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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와 참된 신앙_김병혁 목사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자 사람이라면 이 질문을 날마다 되뇌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신앙생활의 바람이요, 목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 질문을 얼마나 정직하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노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세계 선교 역사상 유례없는 교회 성장과 수적 부흥을 구가하였으나 한국 교회는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다시 참된 신앙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라도 기독교 역사에 대한 바른 지식과 안목이 요구됩니다. 올바른 기독교 역사 인식은 곧 참된 신앙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참된 신앙 vs 거짓 신앙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에는 모두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지난 2,000년 기독교 역사는 이 사실을 적나라하게 반증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교회 역사의 발자취를 신중하게 더듬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나마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의 양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기의 초대 교회들은 사도와 그들의 제자였던 속사도에 의해 세워졌던만큼 진리에 충실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2세기 들어, 초대 교회는 교회 안팎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외부로부터는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으며, 안으로는 성경을 왜곡하는 유사 기독교와 이단들이 교회안에 유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철저한 이원론(영지주의), 율법주의(에베온파), 신비주의(말시온, 몬타누스), 분파주의(노바티안) 바탕위에 세워진 혼합적 종교 형태(마니교)였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영감된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부정하였으며, 자신들이 고안해 낸 방법으로의 구원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정통 교회는 기독교 진리에 대한 구체적인 변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단에 맞서 정통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노력이 변증가들(Apologists)에 의해 시도되었습니다. 그로써 사도 신경이 만들어지고 신론, 기독론, 성령론과 같은 기독교 기본 진리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4세기 후반 들어, 기독교는 콘스탄틴 황제의 회심과 더불어 외형적으로 중흥기를 맞이하는 듯 하였으나, 기독교 신앙의 제도적 안정화는 도리어 신앙의 변질과 부패를 가져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이 국가에 의해 지배되면서 새로운 이단 사상들이 다시 종교적 제도권으로 속속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리우스파’와 ‘펠라기안주의’입니다. 아리우스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의 관계를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로서 설정하고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정하는 한편, 펠라기안은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 교리를 부정하고 인간의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였습니다. 비록 이들로 인해 초대 교회가 엄청난 심적 피해를 입었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정통 교회의 신앙고백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5세기에 들면서 일부 교회들의 타락이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로마와 같은 대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사도적 계승권에 대한 교회 기득권 양상으로 나타나던 것이 급기야 ‘세상의 모든 교회들의 머리로서의 교회와 교황’ 이란 개념으로 변질하였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등장과 함께 이후 1,000동안 정통 기독교 사상은 철저하게 유린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교황 무오설, 외경 정경화, 마리아 숭배, 성물(성인) 숭배, 구약적 절기와 의식 강화, 계급적 신앙 구조, 성직 매매, 일곱 성례, 면죄부 판매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종교적 거짓과 신앙적 부패를 자행하였습니다. 죤 위클리프(1329-1384)나 죤 후스(1373-1415) 같은 분들은 성경의 참된 권위와 교황권의 부패를 지적하다가 화형장의 이슬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나, 종교개혁을 향한 이들의 열망이 마틴 루터(1483-1546)와 존 칼빈(1509-1564)과 같은 인물에 의해 구체적인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거짓과 부패로 만연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향해 95개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당에 붙임으로써 종교 개혁의 서막을 열었으며, 존 칼빈은 부패한 역사 속에 방치 되었던 진리의 보화들을 캐내어 종교 개혁의 실질적인 견인차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후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종교 개혁자들은 말씀 보전과 전수를 위해 신앙 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등을 편찬해 내었습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6세기 종교 개혁의 정신을 가장 완성도 높게 드러낸 표준 문서로서, 오늘날에도 참된 교회와 신앙을 추구하는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적 좌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7,8세기 들어, 세속적 사조(계몽주의, 이성주의, 과학주의등)와 종교 개혁 운동에 대한 반동 세력(경건주의, 체험주의, 신비주의등)의 영향으로 많은 교회들이 종교 개혁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9세기 이후, 이 흐름은 초(超) 교파적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웨슬레 식) 부흥주의, (오순절) 은사주의, (물질적) 성장주의, (사회)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혼합주의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정통 교회로부터의 이탈 현상은 더욱 가속화됩니다. 이성과 상식의 이름으로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연합과 성장이라는 명목으로 세상과 타협하고, 효율과 실리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인간 중심의 기독교 신앙이 편만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게 있는 교회의 참담하고 열악한 신앙적 현실입니다.

올바른 기독교 역사 인식이 요청되는 이유
다시 한번 묻습니다. 참된 신앙을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전능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분께서 역사의 도상(途上) 위에 남겨 주신 진리의 길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고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라고 외쳤습니다. 성도라면 기독교 역사를 신중하고 진실하게 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에 무관심한 교회와 성도에게는 참된 교회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역사란 지나 온 신앙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며, 현재의 신앙을 점검하며, 미래의 신앙 목표를 설정해 주는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점점 더 혼돈과 오류의 수렁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교회의 형국을 볼 때, 기독교 역사에 대한 올바른 통찰과 안목을 갖는 일은 참된 신앙의 회복을 위한 필연적인 전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사 등록일: 200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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