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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바리새인 유감_이진종 목사
“쟁이”(혹 “장이”)라는 말은 거의 프로에 가깝다. 단순히 어설픈 아마추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주위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대장장이”, “옹기장이”, “토기장이” 등이 있다. 이때의 “장이”라는 접미사는 전문직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쟁이” 라는 말도 주위에서 흔히 듣는다. “예수쟁이”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조금은 지나치게 티를 내고 교회를 열성적으로 다니는 사람을 보통 지칭한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예수쟁이란 말을 듣고 살고 있는가? 이왕 예수를 믿으려면 쟁이 소리를 들어야 할 것 아닌가. “예수쟁이”, “예수꾼”이란 용어 자체를 부정적인 의미에서 긍정적인 말로 승화시키는 것 또한 우리의 책임이라고 본다. 그럼, 신약 시대 즉 그리스도 예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쟁이(장이) 였을까? 바리새인은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종교지도자요,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계급이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은 경건의 모양을 가진 실세 중의 실세였던 것이다. 바리새인의 본래 의미는 “분리된”, “구별된” 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편으로 경건의 가면을 쓰고 한편으로는 거룩한 척, 믿음이 있는 척 하는 이중 인격자였다. 겉으로는 자타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경건의 능력이 없는 위선자였던 것이다.. “쟁이”는 프로(pro)를 말한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한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프로답지 못하다면 단순 종교인에 불과하다. 요즘 성도 중에는 아마츄어 같은 선데이 크리스쳔들이 적지 않다. 우스게 말로 이민을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중국인이나 유태인은 비즈니스를 세우지만 한국인은 세 명만 모이면 교회를 세운다고 한다. 한국인의 종교성을 말해주는 단적인 우화가 아닌가. 중요한 것은 영향력이다. 교회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크리스쳔 인구는 점점 많아지는데 왜 사회는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왜 범죄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문이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즉 교회만 살찌우고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끼리만(즉 끼리끼리만) 어울리는 것이 교회의 모습인가 말이다. 왜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독교가 여러 종교 중 가장 인기없는 종교로 전락되어 가고 있는가.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신 바리새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지위를 교회에서 인정 받으려는 욕구가 지나친 경우, 섬기기 보다는 대접을 받으려는 이기적 마음, 용납하기 보다는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고 비난하는 마음, 회의 등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경우, 사람 사는 어느 곳에도 갈등은 있게 마련인데 교회 안에서 상호 그 상처와 갈등을 사랑으로 감싸주기 보다는 오히려 갈데까지 가는 경우가 현실 아닌가. 다시 말하면 “신 바리새인”은 철새 교인이요. troublemaker요 또한 bigmouth이다. 무엇보다 이민교회에는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며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교회를 선택하는 현실이다. 마치 house hunting 또는 job hunting 하듯이 church hunting이란 말이 생겨 났다. 이민 초기 정착 이전에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선택하려고 찾아 다니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고 다른 교회로 옮기고 또 다시 문제가 생기면 또 교회를 옮기고 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 어디선가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타조 사냥을 하는데, geep 차를 타고 몇 시간이고 무작정 타조의 뒤를 쫒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2~3시간 좆아다니다 보면 타조가 지쳐서 수풀 속에 머리를 쳐박고 숨는다고 한다. 참, 우스운 일이다. 머리만 보이지 않는다고 다 숨은 것인가.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이다. 우리 집 셋째가 있는데, 늦동이로 이제 다음 달이면 네 살이 된다. 가끔 엄마에게 야단을 맞으면 무조건 구석진 곳으로 가서 숨는데 얼굴만 가리운다. 마치 타조가 머리를 처박으면 다 끝난 듯이 말이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고 난 뒤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나무 잎으로 몸을 가리고 숨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이미 아담과 이브의 행위를 알고 계셨지만 아담의 이름을 부르며 찾으셨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부르듯이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신다. 왜, 찾는냐구요? 척하지 말라구요. 바리새인들 처럼 경건한 척, 거룩한 척, 믿음있는 척, 봉사하는 척하지 말라는 것이다. 때가 이르기 전에 하루 빨리 위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할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세속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다니엘 처럼 신실하고 요셉처럼 정결한 모습으로 살아 가는 것이다. 쟁이는 쟁이 다워야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것이 당당한 우리의 모습이다. “까마귀 검다 백로야 웃지마라“,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라는 우리의 옛 시조가 있다. 그리스도인 답게 ”예수쟁이“ 답게 우리의 진면목을 세상 모든 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겉으로만 깨끗한 척하는 백로주의에서 정말 열성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예수쟁이“의 본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스도 인은 최고가 아닌 최선을 지향해야 한다. 업적이나 자랑이 아닌 남의 눈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 기독교에 희망이 있다. 교회에 생명의 회복이 있다. 그리스도 인은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인은 삶의 영역 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가 피어나야 한다. 이번 쓰나미 재해 사태 때에 보여준 기독교인의 사랑의 모금은 충분히 귀감이 된다. Put God first! 내 삶의 우선순위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푯대를 바라보고 영혼 구원을 위하여 끝까지 달음박질을 하자. 이번 기회를 통하여 속히 바리새인의 모습, 즉 경건의 모양만 있고 허울 뿐인 우리의 가면을 벗겨내자. Get real! 혹 그렇지 못하면 우린 아직도 바리새인의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은 당신의 몫! What is our real identity as a Christian? “신 바리새인”으로 살아 갈 것인가 아니면 거듭난 “예수쟁이“로 살아 갈 것인가를 지금 이순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05년 1월 25일 순복음 캘거리쉼터교회 이진종 목사(문화 사역자)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2/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5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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