000년과 비교하여 미혼자 비중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서 10%이상 증가하여 늦은 결혼과 독신주의 경향을 나타냈다. 또한 이혼자의 비중은 2000년 총 조사 대비 1.1%p 증가한 것으로 조사돼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점은 이제까지 이혼에 대하여 가져온 교회의 관점을 바꾸어야 함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해 지나치게 편견을 가지고 바라봐왔다. 이혼을 한 사람은 뭔가 정상이 아니고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온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초혼자에 한해서 목사님이 주례를 해준다고 정해 놓음으로써 재혼자(이혼자)의 결혼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혼을 함으로써 가정의 소중함이 깨져버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혼은 ‘가정을 버리는 것’? 교회부터 인식의 전환 필요
그러나 이혼을 한다는 사실이 가정을 소홀히 하거나 가정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정이 소중하기 때문에 불행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혼을 권장한다거나 쉽게 이혼을 결정하라고 부추기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늘어나고 있는 이혼자에 대해 이제는 교회에서 포용력 있게 품어주고 소외되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종교에 대한 조사이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2,497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53.1%이며, 1995년에 비해 1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것을 종교유형별로 보면 전체인구 중 불교인구가 22.8%로 가장 많고, 개신교 18.3%, 천주교 10.9% 순으로 나타났으며, 3대 종교 중 불교는 3.9% 증가했고, 천주교가 74.4% 증가한 반면에 기독교는 1.6%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실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기독교 인구가 1,300만 명이라고 이야기돼온 것은 실제보다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 인구가 부풀려지는 과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대개 교회에서 교인 수에 대한 통계는 출석 교인수가 아니라 재적 교인수에 기초하고 실제로 출석을 안 한지가 오래 되어도 여전히 재적 교인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한 교회를 떠난 교인이 다른 교회에 출석을 할 경우, 그 교인은 이전 교회에서도 재적 교인수로 잡히고 옮긴 교회에서도 재적 교인수로 잡히기 때문에 교인수가 부풀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인이 또 다른 교회로 몇 번 옮길 경우에는 세 개 또는 그 이상의 교회에서 재적 교인으로 잡히기 때문에 실제 교인수보다 훨씬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교세를 과시하기 위해 재적 교인수 자체를 부풀려 보고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가정하면 기독교 인구는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각 교단에서 보고하는 교인 수를 다 합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다고 하는 웃지 못 할 얘기까지도 나오는 것이다.
기독교만 줄어들고 다른 종교 상승한 배경은?
이번 통계청의 조사를 전제로 할 때, 종교 인구에 대한 조사 결과는 한국 기독교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의 기독교가 7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기독교 인구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불교와 천주교 인구 역시 대폭 증가하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에서 보는 대로 불교와 천주교 인구는 여전히 증가했는데 유독 기독교 인구만 감소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미준과 한국갤럽이 2005년에 공동 조사한 내용을 통해서 보면, 과거에 종교를 가졌지만 현재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 가졌던 종교로 3대 종교 중 기독교가 62.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불교: 21.1%, 천주교: 16.7%). 반면에 종교인 중 개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개신교에서 12.2%로 가장 낮게 나타났고, 천주교에서는 18.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천주교인 중 과거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에 개신교로부터 개종한 사람이 57.1%로 나타났는데, 이는 98년도의 52.9%보다 다소 증가한 수치이다. 물론 이 조사에서 과거 종교를 가진 천주교인이 20여명에 불과해 일반화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흡인력이 가장 부족하고 이탈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개신교가 사회에서 공신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개신교 관련 조사에서 개신교가 공신력을 잃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원인은 개신교 지도자를 포함한 개신교 구성원들의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못하고 있으며 조직으로서의 한국 교회도 사회에서 기대하는 올바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교인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가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교인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교인 수가 아무리 많은들 성서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정신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교계 내의 반목과 갈등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흔히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지만, 보수와 진보라는 것도 역사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세속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성서라고 하는 절대성을 지닌 기준에 터하여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비판할 수 있는 초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인구 총 조사는 한국 교회에 대하여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가 사회에서의 공신력을 회복하고 올바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영합하지 않고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현실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예언자의 기능과 함께 세속 사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삶의 틀과 규범을 제시하는 사제의 기능을 충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2006. 5. 30. 뉴스앤조이)
정재영 교수
연세대학교 종교사회학 박사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최근 정부 통계청이 발표한 종교현황을 보면 불교가 1,072만 6천 명으로 전체 인구 비중의 22.8%를 차지하고 있고 다음으로 개신교가 861만 6천 명으로 18.3%, 천주교는 514만 6천명으로 10.9%, 원불교는 13만 명으로 0.3%, 유교는 10만 5천 명으로 0.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개신교 인구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불교와 천주교 신자는 크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져 개신교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이번 조사를 보면 개신교는 지난 1995년 11월 876만 6천 명보다 오히려 14만 4천명이 줄어든 반면 불교는 10년 전 1032만 명보다 약 40만 명 늘었고 천주교는 10년 전 295만1천 명보다 무려 219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개신교가 이단시 하고 있는 천주교의 비약적인 성장은 ‘놀람’ 그 자체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불교도 적지 않은 성장세를 보인 반면 오직 개신교만이 성장보다 오히려 줄어든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위기에 대한 경고로 보여진다. 개신교는 한국 최대 종교로 자부하면서 성도 1천만 시대를 넘어 1,200만을 외치던 것이 바로 어제 일이 아니던가. 그러던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은 순전히 자만에 빠진 결과이며 특히 숫자에 대한 허구를 믿고 복음전도를 등한시 하고 현재에 안주하여 편안한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확한 성도 숫자를 파악하기보다 교단마다 성도 수를 부풀려 교세를 내세우려는 교만함이 드러난 셈이다.
이 통계 자료가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국교회 허구성이다. 반면 성도가 무려 219만 명이나 증가한 천주교 경우, 사회봉사에 대한 많은 투자로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써 신앙의 순수성과 경건함을 유지하여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신뢰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끊이질 않는 목회자 지도자들의 부패한 모습과 교회의 물질적인 추구, 성적타락은 물론 세속적인 삶이 교회의 불신을 불러왔고 성도들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이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지 않았을까. 비리와 부패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어느 교회 장로 혹은 집사가 연루되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도 한국교회의 부패상을 말해 준다. 잇따라 매스컴을 통해 폭로되고 있는 목회자들의 성 스캔들이나 헌금횡령,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는 한국교회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 현실을 입증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성도는 타종교로 빠져 나간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대형교회도 텅텅 비게 될 날이 곧 올지 모른다. 교회연합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연합사업에는 협조를 하지 않은 이중성도 교회를 약화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이웃교회를 형제자매의 우애로 생각하기보다 경쟁자로 여기고 비방과 모략, 그리고 중상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이단으로 몰아 도태시켜 버리는 형상이 오늘 한국교회를 위기로 몰고 간 이유일 것이다. 사실 800여만 성도 가운데 이단 교회 성도를 빼면 실질적인 정통 교회 성도는 600만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복음전도는 멈춰있고 목회자들의 잇따른 부도덕한 행위가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2006. 6. 5. 크리스찬신문 / 사설)
통계숫자의 현실
한국교회 교인 수는 얼마나 될까, 한 1천여만명 정도, 그러지 말고 1천2백여만 명쯤으로 해두자. 언제부턴가 1천2백만 명은 이미 공식(?)화된 통계쯤으로 알고 또 그렇게 통용하고 있는 숫자다. 전체인구의 4분의 1정도라고 말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다종교국가에서 개신교인수가 이 정도면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개신교인수가 861만 6천명으로 지난 10년간 14만4천명이 줄었다고 밝혔다. 타종교(천주교, 불교 원불교 유교 등)가 한 자리 수 이상으로 성장한 반면, 개신교만이 유일하게 하향곡선을 그렸다고 발표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천주교의 경우 10년 전보다 무려 74%(현재 514만6천명)의 증가추세를 보여 개신교와 대조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교인수 1천2백만명은 그동안 버블(거품)에 불과했던가. 아니면 희망숫자였던가. 무엇보다 861만 6천명 수치가 향후10년 간 어떻게 변해갈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상향, 하향 중 하나 일게 분명하다.
지금상황에서 섣부른 진단이겠지만, 숫자증가를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에 드러난 중진목회자의 도덕적 타락실태, 해외선교사의 성 추태, 부자교회 목사의 횡령사건, 목회세습 등 일련의 사태만 보더라도 쉽게 감지된다. 심각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반성하고 회개하기보다는 발뺌을 하거나 감추기에 급급해 한다는데 있다. 걸핏하면 교회에 덕스럽지 않은 일이니 덮어둬라, 심지어 전도의 문을 닫게 하려는 악한세력의 음모니 귀담아 듣지 말라, 라고 밀어부치는 데에 원인이 있다.
현재 처지에 뼈아픈 회개와 자성을 갖지 않으면서 한국교회의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냉철하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관심 없는 척 하지만 꼭 지켜본다. 그리고 평가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불미스러운 일이 터질 때마다 대개 감추거나 우물쭈물 넘기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누구하나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이가 없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목회자는 많지만, 불미스런 일에는 나 몰라라 등한시했던 게 사실이다.
체면세우기 좋고 얼굴 내밀어 인기 끄는 자리는 남에게 뒤질세라 뻔질나게 다녔던 것 부정할 수 없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한 복음의 소리는 결국 내부문제에 얽혀 힘을 잃은거나 마찬가지다. 복음에 무슨 설득력이 있고 어떤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기독인수 감소는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오죽하면 정부여당이 당사를 찾은 기독교대표 인사에게 푸대접했겠는가.
노선과 정책사안이 다르다고 그렇겠는가. 그래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목사들인데.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것은 이미 기독교계를 별볼일 없는 종교단체로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이렇게 외면당해야 하는 것인가. 변화와 개혁, 환골탈태한다는 각오가 없으면 기독교가 추락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을 따르지 못한다면 먼 훗날 사회로부터 하나의 종교기관쯤으로 기억될 게 뻔하다. 한 예로 천주교의 폭발적 성장 배경에 대해 한 학자는 대표적으로 천주교의 조직력, 청렴성, 결속력과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갖춰 사회적으로 집중된 힘을 발휘했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타종교에 대해 열린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젊은층으로부터 큰 호감을 얻었다는 평도 있었다. 이에 비해 기독교(개신교)는 조직력, 청렴성, 결속력 부분이 미약한 수준이다. 통계숫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인수의 감소는 기독교를 평가하는 사회의 바로미터일 수 있다. 그만큼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861만여명의 성도를 지키위해서라도 한국교회가 다시한번 살을 도려 내는 아픔의 개혁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 (2006. 6. 5. 크리스찬신문 / 전용관 부장)
종교인구 변화에 대한 개신교의 대응 가능성
천주교는 가지고 있고 개신교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세 가지
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지난 5월 26일 ‘인구주택총조사’라고 하는 통계청에서 행한 인구 Census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조사는 매 5년마다 대한민국의 전 주택과 인구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조사인지라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가 불교, 천주교를 포함한 대한민국 3대종교 중에서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다. 2005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10년 전인 1995년도와 비교해볼 때 개신교는 1995년 876만 명으로 인구구성비에서 19.7%였는데 2005년도에 861만 1000명으로 절대적 인구에서 14만 4000명이 줄어들고 1.6%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러므로 현재 개신교는 인구구성비에서 18.3%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인구구성비에서는 23.2%에서 22.8%로 0.5%로 감소하기는 했으나, 절대숫자에 있어서는 1072만 6000명으로 40만 5000명이 증가하였으며, 천주교는 놀랍게도 295만여 명에서 514만여 명으로 219만 5000명이 증가하여 74.4%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현재 천주교는 10년 전 인구구성비 6.6% 수준에서 10.9%로 급하게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우리들에게 적지 아니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우리 개신교가 지난 몇 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간 적응되어왔기 때문에 개신교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통계는 그렇게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동안 같은 기독교 뿌리에 있는 천주교가 급격하게 성장을 하였다는 사실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우리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통계수치는 전체 종교인구의 증가이다. 지난 10년간 종교인구구성비는 50.7%에서 53.1%로 절대인구수치로 237만여 명이 증가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로 우리들에게 의미를 던져준다. 첫째는 전체 종교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개신교인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그 증가 숫자의 대부분이 천주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탈세속화이론, 교회 출석은 줄었지만 종교적 성향은 줄지 않아
지난 몇 년간 개신교인의 감소에 대해서 사람들은 몇 가지 막연한 추측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세속화 이론에 근거한 ‘종교이후기’를 주장하는 측이었다. 서구사회에서 교회가 비어가는 모습 속에서 학자들은 그간 현대사회가 종교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다. 즉 사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탈세속화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교회에 사람들이 참석하는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그들의 종교적 성향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여기에 더해서 스포츠나 연예활동과 같은 대체종교의 출현이나 명상이나 뉴에이지 같은 신흥종교의 출현은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통계는 이러한 사람들의 이론이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간 우리가 추측했던 대한민국 사회가 ‘종교이후기’로 넘어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이해임이 이 통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개신교인이 줄어들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절대적 종교 인구는 적지 아니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즉 종교를 찾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는데, 개신교만이 그들을 받아들이지도 흡수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증가인구의 대부분이 천주교로 찾아가고 있는데 우리 개신교는 그러한 유인 원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목회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간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교회주의라고 하는 한국교회 특유의 교회구조를 통하여 이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종교적 필요들에 대해 적절히 잘 대응해온 결과라고 본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으로 인해서 개신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좋은 이미지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고 그러한 영향은 개신교회 특유의 열성과 결합하여 70~80년대 급격한 성장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천주교는 현재 개신교회가 주고 있지 못한 선한 이미지를 이 한국사회에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개신교회는 그러한 장점들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찾아가는 이유
물론 관점에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세 가지 정도의 원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천주교는 종교적 색채를 가지고 있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엄숙한 의례는 오늘날 쉼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멈추어 설 수 있는 존재의 공간으로서 비쳐졌을 것이다. 더구나 결혼도 안하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살고 있는 성직자들의 모습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삶과는 다른 종교의 영역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찾고 있는 종교성은 이와 같이 영적가치를 전해줄 수 있는 구별되어진 곳이다. 천주교는 이러한 이미지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천주교가 가지고 있는 봉사적 이미지이다. 자주 언론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천주교 성직자들의 헌신적인 봉사의 소식들은 천주교가 많은 봉사를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록도에서 평생을 헌신했던 오스트리아 수녀의 이야기라든가 마더 테레사의 전적 헌신의 봉사 이야기는 천주교가 이러한 이미지들을 구축하는 데 큰 목을 담당하였다고 본다.
셋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미의 추구이다. 조용한 장소로서의 천주교회와 그 의례는 오늘날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무언가 사색이 가능한 곳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쉼이 있고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는 여가화 사회에 들어선 현대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삶의 성찰과 존재 의미의 추구 가능성은 그 무엇보다도 큰 선택요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어쩌면 개신교회와 비교한 특징일 수 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들의 장점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 적지 아니한 교회들이 이러한 반성에서부터 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타난 영성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복지관 등을 통한 봉사체제의 구축, 그리고 다양한 성인교육 프로그램들이 그러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 특유의 구조적 유연성은 이제 이러한 현대사회의 요구들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바라는 것은 한국교회가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방향으로 선회되는 것이며, 또 이러한 일들이 사회적으로 선한 이미지를 구축해서 전도의 문을 열어가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2006. 6. 1. 뉴스앤조이)
조성돈 교수는 실천신학에 사회학적 방법론을 빌려온 목회사회학이라는 학문분야를 한국에서 개척하여 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특유의 목회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번 통계청에서 나온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인구의 변화를 가지고 나름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한국교회 '성장 마이너스' 시대
통계청 2005년 인구 조사 결과 발표 "기독교인 - 1.6%"
'교세 감소'라는 한국교회의 위기 의식이 사실로 확인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함이 지적됐다.
통계청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인구부문)에 따르면 한국 사회 종교인구는 증가한 반면 3대 종교 중 기독교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발표된 종교유형별 인구 추이를 보면 총 인구 4천7백4만1천 명 중에서 종교인구는 2천4백97만1천 명으로 10년 전인 1995년에 비해 10.5%의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는 8백61만6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3%를 차지해 10년전 8백76만 명에 비해 1.6%가 감소한 14만4천 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천주교는 지난 10년동안 74.4%라는 수직 증가율을 보여 기독교와 대조를 보여 한국교회의 위기감이 증폭됐다.
이번 조사 결과 불교는 10년 전에 비해 40만5천 명이 증가한 1천72만6천 명으로 나타나 종교 인구 중 1위를 기록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우려 했던 교세 감소가 현실로 드러남에 따라 교세 침체와 감소 현상의 원인을 다각도로 연구해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수직 성장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아 왔으나 90년대 이후 성장률이 급감하면서 정체를 보여왔다.
그동안 기독교계는 통계청의 조사 결과와는 별도로 교단별로 집계한 자체 통계에 따라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되는 1천2백만명에서 1천5백만명을 교세로 집계해왔으나 이번 통계청 조사 결과 전체인구의 20%선을 넘지 못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2006. 6. 1. 한국기독공보 / 박만서 기자)
"교회 분열, 투자없는 미래가 자초"
가톨릭 74.4% 급성장과 대조, 전체 인구의 18.3%만 기독교인
한국 교회 '마이너스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인구부문)는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급성장을 보이며 양적인 면에서 탄탄대로를 달려 왔음을 자부했던 한국교회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이 조사 결과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 종교인구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성장률 '-1.6%'를 기록했다. 불교는 3.9%로 소폭 증가했으며, 가톨릭은 지난 10년 사이에 74.4%라고 하는 급 성장을 한 것으로 보고됐다.
인구로 보면 우리 나라 전체인구는 1995년에 4천4백55만4천명에서 2000년에 4천6백13만6천명으로 증가한데 이어 2005년에는 2.5%의 증가율을 보여 4천7백27만9천명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 종교인구는 1995년에 2천2백59만8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50.7%를 차지했으나, 2005년 조사 결과는 2천4백97만1천명으로 인구 자연 증가 범위를 뛰어 넘어 전체인구의 53.1%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0년 사이에 10.5%가 증가한 수치이다. 최근에 사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원불교의 경우도 49.6%의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기독교(개신교) 인구는 10년전인 1995년까지 성장세를 보여 전체인구의 19.7%인 8백76만명을 기록했으나, 이번에 발표된 조사 결과에서는 8백61만6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8.3%로 14만4천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증감률로 보면 -1.6%를 기록했다. 이 결과는 인구 자연 증가분과 함께 분석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번 결과에 대해 기독교계는 일단 충격과 함께 그동안 한국 교회가 사회적으로나 교회 내적으로 홍역을 치뤄 온 결과로 예상된 것이라 분석했다. 90년대부터 사회적 변혁기를 지내 오는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함께 곤혹을 치뤄 왔다. 교회적인 부흥을 지향하며 7, 80년대의 성장을 주도해 왔던 보수적인 교회는 일반인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했으며, 사회 참여를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 왔던 진보 그룹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채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결국 양적인 성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지 못함으로써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90년대부터 사회적으로 강조된 사회복지 분야에서 교회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아 왔다. 이같은 원인은 결국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만을 거듭해 온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병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기독교란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회복지 사업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회의 공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일화 된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함으로 대외적인 홍보 활동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가톨릭의 사례에서 역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이 지난 10년간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외적 신임도를 꼽고 있다. 대외적인 홍보활동을 단일화 함으로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이미지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교단 차원의 활동이 체계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교회는 최근에 대사회적인 활동에서 극우 성향을 보임으로써 젊은층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마이너스 성장의 또 하나의 이유로 꼽고 있다. 서울시청앞에서 진행된 기도회가 극우 성향과 함께 친미 성향을 보이면서 교회 내부에서 조차 비난을 받아 왔으며, 교회에 대한 안티 그룹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 교회는 극우 집단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이밖에도 성장을 겸험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부족했다는 비난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는 지난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세를 보여 왔음도 불구하고 차세대 그룹을 양성하지 못했다. 교회학교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의 지적에 의하며 한국 교회는 해외 선교 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반면에 미래의 일꾼을 키우는 투자에는 인색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가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면서 인력의 재생산 구조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정확한 통보를 확보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교단별로 조사한 내용 등을 근거로 전체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특히 교회내 통계에서 수평적 이동을 교세 집계에서 생각하지 않아 교회내 통계에는 상당수의 교인이 2중 3중의 교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조사 결과를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한국 교회는 지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006. 6. 1. 한국기독공보 / 박만서 기자)
2006년 통계청 숫자와 하나님 나라 운동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개선 없이 교세 확장은 없다
임희모 교수 (한일장신대학교)
통계청이 2006년 5월 25일 보도 자료를 통하여 밝힌 통계에 의하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한국교회 교인 수는 약 862만 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일부 교인들에게 충격을 준 모양이다. 먼저 교인수의 감소에 따른 충격으로 보이는데, 2005년에는 한미준이 갤럽과 공동으로 조사하여 발간한 『한국교회 미래리포트』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 수는 약 1,3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통계상의 차이가 큼에 따른 허세의 논란인데, 아마도 조사방법상 통계청의 숫자가 더욱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놀람은, 일부 교인들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한국교회(개신교)의 교인 수가 불교나 천주교에 비하여 증가가 되지 못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숫자만 보더라도 개신교는 숫자나 비율 면에서 떨어진데 반하여 불교나 가톨릭은 신도 수와 비율이 오히려 늘어났다. 이에 대하여 실망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2003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년에 3~4회도 아니고 불과 1~2회 정도 불교 절이나 천주교 성당이나 개신교 교회에 나가면서 신도라고 응답한 수는 총 신도수의 각각 33,1%, 7,2%, 2,8%이고, 아예 1년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 불참자도 각각 22,1%, 26,1%, 11,7%이다. 다시 말하면 각 종교 신도 수에 허수가 있는데, 불교의 경우 33,1%, 가톨릭은 26,1%, 그리고 개신교는 11,7%가 명목상의 신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계청 자료에 나타난 종교별 신도 수가 늘고 안 늘고를 따지자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논자들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하고 대안이라고 하는 것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주로 종교사회학적 접근을 통한 것인데 여기에 신학적 혹은 선교신학적 접근이 덧붙여진 총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인은 몇 년 전에 이것과 관련하여 예장(통합) 선교정책협의회에서 발제한 바가 있는데 교인 수 증가와 관련된 부분만 요약하여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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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 여러 통계학적 자료를 퍼와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갖는 기본 테제, 즉 보수적인 종교는 성장하고 진보적인 종교는 쇠퇴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 천주교 신자 일반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의 스위치가 보수종교의 쇠퇴의 징조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국 불교의 성장과 천주교의 성장은 그 동안 갖추지 못한 종교활동의 조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보구요. 개신교의 경우, 폭발적인 성장 이후 대사회적 활동이나 자기 조직력 강화에 실패했다고 봅니다.
한국문화가 갖는 문화적 저항(cultural resilience) 력이 되돌아 왔을 때, 거기에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한국 개신교가 미국의 1960년대의 한계곡선에 있다고 봅니다. 이미 20여년 전에 순복음 교회의 성장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고령화에 대한 것이었고, 저도 2002년에 순복음 중앙교회에 가서 그런 면을 포착하였습니다. 반면에 순복음교회와 비슷한 성향의 만민중앙교회에 갔을 때 분위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열기가 흘러 넘쳤습니다. 이러한 종교간의 스위치는 가능하지만 보수교회가 진보교회에 비해 쇠퇴의 비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작은 변수외에는 드물다고 봅니다. 그리고 늘봄님이 퍼오신 글에서 개신교 각 개별교단의 증감에 대한 통계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한국기독교 장로회의 기사에서는 기장이 가장 쇠퇴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http://www.veritas.kr/contents/article/sub_re.html?no=15179 교단별 통계는 더 구체적인 자료가 나와야 합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개신교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전철을 밞는다고 보구요. 북미의 가톨릭 교회는 중도적인 입장에서 아직은 잘 하고 있다고 보구요. 신부나 수녀가 부족한 것은 제 2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진보적 신학의 영향으로 많은 수녀와 신부가 떠났기 때문이며, 미국의 가톨릭 교회의 급격한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늘봄님께서 퍼오신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칼럼이 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이미 1990년대에 종교사회학자 이원규교수의 한국종교의 세속화론을 의식하고 거기에 반대되는 생각을 담은 것이며, 천주교회 성장에 대한 논의를 포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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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뢰와 존경의 회복: 하나의 시론
-내사랑아프리카
이전 칼럼에도 지적했듯이, 보수적인 종교가 성장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학계에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좀 더 나아가서, 로드니 스탁 (Rodney Stark)같은 사회학자는 그냥 보수적인 종교가 아니라 유일신관 (monotheism)을 갖춘 보수 종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이상형 (ideal type)이다. 이 것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 (Max Weber)의 용어로서, 글자 그대로 현실적으로 이상형인 남자와 여자를 배우자로 만나기 힘들듯이, 개념적으로 서술된 또는 추상화된 실재가 현실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사회적 실재가 이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가지 변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 타이완의 사례에서 본 종교 성장
필자는 최근 기독교 선교학계에 잘 알려진 선교학 학술지인 Missiology에 타이완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서인Richard Madsen의 Democracy’s Dharma: Religious Renaissance and Political Development in Taiwan (민주주의의 다르마: 타이완의 종교적 부흥과 정치적 발전,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을 서평할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책은 한 때 타이완에서 카톨릭 선교사였던 사회학자가 쓴 책으로 타이완의 국민당 정권의 지원을 받았던 기독교는 역동성을 잃고 힘을 펴지 못하는데 반하여, 왜 불교와 도교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부흥을 맞이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불교와 도교가 강한 나라에서 선교의 발판의 토대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던 타이완의 기독교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국민당과 정치적으로 합류하므로써 전통 문화의 강한 저항을 받아 결국 정치적 힘은 물론 종교적 힘도 잃을 수 박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평 안내에는 서평하는 책의 추천 이유를 한 두줄 부가 하라고 요구했는데, 필자는 이 책은 기독교 선교에 ‘실패’한 좋은 사례로서 ‘선교학’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가 힘을 읽게 된 것은 정치적 억압이었다기 보다는 부패한 정치와의 결탁, 기독교인들의 특권적 지위 향유, 그리고 사회적 존경의 상실이 주요한 이유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불교와 도교는 자기 종교에 대한 열정적 신념, 사회적 봉사를 통한 교세 확장, 결과적으로 획득한 사회적 존경으로 최근 수십년간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 한국 천주교의 몰락과 회생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백년전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되었을 때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조선 정부의 처절한 박해로 상당 기간동안 회생활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제사문제였다. 그런데 당시 박해가 얼마나 무서웠느냐 하면 초기 서구 기독교의 순교사와 비교가 되질 않는다. 흔히들 로마 제국 치하에 있었던 기독교 박해로 인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1천명은 고사하고 수백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 (Rodney 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 1997, pp. 179-80)에 반해, 한국 카톨릭 순교는 단기간에1만명에 이르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순교의 역사였다. 그러므로 초기 서구 기독교 교회사에 조금이라고 아는 목회자들은 순교의 역사를 말하려면 이제 서구의 초대 기독교 순교사보다는 한국 천주교의 순교사를 언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유교처럼 강한 종교적 신념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정치 체제 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제사는 유교 사회를 지지하는 주요한 사회 규범체계였기 때문에 제사를 반대하는 행위는 조선 왕조라는 유교 체제의 뿌리를 송드리째 뒤흔드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교 체제하에서의 천주교 박해는 종교적 신념보다는 사회 규범과 윤리를 위반한 낯선 종교에 대한 박해의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원인이 어떻든 간에, 천주교 박해는 한국의 종교사의 지도를 뒤바꿔 놓은 결과를 가져 왔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보다 1백년 앞선 천주교는 새로운 도약을 할 기회를 잃고 있었다. 그런 천주교가 최근들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체계적인 선교 정책과 함께 정의사회구제단과 같은 역할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쌓고있는 사회적 존경 때문이다.
3. 한국 개신교의 부흥과 정체
한국 천주교에 반해,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성장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개신교가 전래되던 19세기 말에는, 종교적 윤리를 대신하는 유교 체제가 붕괴되고, 불교는 박해를 받아 산중 불교가 된 상태였고, 천주교는 회생의 기회를 상당한 기간동안 가다려야 했던 시기였다. 이런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개신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선교 환경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해방공간과 한국 전쟁 기간동안 한국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의 개신교인들이 대거 남하했고,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개신교는 미국적 교파주의와 분열, 그리고 보수성을 등에 없고 급성장 수 있는 발판을 확실히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개신교의 수는 과거 1천만명을 자랑하던 통계수가 8백만 정도에 머문다는 조심스런 진단이 나오고 있다. 1천만에서 8천만명으로 수가 줄어든 것은 통계상의 허수로도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 개신교의 발전이 정체되었다는 개신교 현장의 소리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과제이지만 시론적으로 세가지 요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한국 개신교 자체의 변화
한국 개신교는 현재 교인들의 세대 교체 중에 있다. 한국의 대대적인 이농 현상과 도시화의 지수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징조인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인구의 이동 역시 정점에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 개종자들의 수가 는다기 보다는 자기종교 내의 재생산, 즉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종교를 자식들에게 되물려 주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는 초창기의 역동성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 2세대는 결코 제 1세대가 갖는 열심을 따라하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종교든 피할 수 없는 순환구조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1950-70년대 경험한 전도폭발이라는 그런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둘째, 한국의 전통 종교와 문화의 복귀
종교와 문화적 가치의 속도는 혁명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설령 한국의 개신교가 주류문화인양 거만해진다 해도 여전히 종교로서의 불교와 유교적 가치가 생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든지 부흥(renaissance)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 성장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은 바로 그 종교가 문화적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형태든 한국 사회가 쉽게 기독교 문화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앞으로 연구 과제이지만 반 기독교 운동(anti-Chrisntian movements)같은 반기독교 정서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며, 이러한 사회적 힘 (social force)이 유지되거나 증대한다면 기존의 개신교 성장에 심각한 도전 또는 저항이 될 것이다.
셋째, 종교가 사회적 인심을 잃으면 성장도 잃는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위치는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저항을 받는 위치에 있다. 그 저항이 주류 종교가 갖는 여유만만함의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태로 빠질 수도 있다. 4천만이 넘는 남한 인구에서 8백만명은 결코 주류 문화를 형성할 수 없다. 이 때 받는 사회적 저항은 결국 개신교인 수의 감소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수는 남는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개신교의 성장은 계속 어떤 형태로든 보장될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무서운 변수는 개신교를 타겟으로 삼는 세속적 반기독교 정서와 운동이 거세진다면 앞으로 보수적 성향과 열정적인 선교만으로는 개신교 성장의 앞날은 물론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기 힘들 것이다. 종교적 성장이 보수-진보라는 축으로만 왔다갔다 한다면 한국의 보수 개신교의 성장은 여전히 잠재력이 크다. 왜냐하면 거의 절대 다수의 개신교도가 보수 복음주의 또는 근본주의적 신념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 일제 치하 때나 한국의 근대화 과정 때는 통했다. 그러나 현재 개신교가 직면한 것은 개신교도들의 세대 교체와 맞물려 반개신교 정서가 사회의 주류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어, 종교적 신념의 보수성이 사회적 존경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신교가 주류 종교가 되려면 사회에서 존경받는 종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 개신교는 겸손해져야 한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메시아로 추앙될 정도로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최근 30% 대로 곤두박질 친 이유는 최근 한국의 기사를 몇 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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