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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 _ 죽산 이정순 (동화 작가) _ 캘거리 문협
 
“앗 추워!”
따뜻한 방에 있다 갑자기 밖에 나와서 그런지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 더군다나 땅에 떨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정신까지 아찔했다.
요즈음은 시골길도 흙이라곤 찾아 볼 수없이 온통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소는 간혹 불만을 터뜨렸다.
“전에는 아무 곳에나 볼일을 봐도 괜찮았는데, 이제 정해진 곳에만 싸야 하니. 원! 버릇이 돼서 밖에만 나오면. 으! 오늘은 더 못 참겠어. 끙! 아, 시원 타!”
어쨌든 나는 그 충격으로 어질어질했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재잘재잘 겨울 새 소리가 들려왔다. 쌩쌩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와! 이번에는 굉장히 큰 거야. 애들아, 이리 와 봐!”
“어디 어디?”
“하나둘 셋! 셋이나 된다구.”
“쿰쿰! 에고 구린내!”
새 떼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래도 이게 어딘데. 겨울이라 벌레가 없어 배고팠는데 아직 따뜻해. 김이 모락모락 나잖아!”
새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내 몸을 콕콕 쪼아댔다. 아픈 곳을 톡톡 만져주는 것 같아 시원했다.
“아고, 우리가 이런 걸 먹어야 하다니. 겨울이 없으면 좋겠어.”
“그래, 맞아 맞아! 봄이면 야들야들한 벌레가 천진데.”
새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맞장구를 쳤다.
“왜 우리는 개미들처럼 먹이를 저장하지 못할까?”
불평불만도 늘어놓았다.
“으으, 추워!”
함께 소 배 속에 있던 애들이 춥다고 야단이었다.
“꽁꽁 얼어버리겠어.”
탈 탈탈!
그때 경운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쯧쯧쯧! 어느 집 소가 아무 데나 똥을 싼 겨!”
경운기에서 아저씨가 내리더니 나를 삽으로 달랑 들어 올렸다.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날더니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탈 탈탈 소리를 내며 경운기가 어디론가 떠났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있던 푸른 초원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는 온갖 들풀과 색색의 아름다운 야생화와 풀벌레, 하늘의 구름, 시원한 바람. 참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렇지만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쌩쌩 불고 눈이 내려 모든 풀은 까슬하게 말라갔다. 겨울을 이겨 내기란 참 힘들었다. 그때 소가 와서 마른 풀이 되어버린 나를 뜯어 먹었다. 옆에 있는 풀들까지도 싹싹 먹어 치웠다.
“으악!”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미안해. 놀라지 마. 너희는 다시 태어날 거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나쁜 말은 아닌 것 같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우리가 보내진 그곳은 따뜻한 방이었다. 겨울이 춥지 않을 거로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소는 밤낮 되새김질했다. 쉬지 않고 하루에 삼만 번씩 열두 시간이나 일을 했다. 소는 네 개씩이나 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첫 번째 방 혹방으로 보내졌다. 그 방에서 미생물들과 혼합되었다. 미생물들은 셀룰로스로 설탕을 분해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 방으로 옮겨가는 터널은 스키를 타듯이 쌩! 하니 미끄럼을 타고 갔다.
“야호!”
무척 재미있었다. 그것이 두 번째 방이었다. 그 방은 벌집 모양으로 울퉁불퉁했다. 그곳을 통과하면 다시 입 속으로 보내져 소는 자면서도 되새김질했다.
“에이, 잠잘 때는 좀 쉬어요. 그러다 병 나겠어요.”
“허허! 녀석들!”
“우리 미끄럼 타고 싶단 말이에요.”
“오냐 오냐! 조금만 더 기다려라. 아직 오백 번밖에 못 했는걸. 백번만 더 하고 다음 방으로 여행시켜주마.”
“그럼 육백 번씩이나 씹어요? 이빨 빠지겠어요. 이빨 빠지면……, 으으! 무서운 치과에 가야 하는데.”
“걱정해 주어 고맙구나.”
우리는 세 번째 방으로 신나게 미끄럼을 타고 갔다. 미끄럼 타다 흩어진 우리는 주름위라는 네 번째 방으로 가서 또 열두 시간이나 푹 쉬었다.
“아고 심심해요. 미끄럼 태워줘요.”
뻣뻣한 풀이었던 우리는 죽처럼 되어 소의 몸 속 구석구석으로 영양분을 보냈다.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튼튼해져 우유를 많이 만들 수 있었단다.”
“우리도 춥지 않아 좋았어요.”
“이제 나와 헤어질 때가 됐구나. 너희는 또 쓸모가 있을게야.”
그리고 우리는 찌꺼기가 되어 시멘트 길바닥으로 떨어졌었다. 소똥이 된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운기에는 다른 소똥들도 가득했다. 반가웠다.
“안녕? 너희들은 어디서 왔니?”
“우린 소 농장에서 왔어. 근데 네 몸 색깔은 시커멓고, 지저분하고, 못생겼니? 우릴 봐! 반질반질하고 색깔도 황금색이고 잘생겼잖아. 그러니까 알아서 저리 좀 비켜.”
깎아놓은 중머리처럼 반질반질한 녀석들이 까불었다.
“내가 있던 곳은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었어. 너희는 그런 곳 가 봤니? 못 가봤지? 우리가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주인 소는 건강하댔어. 그리고 우유를 많이 만들 수 있었대”
나는 지지 않고 대들었다.
“그곳은 말이야, 친구들도 많았어. 꽃, 나비, 벌, 새, 사슴, 온갖 작은 곤충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했다.
“그, 그랬니?”
그 반질반질한 녀석들이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고향은 요란한 기계 소리가 나는 깜깜한 방이었는데. 그리고 우리 주인은 몹시 게을러 누워만 있어 뚱뚱 했어……. 우유도 못 만들고.”
녀석들이 콧대가 한풀 꺾여 풀죽은 듯이 말했다. 그때 하늘에서 새 떼가 원을 그리며 따라왔다. 새 떼에게 물었다.
“이 경운기는 우리를 싣고 어딜 가는 거니?”
“아마 퇴비장으로 갈걸.”
“거기가 뭐 하는 곳인데?”
“글쎄?”
마음이 우울했다. 하늘의 구름도 내 마음을 아는지 따라 와 주었다. 바람은 쌩쌩 경운기를 앞질러 갔다. 그때 몸속이 꼬물꼬물 간지러웠다.
“하하하! 누구니?”
“아, 미안! 나 소똥구리. 추워서 들어 왔어. 괜찮지?”
“깜짝 놀랐잖아. 이왕 들어왔으니 안으로 더 들어와. 따뜻할 거야!”
소똥구리는 품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소똥구리를 꼭 안아주었다.
탈 탈탈!
경운기는 탈탈거리며 한참 들판을 달렸다. ‘마을 공동 퇴비장’ 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경운기가 멈추더니 아저씨가 그 차가운 삽으로 우리를 퍼 날랐다. 퀴퀴한 남새가 진동을 했다.
“이게 뭐야? 더럽게.”
옆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똥 주제에 내가 더럽다고? 너가 더 더럽지.”
“그만해! 다 똑같은 처지에.”
우리가 다투자 소똥구리가 야단을 쳤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웬 날씨가 이렇게 추워! 따듯해야 좋은 거름이 될 건데.”
아저씨는 우리가 추울까 봐 비닐로 감싸 주었다. 밤새 새하얀 눈이 내렸다. 비닐 한 겹을 더 덮어 주었다. 비닐 속은 따뜻했다. 겨우내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소똥아, 이번 겨울은 네 덕분에 춥지 않을 것 같다.”
소똥구리가 말했다.
“나도!”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 봄이야!”
소똥구리가 깨웠다.
“아함! 잘 잤다. 너희도 잘 잤니?”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소똥구리들은 부지런히 우리를 이리저리 굴려 자기 몸보다 더 큰 동그란 구슬을 만들었다.
“아, 어지러워!”
“영차! 영차!”
그중 제일 튼튼한 녀석이 제일 크게 만들었다.
“와! 네 몸보다 더 크게 만들었네.”
소똥구리가 뽐내듯이 가슴을 쑥 내밀었다. 먹성 좋은 그 녀석은 둥글게 만든 소똥을 야금야금 잘도 먹었다. 소 배속은 넓어 미끄럼도 탈 수 있어 신났는데 소똥구리 배속은 너무나 좁아 숨도 쉴 수 없었다.
“으아! 숨 막혀! 밖으로 내 보내 줘.”
“조금만 참아. 곧 나가게 될 거야!”
“나는 이제 쓸모없는 거니?”
“아니, 우리 소똥구리들은 네 덕분에 건강한 겨울을 보냈는걸.”
소똥구리는 공장에서 사료로 만들어낸 소똥에서는 살수가 없다고 했다.
“그럼 아직 쓸모없어지지 않았니?”
“그럼, 너희는 또 필요한 곳이 있을 거야. 소똥은 하나도 버릴게 없단다.”
“정말?”
그때 탈 탈탈! 경운기가 와서 우리를 부대에 담아 싣고 또 어디론가 갔다. 이제 쓸모없으니 버려지는 걸까? 처음 만났을 때의 소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허허! 넌 다시 태어날 거란다.’
그때 경운기가 멈춰 섰다.
“어이! 김 영감! 귤 농사 거름이여.”
“마침 잘 가져왔구려. 귤나무가 비실비실해서 무공해 퇴비를 할 참이었는데.”
김 영감님은 우리를 나무 밑에 뿌렸다.
“넌 무슨 나문데 그렇게 힘없어 보이니?”
나는 맥이 빠져 힘없이 물었다.
“난, 귤나문데…… 독한 비료에 중독돼서 그래.”
“나도 쓸모없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려있는데.”
“아니야. 넌 버려진 게 아니라 나를 살릴 수 있을 거야.”
“어떻게?”
“나의 전 주인은 도시에서 귀농한 젊은 사람이었는데 귤을 많이 열리게 하려고 독한 비료를 너무 많이 뿌렸어. 화학 비료에 취해 비실비실한 우리를 버리고 떠났어. 그리고 지금 김 영감님 할아버지가 이 농장을 헐값에 사서 무공해 거름인 너를 데려 온 거지. 네 덕분에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아! 내 주인 소도 나 덕분에 건강해졌다고 했는데. 소똥구리도.”

귤나무는 푸르게 푸르게 하늘 높이 가지를 쑥쑥 뻗고 자랐다. 가을 햇살이 따끈따끈했다. 나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공기 속에서 향긋한 귤 냄새가 내 코로 들어왔다. 파란 하늘이 온통 노랬다.
“거 봐! 네 덕분에 우리가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어. 소똥은 하나도 버릴 게 없어. 넌 대단한 거야.”
“정말?”
노오란 귤이 방긋 웃었다. 끝



기사 등록일: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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