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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컬럼 3부 : 실천관 – 상구보리 즉시 하화중생 하라!
불교의 보다 바람직한 실천 수행을 위하여

1, 2부에 걸쳐서 불교의 기본 생활실천법인 사섭법과 불교의 종교적 이상의 기본인 ‘무아사상’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1, 2부에서는 불교에 대한 일반적이고 오해와 편견 해소를 위해서 초기 불교 사상의 정수를 밝혀드렸다고 할 수 있다. 3부에서는 그 주제를 대승불교로 옮겨 불교인 조차도 오해하기 쉬운 ‘대승불교’의 개념과 실천방법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한다.

대승불교란 무엇인가?

가끔씩 캐나다인들을 만나, 자신을 불교인이라고 밝히게 되면, 자신도 불교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Is Korean Buddhism the Northern or the Southern tradition?’ 이 때의 답은 ‘The Northern tradition’ 즉, 북방불교가 맞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대개 북방불교라고 하는 표현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당황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들에게는 대승-소승과 같은 교의적인 구분 보다는 지리적인 측면에서의 북방-남방의 의미가 더 큰 것임을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원래 대승불교(大乘佛敎)란, ‘큰(大) 수레(乗)의 불교’라는 의미로,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불리는 남방불교와 대비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소승불교라고 규정된 보수적인 불교세력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고, 실천 위주의 새로운 실천을 도모하는 종교적 움직임인 대승불교의 전통이 북방으로 전해져서, 그것이 북방불교(北方佛敎)라고 불리게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서구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대승불교의 중요한 전통인 티벳불교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지리적 인식이 서구인들에게 불교 전통의 이해에 한 획을 긋고 있으며, 티벳불교가 북미인들에게 북방불교의 대표격이 되고 있음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승불교란 인도의 초기 당시에 보다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교파가 보수적인 입장을 비판하면서 나온 중요한 역사적 흐름이며, 불교 자체의 사상과 실천의 측면에서 커다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 개혁 운동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교의를 실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전의 전통과 명확히 구분 지어서 이해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마치 필자가 종종 비유하곤 하는 종교적, 역사적 의미에서 기독교 신교 혁명의 의미와도 비견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대승불교의 이상 – ‘상구보리하화중생’의 보살행

그렇다면, 북방불교라고도 불리는 대승불교의 핵심적이인 교의는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교의로 항상 거론되는 것이 바로 ‘상구보리 화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 즉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라’고 하는 보살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선은 깨달음을 구하고, 깨달은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은 어여삐 여기고 그들을 도와주고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전래된 대승불교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흘러 갔는데, 그 하나는 교학을 중시하는 교(敎)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을 중시하는 선(禪)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교의 전통은 보살들의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것을 주로 다룬 전통이고, 선의 전통은 대체로 보살들의 깨달음의 내용과 그 방법을 중심으로 그 교의와 실천법을 전개한 전통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불교의 ‘깨달음중시’의 보수적 경향

한국 불교는 대승불교의 전통에 그 근거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양대 산맥을 통해서도 그 ‘깨달음’이라는 것에 주로 그 큰 강조점을 두어 왔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승단과 재가신도를 막론하고 선(禅)사상을 근거로 한 깨달음의 내용과 방법을 중심으로 하여, ‘깨달은 자’를 중시하고, 깨닫기 위해서 주로 노력함을 강조하는 것이 한국불교의 주된 전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즉, ‘위로 구함’(上求)만을 강조함으로써, 대승불교의 본래 실천의 핵심인 ‘더불어 살아가는’ 보살 정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폐단을 지적 받아 마땅하고, 또한 이것을 보다 시급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엘리트 위주의 불교 전통이 대다수의 일반 신도들로 하여금, 깨달음이나 진리에 대한 접근 보다는 기복적 수행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복 위주의 불교신행의 편향성 극복

제 2강에서 자력문과 타력문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 처럼, 자력문의 길은 깨달음의 길을 스스로 구하는 방법이지만, 타력문의 길은 신앙의 대상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도와주도록 비는 경향을 가리킨다.
전통적으로 한국불교의 역사는 타력문, 그 중에서도 대체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안녕만을 비는 ‘기복적’ 경향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과, 간절한 기도를 염원하는 종교적 실천의 의미가 반드시 수반되며, 또한 기도라는 것이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것이므로, 그 큰 종교적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복주의적인 경향으로의 편향은 보살로서의 실천행 뿐만 아니라, 불교 자체의 목적인 평화와 안정된 삶을 목표로 하는 수행에도 장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깨달음’만을 강조하는 엘리트 위주의 불교 신행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사상과 교의의 핵심 내용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하는 기복적 경향 또한 진정한 대승불교로의 참된 자비실천행을 위해서 극복 되어야 할 양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양극단을 극복하고, 아닌, 깨달음과 실천 수행을 동시에 겸하는, ‘상구보리즉(即)하화중생’으로의 새로운 해석과 실천만이 이 시대의 불교가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고, 중생 구제라는 본래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이념이자 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캘거리 서래사 법사 정진형(혜국)

기사 등록일: 20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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