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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기독교 1_ 간략한 기독교 역사 18
우리는 서방세계 기독교(Western Christianity)의 영향 아래에 살고 있다. 하지만 동방 기독교의 존재에 대하여 잊어서는 안된다. 원래 교회는 예루살렘에서부터 한 교회 아래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라틴어를, 동방에서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문화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서로 판이하게 다른 정치적 발전 과정으로 말미암아 두 교회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서방의 경우에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발생한 정치적 권력의 공백을 교회가 채움으로써 종교 지도자들, 특히 교황들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행사 해야만 했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동로마 제국이 1000년이나 계속되었다. 또한 막대한 권력을 가졌던 황제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이에 따라 종교 문제들, 특히 신학적 논쟁은 세속 권력자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신학 논쟁은 정치적 힘과 연결되어 결정되었다. 물론 많은 경우의 신학 논쟁은 복음의 핵심을 다루고 있기때문에, 서방 교회의 참여 없이 동방에서 이루어진 결정들도 동서방 양쪽 교회의 규범으로 받아 들여졌다. 1. 칼케톤 종교회의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연합 문제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동일본질"이라는 결정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연합 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 문제에 관하여 동방 교회 내에는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두 개의 서로 다른 흐름이 있었다. 양편 모두 신성(神性)은 불변하며 영원하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이 가변적이며 역사적인 인간과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님의 인성이 약간 약화되더라도 그의 신성을 더 강조하였다. 반면에 안디옥 학파는 예수님이 인간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의 속에는 신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이 감소되거나 가려진다는 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가 서방 교회 안에서 숙제가 되지 않은 이유는 야만족의 침입 후에 당장 처리해야 할 다른 시급한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한 위격(位格) 안에서 연합하였다'는 터툴리안의 설명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안디옥 학파의 대표자로서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428년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자리는 동방교회의 대표하는 위치이며 안디옥 및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정치적 음모와 연결되어 있다. 이 자리를 주로 안디옥 학파에서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들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자기들의 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가 "테오토코스"(theotokos), 즉 '하나님의 잉태자'가 아니라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 즉 '그리스도의 잉태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이것이 왜 중요한 문제인지 금방 이해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라는 개념을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쟁은 마리아보다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다. 즉 마리아에게 어떤 명예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네스토리우스가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잉태자이지 하나님의 잉태자가 아니라고 선언하였을 때, 그는 성육하신 주님에 관해 말할 때에는 반드시 그의 인성과 신성을 구별하여야 하며, 그에 관한 표현들 가운데 일부는 인성에, 그리고 또 다른 부분들은 그의 신성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네스토리우스는 예수님 속에 "두 개의 본성과 두 개의 위격", 즉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선언하였다. 인간적인 본성과 위격은 마리아를 통해 잉태되었으나 신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러한 표현을 통해 무엇을 의미하고자 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위격"과 "본성"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의 적들은 이 표현 안에서 구세주를 두 개의 존재로 "분리시키는" 위험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구세주의 통일성은 진정한 연합이 아니라 오히려 합일로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네스토리우스를 반대하는 알레산드리아 학파의 키릴(Cyril)이 그리스도안에 두 위격이 존재한다는 교리를 이단으로 규정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정치적인 힘과 관련된 여러 차례의 회의 끝에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어 유배당하게 되었다. 451년 칼케돈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교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 터툴리안의 주장을 다시 반복한 것으로서 "한 위격 안에 두 개의 본성"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었다. 그리고 신경(信經)이라기보다는 이미 교회에서 진리로 인정하였던 내용을 보다 명백하게 표현한 "신앙의 정의"(Definition of faith)를 반포하였다. 내용을 잘 살펴보면 알렉산드리아파와 안디옥파의 양 극단을 모두 배척하면서 이전에 개최된 세 차례의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확인하고 있다. 칼케톤 회의에서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엄밀하게 정의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떠한 경계를 넘어서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가를 밝히고 그 범위를 제한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칼케톤 회의의 결정은 전체 서방 교회에 있어서 기독론적 정통 신학을 정의하는 표준이 되었다. 대부분의 동방 교회에서도 이를 받아 들였으나 그 중 일부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발생한 분열의 한 요인이 되었다. 주로 시리아와 페르시아에 소재하였던 일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내에 있는 신성과 인성 사이의 보다 명확한 구별을 주장하였으며, 이들은 결국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s)라고 불리게 되었고, 중국 쪽으로 선교의 방향을 돌렸다. 또한 어떤 사람들을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여 "두 개의 성질, 혹은 본성"(two natures)의 교리를 부인하였는데, 이들은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단성론자들"(monophysites)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들도 또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글 : 캘거리 성결교회 한호 목사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5/13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5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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