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오르기 힘든 나무 (일곱번째)
1981년 6월

화창한 초여름의 날씨! 날씨가 좋아서 인지 꼬마들이 놀이터에서 떠들며 놀고 있었다.
“좋구나~ 날씨 한 번 조~오쿠나~!”
집에 들어서니 구수한 생선찌개 냄새가 식욕을 돋구었다.
“조~오쿠나! 날씨도 좋고, 찌개냄새 좋고……”
“이런 보금자리가 있는게 좋고, 단란한 가족이 있다는게 조~오쿠나~!’
둘째 찬이가 아장아장 걸어 와서 팔을 벌렸다.
“에이구 내 새끼” 애비라고 걸어와서 팔을 벌리는 아들을 보니 하루의 피로가 싸~악 가시는 것 같았다.

“여보, 가서 진이 좀 데려오세요”
“알았어. 놀이터에 있겠지?”
“그럴거예요”
“찬아~, 가서 형아 데리고 오자~” 둘째를 안고 놀이터로 향했다. 찬이는 좋아서 벙글거리고 있었다.

꼬마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이 어딜 갔지~?’
“Have you seen Jimmy?” 옆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녀석은 아무 소리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놀이터에서 좀 떨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를 가르키고 있었다. 녀석의 손가락을 따라서 눈길을 돌리니, 나무 밑에 진이가 혼자 앉아 있엇다.
‘아니, 저 녀석이 왜 혼자 앉아 있어?’
가까이 가서 진이의 얼굴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였다.

“ 야~ 너 여기서 왜 이러구 있어?”
“아~앙~~” 진이는 나를 보는 순간 목을 놓고 울음을 터트렸다.
“왜 이래? 진이야~ 왜 이래?”
“쟤가 때렸어~~” 진이의 얼굴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순간 가슴이 꽈~악 막혔다. 하얀 아이들 틈에 끼어 있는 단 하나의 동양아이! 같이 끼어서 잘 놀지 못하는 것도 서러울텐데, 얻어 맞기까지 했다니…… 진이가 가르키는 쪽을 쳐다보니, 진이보다 두살 정도 더 먹어 보이는 녀석이 우리 쪽을 쳐다보며서 혀를 낼름 입밖으로 내밀었다가 집어 넣고 있었다.
‘조~오 놈이구나!’ 얼굴이 개구쟁이 처럼 생겼다.

“에이구 조놈을 그냥~”
“참자 참어!” 속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진아, 일어나, 집에 가자” 눈물을 딱으며 일어나는 아들이 너무나 애처러워 보였다.
‘아이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거지!’
애써 태연한체 하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둘째를 안고, 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한 15 미터쯤 걸었을까? 갑자기 진이가 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얼른 진이를 쳐다보니, 진이는 다른 손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고, 꼬마녀석 하나가 달아나고 있었다. 진이를 때렸던 녀석이 이번에는 진이의 엉덩이를 걷어 차고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순간 피가 꺼꾸로 치솓는 것 같았다.
“저 시끼를 그냥~!”
‘아~니 어떻게 생겨 먹은 시끼야! 아주~ 망종이네!’
‘쫓아가서 귀싸대기를 후려쳐?!’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화가 나다 못해 울고 싶었다.

“여보, 진이 얼굴이 왜 이래?”
“……”
“울었어?”
“……”
난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얼굴을 씻겨 주었다. 그리고 진이를 가만이 안아 주었다. 난 속으로 울고 있었다.
‘내가 내 아들 진이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맛있는 생선찌개가 입에 썻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했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리 속에는 온통 고 못된 녀석의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내 상상 속에서 녀석을 흠씬 두둘겨 패는 내 모습을 보면서 화닥닥 놀랐다.
‘이러면 안 돼는데! 이러면 안 돼는데!’
녀석이 그렇게 미웠다. 정말 미웠다. 녀석은 윗층에 사는 Allen이라는 아이였다.

몇일 밤, 잠을 설쳤다. 잠을 잘려고 눈을 감으면 눈물에 범벅이 된 진이의 얼굴과 진이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 차고 달아나던 Allen의 얼굴이 떠올라 속을 썩혔다. 전에 어떤 사람이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욕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식이 남에게 욕을 당하는 것은 못 참는다고 한 말이 실감이 났다. 자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일 주일쯤 지나서 진이를 데리러 놀이터로 갔다. 꼬마들이 옹기 종기 모여서 노는데, 그 중의 한 아이가 팔이 부러졌는지, Cast를 하고 붕대로 감아서 팔을 목에다 걸고 있었다.
‘어떤 아이가 팔을 다쳤나?’ 멀리서 보니 정확치는 않은데 Allen 같았다.
‘올커니~! 시끼가 못 되게 놀더니 팔이 부러졌구나!’
‘고거 쌤통이다!’ 속이 쌔완해 하면서 놀이터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팔을 다친 아이를 다시 한번 쳐다보니 Allen이 아니였다.
‘괜히 좋다 말았네!’ 진이를 데리고 집에 오면서 속이 편치 못했다.
“결국은 Allen이나 나나 별반 다를게 없네!” 혼자 중얼거렸다.

‘설사 내 아들을 못 살게 구는 녀석이긴 하지만, 철없는 아이를 내가 이렇게 미워해도 되는건가?’
‘그래도 내가 명색이 주일학교 선생인데…!’
‘주일마다 가장 고상한 얼굴을 해 가지고 아이들에게 아동설교을 하는 내가 아닌가!’
‘이러면 안돼지! 이러면 안돼지!’
잠시 동안이나마 Allen의 팔이 부러진 줄 알고 고소해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건데……’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Allen을 미워하는 마음을 빼어 버리기로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Allen을 만나면 “Hi Allen!” 하며 활짝 웃어 주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Allen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기로 했다.
“하나님, 철없는 아이를 그토록 미워 했던 못난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진이가 카나다에서 구김살 없이 자라게 해 주십시요. 이땅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요”
“Allen이 착한 아이가 되게 해 주십시요. 남을 괴롭히는 아이가 아니라, 남을 돕는 아이가 되게 해 주십시요”
“아직도 밉지만 Allen을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요. 그리고 녀석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요”
간절히 기도했다.

다시 두 주일쯤 지났다. 마음을 바꾸어 먹어서 그런지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진이도 전처럼 명랑하게 아이들과 어울려서 잘 놀았다. 직장에서 돌아오니 아내가 말했다.
“여보, 놀이터에 가서 진이를 좀 데려 오세요”
“알았어” 놀이터에 가보니, 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또 어디서 혼자 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놀이터 근처를 아무리 찾아 보아도 없었다.
‘어떻게 된거야? 혹시…’

가끔 꼬마들이 2층 복도에 모여서 노는 것을 보았기에 2층 복도를 찾아 보기로 했다. 이상하게 Allen이 사는 2층 복도에 먼저 가 보고 싶었다. 복도에 들어서니 복도 끝에 서너명의 꼬마들이 모여 앉아서 Popsicle을 먹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중의 하나가 진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옆에 Allen이 앉아 있는게 아닌가!
“진이 여기 있었구나!”
“아빠~”
“Hi Allen!” 결심한 대로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Hi~” 녀석이 미소를 지었다.
‘요렇게 귀여운 녀석이 그렇게 못 되게 놀았단 말야?’ 믿어 지지가 않았다.

“진아, Popsicle을 누가 줬니?”
“Allen이 줬어”
“뭐야? Allen이?”
“엉~”
“Allen, thank you for the popsicle”
“You’re welcome’ 녀석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Allen, see you tomorrow” 진이가 고사리 손을 흔들었다.

진이를 데리고 나왔다.
‘거~참~!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알다가도 모르겠네!’
‘고렇게 귀여운 녀석을 두둘겨 팰 생각만 했으니… 나도 참 한심한 놈이군!’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신거야!’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다.

“여보, 빨리 밥줘. 배고파”
“당신 뭐 좋은 일 있어요?”
“왜?”
“당신 목소리가 그렇게 들려요”
“그래? 오늘 기분 차~암 조오~타!”
오래간만에 맛있는 저녁을 온 가족이 함께 먹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리글: 참 신기했다. 그 후론 진이는 항상 Allen 곁에 붙어 다나며 놀았다. Allen도 진이를 동생처럼 잘 데리고 놀았고. 그렇게 미웠던 Allen이 점점 더 예뻐 보였다. 도저히 진이의 엉덩이를 차고 달아나던 녀석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Allen은 9월 학교가 시작하기 두주 전에 이사를 갔다. 직장에서 돌아 오니 마지막 이삿짐을 실고 떠나고 있었다. 진이는 많이 섭섭해 했다. 이젠 진이가 결혼을 했으니, Allen도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애 아버지가 됐을지도 모르고…… 어디에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빈다.

기사 등록일: 2005-03-09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캘거리-인천 직항 내년에도 - ..
  앨버타 최고의 식당은 캘거리의 ..
  (종합) 앨버타 두 곳 대형 산..
  캘거리 4월 주택 매매량 올라 ..
  캘거리 대학 ‘전례 없는’ 상황..
  캘거리, 에드먼튼 타운하우스 가..
  캘거리 일회용품 조례 공식적으로..
  전국 최고 임금 앨버타, 어느새..
  캘거리 주민들, 인근 소도시로 ..
  세입자, 모기지 가진 집주인보다..
댓글 달린 뉴스
  주정부, 여성 건강 및 유아 생.. +1
  요즘은 이심(E-Sim)이 대세... +1
  에드먼튼 대 밴쿠버, 플레이오프.. +1
  캘거리 시의회, “학교 앞 과속.. +1
  “범죄 집단에 비자 내주는 캐나.. +1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 마침내..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