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르니아가 청소년이었던 시절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내셨던 분께서 존경하시던 인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치노미야 (さちのみや = 祐宮) 라는 이름의 일본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무쓰히토로 개명한 시치노미야 씨는 교토에서 태어났습니다.
황실의 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덴노'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두뇌가 명석했을 뿐 아니라, 리더쉽도 뛰어나고 모험심도 강했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청년시절부터 시치노미아 씨만을 줄곧 존경해왔던 그 대통령께서는
다 늘그막에 난데없이 이순신 장군도 함께 존경하기 시작했다는데,
그 분께서 이순신 장군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존경했다는 시치노미야 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오늘은 그의 위패가 봉안된 신사에 가려고 합니다.
심심하신 분들은 저와 함께 도쿄로 날아가 볼까요?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는 하루에도 여러 번 있습니다.
도쿄 시내에서 가까운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가는 젠닛쿠-ANA는 D 구역 53 번 탑승구에서 출발합니다.
밴쿠버에서 도쿄 하네다 까지는 열 시간 정도 걸리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지루한 비행은 아닙니다.
제법 아기자기하고 입맛에도 맞는 기내식 두 번 먹고
갤리에서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는 간식 여러번 먹고
영화 세 편 보다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787 기종은 창문가리개가 없는 대신
채광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큰 창이 있어서
해가 저문 어스름 저녁 무렵 처럼
비현실 세계 같은 몽환적인 기내조명을 유지하면서
분위기 있는 비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오른쪽 창가에 앉았다면
북극하늘의 부드럽고도 아련한 저녁 여명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겨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왼쪽 창가에 앉았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북극하늘의 부드러운 저녁여명 대신,
하네다 공항 도착 직전 후지산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시치노미야 씨의 위패가 봉안된 신사에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싸르나아가 택한 방법은 하네다 공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하마마쓰초역으로 가서
지하철 2 호선을 갈아타고 하라주쿠역에서 내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실 이 방법보다 저렴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습니다.
케이큐선을 타고 시나가와역에서 내려 2 호선으로 갈아타는 방법입니다.
녹색 순환선을 도쿄에서는 2 호선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야마노테선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어를 모른다고 당황해 할 필요 없습니다. 서울 지하철 2 호선과 색깔도 노선 모양도 아주 비슷한 야마노테선만 찾으면 됩니다.
"이번에 정차할 역은 시청, 시청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입니다. 이 역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넓습니다. 내리실 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열치는 충정로, 홍대입구, 신도림 방면으로 가는 내선순환열차입니다"
고색창연해 보이는 이 이층건물이 야마노테선 하라주쿠 역 입니다.
1906 년에 개장했다고 하니까 올해로 109 년 된 건물 입니다.
13 만 그루의 나무들로 뒤덮힌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은 시치노미야 씨의 신사는 하라주쿠 역 바로 뒷편에 있습니다.
1903 년 부터 1945 년 까지의 일본을 제국일본이라고 부릅니다.
시치노미야 씨는 바로 그 제국일본의 기초를 만들고 다진 사람입니다.
다수 일본인에게는 영웅일지 모르지만, 인류, 특히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1912 년 시치노미야 씨, 즉 메이지 일왕이 죽은 후,
제국일본의 국어 (일본어) 교과서에는 일제히 '메이지천황어제'라는 제목의 메이지 일왕 유훈이 실렸습니다.
이 시기 제국일본의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였습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다음과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되는 황국신민헌장을 외우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동아시아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메이지유신 지사들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내선일체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대동아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메이지진구 하고 불리우는 시치노미야 씨의 신사를 참배한 사람들 중에는
엘리자베스 2 세 영국 여왕과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부자, 버락 오바마 등 여섯 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있습니다.
이 중 엘리자베스 2 세와 조지 W 부시 주니어는 당초 야스쿠니 진자를 참배하려고 했다가
주변국의 반발을 의식한 참모들의 반대에 부딪혀 대신 이 곳을 참배했다고 합니다.
웃기는 것은,
비록 야스쿠니 진자가 규모가 더 크고 전 일본 역사를 망라한 전몰자를 기리는 대표적 신사이긴 하지만,
이 곳에 합사된 이차대전 전범 14 명 만을 염두에 둔다면
야스쿠니 진자는 깃털에 불과하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 시치노미야 씨의 위패가 봉안된 이 메이지 진구야 말로 몸통에 해당되는데
야스쿠니 진자를 참배하면 시끄럽고 메이지진구를 참배하면 잠잠하다는 것 입니다.
어느 신사에나 입을 헹구고 손을 닦는 정결예식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까불까불하는 방콕의 서양인들과는 달리
도쿄의 서양인들은 왠지 고분고분하고 풀이 죽어있는 모습입니다.
아이에게 기모노를 입혀 신사에서 행운을 기원하는 저 외국여성의 진지한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참배하는 곳 입니다.
참배소를 돌아 안으로 더 들어가면 메이지 일가의 유품을 보관해 놓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습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장소이지만, 계단 아래에서는 사진촬영이 허용됩니다.
일단 계단 위에 올라 선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공손한 자세로 서서 무언가를 기원합니다.
거의 일본인들 일 것 입니다. 한국인 중 저기에서 참배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아마 없겠지요.
참배하는 외국인들은 있습니다.
제가 피곤하지만 않았다면 메이지에 참배하는 서양인들에게 무슨 의미로 참배했느냐고 물어봤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에너지가 옛날같지 않다는 말이겠지요.
어쨌든 지금 생각하니 좀 아쉽네요.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한 거지만,
시치노미야 씨, 즉 메이지가 없었으면 오늘의 일본은 사뭇 다른 나라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코리아반도도 전혀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갔겠지요.
오늘은 도쿄에서 산책하기 좋은 메이지진구에 다녀왔습니다.
-------------------------------------------
11 월 초 어느 날 점심 무렵
싸르니아는 일본의 아베 총리와 아주 지근거리에 있었더군요.
아베 총리와 그 일행은 청와대에서 밥을 안 주는 바람에
인사동에 있는 경복궁이라는 식당에 몰려가서
5 만 원 짜리 등심 한정식으로 쓸쓸하게 점심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경복궁 경내 청와대에서 밥을 먹고 싶었는데 거기서 밥을 안 주니까,
화도 나고 해서, 이름이라도 같은 대중식당 '경복궁'에 가서 밥을 먹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