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내에서 가장 큰 볼거리중에 하나인 런던타워... 동화속에 나올법한 아름다운 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에서 처형되고 수감생활을 하던 감옥으로 쓰였다
이곳에 언급된 금액은 별도의 명시가 없는 한 모두 캔불 기준이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포함이 되어 있지 않아 유로화 대신 자국의 스털링 파운드화를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1파운드는 현재 1.6불, 1유료는 1.4불, 1미불은 1.3불로 영국 파운드가 이중에서는 가장 비싸다
지난 3월 17일에 올렸던 영국 여행 1편
https://cndreams.com/news/news_read.php?code1=2345&code2=1&code3=270&idx=29176&page=0
영국 방문시 공항은 어디를 이용하나?
에어캐나다는 캘거리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LHR)으로, 웨스트젯은 갯트윅 공항(LGW)까지 직항이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직항보다 경유가 좀더 저렴하고 에캐보다 웨젯이 좀더 저렴하지만 날짜에 따라 가격 차이도 많으므로 출발일을 바꾸어 가면서 저렴한 직항편을 찾는 것이 좋겠다.
참고로 히드로가 갯트윅보다 런던시내와는 좀더 더 가깝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전철 비용이 매우 비싸서 4명 정도라면 전철보다는 우버택시가 좀더 저렴하다.
혹시 아일랜드(정식 국가명 : 에이레) 더블린도 함께 돌아볼 예정이라면 웨젯을 이용해 더블린으로 직접 가는 것도 방법도 있다. 갯트윅보다 더블린 항공편이 좀더 저렴하다.
영국 본토에서 아일랜드까지는 페리를 이용할 수 있으며 차도 싣고 갈수 있다.
런던 시내 버킹엄 궁전 앞에서 위병 퍼레이드를 보려고 기다리는 관광객들 모습
영국에서 핸드폰 사용
기존 핸드폰을 현재 사용하는 통신사의 로밍으로 이용 시 가격이 비싸다. 텔러스 기준으로 하루에 13불정도..
미리 캐나다에서 유심을 구입해 가는 것이 저렴하고 편리하다. 특히 아이폰의 경우 이심이라고 해서 QR코드를 스캔해서 넣으면 모든 준비가 완료되는데 기존 심카드를 빼고 넣고 할 필요가 없어 편하다. 이심을 입력시키면 한 개의 폰에 두 개의 전화번호가 생기는 셈이고 기존 번호는 꺼두면 로밍 비용은 내지 않게 된다.
미리 구입 하지 못했다면 영국에 도착해 공항 자판기나 편의점에서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미리 구입해 간다면 mobimatter.com 여기가 가장 저렴한 편인데 가격마다 통신 컬리티 차이는좀 있다.
자동차 렌트
런던 시내에서만 체류한다면 차는 필요 없다. 공항에서 시내로 전철을 타고 이동하며 런던 도심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하면 된다. 다만 시 외각으로 나가거나 런던 이외 도시를 여행할때는 렌터카는 필수이다. 특히 3~4명 이상인 경우 대중교통 비용보다 더 저렴하다.
영국의 렌터카는 수동변속기가 기본인데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고 도로는 좌측통행이라 운전하기 낯선데다가 수동변속기라면 더더욱 애로가 있으므로 가급적 추가요금을 내더라도 자동변속기로 예약을 해두자.
보통 북미에서 렌트할 때 보험은 내 자차 보험으로 커버가 되지만 유럽은 해당이 되지 않으므로 별도의 보험을 구입해야 하는데 좀 비싸도 풀 커버리지로 하면 불의의 사고로 인해 비용 손실을 없앨 수 있다. 내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 주차 중 누가 내 차를 파손하든 어떠한 경우라도 자손부담금도 없이 차 열쇠만 주고 오면 되므로 마음이 편하다. 물론 차 파손 뿐 아니라 승객에 대한 보험도 포함되어 있다.
이참에 공영주차장 이용하는 한가지 팁을 알아두면 좋다. 공영 주차장 대부분 번호판을 인식한다. 주차장 입구에서 티켓을 받으면 차량 번호가 티켓에 기록된다. 그리고 나갈 때 자판기에서 돈을 지불하고 출구로 나가면 내 번호판을 인식해서 게이트가 열린다.
유럽은 왜 수동차들이 많을까?
런던 시내 트래펄가 광장 근처에 서 있는 에디스 캐벌 간호사의 동상 .. 영국 간호사로 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를 점령한 독일군으로부터 탈출한 약 200명의 연합군을 도와준 것으로 유명하다. 재스퍼에 가면 에디스 캐벌 간호사의 이름딴 산과 빙하가 있으며 재스퍼의 주요 관광코스중 하나이다.
영국 프로축구와 손흥민
영국 하면 프로축구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한국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어 한국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기도 하다. 보통 도시별로 한 개의 프로팀을 두고 있으나 영국은 축구나라답게 런던한개 도시에서만도 유명 팀들을 많이 포진해 있다. (첼시, 토트넘, 아스널등) 이외 맨체스터, 리버풀, 뉴캐슬등도 영국에 유명한 프로팀들이다.
과거 박지성, 이청용이 영국팀에서 뛰었고 현재는 토트넘에 손흥민가 뛰어 있어 축구 팬이라면런던에 가서 손 선수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영국 민족의 혈통은?
수천년전 켈트족이 건너와 살기 시작해 자리를 잡고 있다가 2천년전 로마군이 이곳까지 점령하면서 켈트족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아일랜드로 피신했다. 300년이 지나서 로마군이 물러난 후 다시 켈트족이 침범해 오자 잉글랜드에 거주하던 이들이 게르만 계열의 앵글 그리고 색슨족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들이 와 보니 자기네가 살던 곳보다 따뜻하고 기후가 좋아 눌러 앉게 되면서 영국 땅에 앵글과 색슨족의 피가 섞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1천년전 노르만족인 정복왕 윌리엄이 쳐들어와서 영국땅을 정복하면서 노르만족의 피가 섞이게 된다. 결국 영국이란 나라는 켈트+데인족, 이베리아계, 로마 라틴계와 앵글+색슨+노르만족까지 합친 복합민족인 셈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한국음식 판매점.. 런던 한복판에 한글로 된 간판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영국의 대중음악
영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규율이 엄격하고 규정을 잘 지키며 지휘관의 통제에 잘 따른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근대에 전세계 65개국의 식민지를 거느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지난 100년간 전세계 대중음악은 미국과 영국이 양분하고 있었고 여기에 캐나다와 호주를 넣으면 이 4개 나라가 전세계 대중음악의 95%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영연방 국가들이다. 아마도 영국계들이 다른 민족들에 비해 대중음악에 매우 강한데 이것도 영국의 규정과 규율을 잘 지키고 엄격함을 추구하는데 기인하지 않나 싶다.
대중음악이라는게 기본적으로 리더를 중심으로 나머지 멤버들은 정해진 박자와 리듬에 맞추어 반복적인 연주와 코러스를 넣는 것인데 지휘관이 엄격하게 통제하고 일원들은 리더의 통제를 잘 따르는 군대와 같은 모습이 대중음악에서도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미국 텍사스주에 애기(Aggie)라는 이름의 군악대가 있는데 유틉 영상에서 이들의 행진과 연주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지는데, 자유분망함과 개인의 예술적인 감성 보다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우선시 되는 영국식 스타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c0VRGz_yW-0
https://www.youtube.com/watch?v=UqG4QMG4OmQ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수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을 당시 영국과 싸워 독립한 나라들은 단 한 개 국가도 없었다. 미국이 유일하게 영국과 전쟁을 통해 독립한 유일한 나라이지만 미국은 영국인들이 세운 나라이므로 같은 영국인인 셈이므로 타민족이 영국과 싸워 독립한 나라들은 없는 셈이다. 영국을 여행하다 보면 영국인들의 딱딱하면서도 엄격하고 규칙적이고 규율을 잘 지키는 그러한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거짓말쟁이 소년이 살던 곳
음악이나 그림등 예술작품에서는 ‘목가적’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한국인들이 살던 고향에는 도시와 농촌만 있었지 목장이라는게 거의 없었고 목장이래야 양떼가 아닌 소를 키우는 거라서 서양의 양을 키우는 목초지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서양 예술작품에 <목가적>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특히 성경책에서는 목자와 양떼들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것도 우리의 문화와는 동떨어져 있어 성경책을 읽을 때 목자와 양떼들에서 내포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영국에 가면 목초지가 많고 양떼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그래서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해가 되고 여기서 ‘목가적’이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좀더 쉽게 이해가 된다.
양떼에서 뽑아낸 양털이 양모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게 프랑스와 영국간의 100년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호수에 가면 백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들은 고작해야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 공연에서나 보거나 ‘미운오리 새끼’라는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백조이지만 영국에서는 캐나다에 캐나다 구스처럼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새 중 하나이다. 캐나다 구스도 덩치가 커서 한국인이 처음 보고 놀라곤 하는데 영국 백조는 캐나다 구스보다 1.5~2배정도 더 커서 보는 캐나다에서 간 우리들은 또 한번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영국은 안개가 많이 끼고 일조량이 많지 않아 농작물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영국 음식이 발전하지 못한 주된 이유였으며 그래서 이들에게 식사는 끼니를 때우는 수단일 뿐이었다. 미국에 맥도널드가 탄생한 배경도 이런 영국인들의 사고방식이 크게 작용했으며 지금도 농작물 수출 1위국인 프랑스는 이에 비해 농작물과 낙농이 모두 발달해서 음식 문화가 크게 발전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인스턴트 음식인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행위에 비웃음을 짓고 있는 이유이다. 영국은 일조량이 많지 않은 대신 비가 많이 내려 목초지가 많고 여기에서 소와 양떼를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다만 소들은 관리하는데 인력이 많이 필요해서 점차 소보다는 양을 선호해서 영국은 양떼를 가장 많이 키운다.
. 이외 영국 음식에 대해 알수 있는 자료들도 모아보았다.
영국 음식이 맛이 없는 이유
영국 음식이 유독 맛이 없는 이유
https://brunch.co.kr/@money-economy/74#:~:text=%EC%98%81%EA%B5%AD%EC%9D%B4%20%EC%9D%B4%EC%B2%98%EB%9F%BC%20%EB%B3%B4%EC%9E%98%20%EA%B2%83,%2C%20%EC%9D%B4%ED%83%88%EB%A6%AC%EC%95%84%2C%20%EC%8A%A4%ED%8E%98%EC%9D%B8%EB%B3%B4%EB%8B%A4%20%EB%96%A8%EC%96%B4%EC%A7%84%EB%8B%A4
런던 시내에서 쉽게 볼수 있는 백조들.. 캐나다 구스보다 몸통이 1.5~2배정도는 더 커서 놀라게 만든다.. 사진은 하이드 공원 모습
영국의 위인들
1편에서 영국 출신의 위인들과 유명인사들에 대해 정리한바 있는데 당시 언급 못한 위인들을 따로 한번 더 정리해 보았다.
우선 적십자사의 모체가 된 나이팅게일, 최초의 성냥은 1827년 존 워커가 만들었고
공포영화 드라큘라도 19세기 말 스코트랜드 출신 작가 브램 스토커의 작품이다.
이외 헬레헤성을 발견한 이가 영국인 에드먼튼 헬리이며 현미경도 로버트 훅이 발견했다. 이외 1840년 영국에서 처음 우표가 사용되었다.
이외 매년 4월 몇일에는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라고 해서 큰 축제가 북미에서 열리는데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처음 전한 패트릭 성인을 기념하는 날로 아일랜드인의 축제에서 북미 전체의 기념일로 자리를 잡았다.
한가지 더 있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말에 영국은 세계의 등산을 이끌어 왔다.
1854년 베터호른 첫 등반 이후 1865년 마터호른 첫 등반까지 ‘알프스의 황금기’라 칭하는 11년 동안 알프스의 중요 봉우리 39개에 사람들의 첫 발길들이 닿았는데 그 중 8개를 빼고 모두 영국인들이 쌓아 올린 성과다.
1953년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네팔 가이드 텐징 두 사람은 8848M의 에베레스트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것도 영국의 역사를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다.
등반 직후 여왕에 즉위한 엘레자베스 2세는 힐러리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고 텐징에게는 국가 훈장을 수여했다.
관련 기사
http://san.chosun.com/m/svc/article.html?contid=2022012501396
영국 국교 성공회
영국 하면 성공회(Anglican Church)를 빼놓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가톨릭과 95% 유사하고 여기에 5%의 개신교 개념이 섞여 있다. 165개국에 걸쳐 8500만명의 교인들이 있다. 그리스도교 정교회 중에서는 가톨릭, 정교회에 이어 세번째로 큰 교단이다. 성공은 거룩하고 보편적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공회는 영국 역사에서 큰 부분을 자치하므로 성공회 역사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1509년 헨리 8세가 즉위했는데 6번이나 결혼했고 이중 두 명의 부인을 사형시킨 인물로 영국 역사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왕이다.
첫번째 부인 캐서린과 이혼 하려 했는데 로마교회에서 이를 인정해주지 않자 가톨릭과 결별하고 가톨릭에 개신교를 약간 섞어 성공회를 따로 만들었고 이것이 성공회의 기원이 되었다. 물론 첫 부인과는 이혼을 하고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앤블린과 재혼했으나 결국 헨리왕은 앤블리를 사형시키고 제인 시모어와 세번째 재혼을 했다.
영국에 호텔들은 주로 이렇게 생겼다. 과거 귀족이나 왕족들이 사용하던 저택을 개조한것인데 주변의 정원과 함께 멋진 조화를 이룬다.
영국에 현존하는 상류층과 귀족들
영국에는 지금도 왕족들이 살고 있고 그 가장 높은 자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차지하고 있듯이 21세기인 지금도 그곳엔 왕족과 상류층 그리고 귀족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은 일반 평민, 중산층, 하급층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상에서만 산다. 자녀들도 이튼 컬리지 같은 입학이 까다로운 사립학교를 다니므로 어려서부터도 일반인과 섞이지 않는다. 상류층들은 취미생활도 다른데 비싼 말을 타고 다니며 폴로를 즐기고 요트를 탄다.
그렇다면 누가 상류층이고 귀족인가? 전통적인 귀족출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대에 걸쳐 고위 관리나 유명한 지식인을 배출한 집안, 주교를 비롯 고위 성직자를 여러 대에 걸쳐 배출한 집안을 상류층이자 귀족으로 분류한다. 단숨에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단숨에 총리나 고위 관직에 올랐다고 해서 귀족의 반열에 오르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졸부 정도로 취급될 뿐이다.
영국의 귀족은 그 사회의 지도층이고 나라를 이끄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고 나름 사회적인 존경도 받는 그런 위치에 있다. 영국의 위인들 상당수가 귀족 출신임은 말할 나위 없다.
영국의 귀족에 대해 정리하다 보니 우리나라에 귀족은 어떤 이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율곡, 퇴계 이황 선생과 신사임당, 정철 같은 분들이 귀족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양반들중 몇몇 존경스런 인물들을 빼고 나머지 대다수는 양민과 하인들을 멸시하며 거드름만 피우고 못된 행태를 보이다가 막상 나라가 위급해 지면 제일 먼저 먼저 줄행랑이나 치는 그런 치졸한 위인들이 일반 백성들에게는 양반으로 인식이 되었고 임진왜란이든 한국전쟁이든 왕이 가장 먼저 도망을 친것도 바로 우리 역사이다.
일제시대때 부와 관직들을 거머쥐었던 친일파들이 대부분 귀족 행세를 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조선 말기에 이완용 같은 사람도 분명 귀족 출신이었을텐데 조선의 귀족답게 나라를 팔아 먹었고 반대로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바친 건 상민 출신들이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경제발전이란 목표아래 여기에 빌붙어 기생하던 정치인들과 재벌들도 귀족이라 불러도 무방했겠지만 나라를 위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재산 축적에만 몰두하다보니 사회적인 존경과는 거리가 멀고 그래서 영국의 귀족들과는 크게 비교가 된다.
관련글 (영국의 상류층)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gs0207&logNo=221633114768
런던 시내 관광하기
런던패스
https://londonpass.com/en-us/london-attractions
캐나다와 미국의 주요도시들에도 있는 관광지 이용 패스이다.
물가가 비싼 도시답게 이 패스 가격도 꽤나 비싸다. 이것을 구입한다면 투자 비용보다 더 다녀야 본전을 뽑을 수 있는데 패스 가격이 비싸다 보니 그만큼을 모두 돌아보는데는 강철 체력이 필요하며 게다가 한곳을 여유있게 돌아보는 것도 애초에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런던 패스 대신 몇 개만 골라 개별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1일 패스가 150불, 3일 패스가 220불, 5일 패스가 250불이다.
참고로 주요 관광지의 입장료는 아래와 같다.
런던 타워 54불
웨스트민스터 사원 45불
세인트 폴 성당 38불
윈저 성 50불
한인식품점
시내 중심가에 한인식품점들이 몇 개 있어 이곳에서 장을 보면 된다.
시내 남쪽에는 H-Mart가 있는데 대형규모이고 거의 모든 게 다 있어 런던 시내가 아닌 다른 도시를 여행할때는 이곳에 들어 장을 보면 되겠다.
주소 : Oseyo 15, Loverpool Rd
H마트에서 운영하는 오세요 마트...다운타운에 두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런던 시내 주요 관광코스
시내 중심가
모두 걸어다닐만한 거리에 모여 있다.
버킹엄 궁전
빅토리아 여왕시절 이래 역대 영국 왕들이 살았던 궁전으로 현재 엘리자베스 여왕도 주말에는 윈저성, 여름에는 스코틀랜드 빌모랄 성에 가는 것 이외에는 이곳에 거주한다. 옥상에 왕실 기가 걸려 있으면 여왕이 있다는 신호다.
이곳에는 650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여름에는 궁전 일부를 공개한다. 한편 여름에는 위병 퍼레이드가 매일 오전 1회, 겨울에는 이틀에 한번씩 거행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웨스트민스터 사원 중앙홀 모습
버킹엄 궁전 앞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공원 오른쪽 끝으로 웨스트 민스트 사원이 나온다.
7세기에 색슨족이 세운 수도원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에드워드 참회왕이 1050년에 세운 노르만 양식의 수도원이 원형이다. 이후 13세기에 헨리 3세가 고딕양식을 도입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윌리엄 정복왕부터 현재의 여왕까지 대부분의 영국왕들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올렸고 수많은 왕과 왕비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세인트 제임스 공원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으로 헨리 8세가 화이트홀 궁전의 정원으로 늪을 개간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국회의사당과 빅밴
사원을 나와 강변으로 향하면 의사당과 빅밴을 만나게 된다.
이 의사당은 에드워드 참회왕이 1050년부터 약 15년간을 들여 만든 웨스트민스터 공전이었다. 헨리8세가 화이트 궁전을 세운 1512년까지 역대 국왕들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1834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년후 재건되었다.
건물 양쪽으로 빅밴과 빅토리아 타워가 있는 의사당은 네오고딕의 웅장함을 자랑하는데 실내에는 1천개 이상의 방이 들어서 있다.
트래펄가 광장
빅밴에서 북쪽으로 몇블럭 걸어가면 트래펄가 광장이 나온다.
나폴레옹 제국 시절 스페인과 프랑스 연합 함대를 트래펄가 앞바다에서 격파하고 영국에게 해상의 패권을 거머쥐게 만들어준 영웅 넬슨 제독을 기리는 광장으로 이곳에 제독의 동상이 서 있다.
내셔널 갤러리
트래펄가 광장에 있는 미술관으로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도네이션으로 운영) 다빈치, 라파엘로, 램브란트, 고호, 피카소등 거작들의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오벨리스크
트래펄가 광장에서 강변으로 다시 나오면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이름의 높이 21M의 오벨리스크를 만나게 된다.
기원전 1450년경의 것으로 조지 4세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1819년 이집트 제독이 선물했다.
코벤트 가든
오벨리스크에서 다시 북쪽으로 몇블럭 걸어가면 코벤트 가든이 나오며 이곳은 과거 코벤트란 이름의 수도원에서 가꾸던 야채밭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꽃과 청과물을 판매하던 장소였는데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주인공 일라이자가 꽃을 팔던 장소가 바로 이곳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1974년 청과물시장이 이전한 이후 이곳은 공예품과 골동품을 판매하며 여러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런던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차이나 타운
런던 시내 중심가에 차이나 타운이 있고 그 입구에 한국음식점들이 몇개 있는데 영국인들로부터 꽤 사랑을 받고 있다.
트래펄가 광장에서 북쪽으로 두세블럭만 걸어가면 피카딜리 전철역이 있고 여기부터 차이나 타운이 시작된다. 이곳에 중식, 일식당들이 늘어서 있으며 한인식품점과 한류열풍에 힘입어 한국치킨 및 한국 음식들을 판매하는 곳들도 쉽게 발견할수 있다.
피커딜리 서커스
트래펄가 광장에서 북쪽으로 두블럭 떨어져 있는 곳으로 시내 관광의 시작점이자 쇼핑의 중심이기도 하다.
피커딜리라는 이름은 레이스 컬러를 유행시켜 막대한 돈을 번 재단사가 16세기에 호화저택 피커딜리 홀을 지은데서 유래되었다.
이곳 교차로에서 옥스포드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면 고급호텔과 홍차로 유명한 ‘포트넘 & 메이슨’ 백화점도 나온다.
시내 중심가 동쪽
이곳도 관광지들이 많이 있으나 시내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 전철을 이용해야 한다. 타워힐 역에 내려 런던 탑과 타워 브릿지를 관람하고 다시 전철을 타고 맨션 하우스 역에 내려서 세인트 폴 성당을 보고 북쪽으로 약간 걸어가면 길드홀을 만나게 된다.
런던 타워
1097년 정복왕 윌리엄에 의해 세워졌고 13세기 후반 에드워드 왕 시절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외적 침입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1천년전 거주민들에게는 물론 외부에서 템즈강을 통해 런던으로 들어오는 외부인들에게 윌리엄 왕의 위엄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제임스 1세 왕 시절까지는 왕실로 쓰이다가 이후에는 감옥과 죄수들의 처형장소로 쓰였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왕 데이빗 2세, 헨리 8세 왕의 불륜의 처 앤 블린, 5번째 부인 캐서린, 스코트랜드의 메리 여왕등의 역사속의 큰 인물들이 생을 최후를 이곳에서 마쳤다.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가 제공되며 (유료) 한국어도 있다. 곳곳을 둘러보며 한국어도 설명을 듣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인 화이트 타워와 마당 건너편에 있는 크라운 주얼스 두곳이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주얼스에는 세계 최대의 다이어몬드인 ‘아프리카의 별’을 포함 왕실의 귀중한 보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타워 브릿지
런던 타워를 나오면 바로 타워 브릿지가 나온다.
신고전주의의 이 다리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인 1894년 완공되었다.
특히 큰 배가 지나갈수 있도록 다리가 위로 올려지는 기능이 유명한데 요즘은 이것이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리의 두개 탑 위까지 올라가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는 런던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유료)
세인트 폴 대성당
색슨족이 서기 604년 이 장소에 목조교회를 세운 것이 시초가 되었고 런던 대화재로 불타버렸다. 이후 30년 이상의 세월을 들여 1706년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되었다.
지하에는 국민적 영웅인 웰링턴 장군과 넬슨제독, 전쟁속에서 이 성당을 지켰던 윈스턴 처칠 수상등 유명인사들의 묘가 있다. 이외 다이애너와 챨스 황태자의 결혼식도 이곳에서 열린바 있다.
입장료를 내야 내부를 관람할수 있으며 계단을 통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대화재 기념비
런던 타워에서 서쪽으로 걸어 10분만 가면 만날 수 있는 이 기념비는 1666년 런던에서 발생해 사흘간 전체 도시의 2/3을 모두 태웠던 대 화재를 교훈삼기 위해 화재후 10년이 지나 세워졌다.
탑의 높이는 61M로 당시 화재의 발화지로 추정되던 푸딩 스트리트에 있는 빵집과의 거리라고 한다.
기념비를 보았다면 북쪽으로 두블럭 떨어져 있는 레든 홀 마켓도 구경해보자. 이곳 마켓의 역사는 로마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풍스런 모습에 다양한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사진은 레든 홀 마켓, 2천년전 로마시대때 세워진 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