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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와 참된 교회" _김병혁 목사 칼럼
교회와 신앙과의 관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어거스틴(St. Augustine)은 교회를 가리켜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하였고, 종교개혁의 아버지 칼빈(J. Calvin)은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다녀야 할 경건의 학교’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날 수 없고, 학생이 학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참된 배움을 얻을 수 없듯이 성도는 반드시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하며, 교회를 통하여 신앙의 훈련과 도전과 완성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배움이 있는 생생한 현장인 동시에 진리를 유지하고 보전하는 성곽이며 파수꾼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신앙은 교회를 떠나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교회 또한 성도의 신앙 없이는 존재 가치를 잊게 됩니다. 교회와 신앙, 신앙과 교회는 분리할 수 없는 숙명적 관계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볼 때, 눈에 보이는 교회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는 만큼 교회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팽배해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관한 몇 가지 오해들
어떤 이들은 교회를 사람들이 신앙을 위해 모이는 눈에 보이는 건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굳이 교회를 성당(聖堂) 혹은 성전(聖殿)이라고 하고, 교회 안에서 쓰이는 집기들조차 성물(聖物)이라고 칭하면서 외적 형태의 건물을 교회와 동일시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유대교와 로마 가톨릭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눈에 보이는 헤롯 성전을 진정한 교회라고 생각하였을 때, 주님은 자신의 몸이 참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교황과 사제들이 베드로 성당 건축을 핑계로 면죄부를 판매하였을 때, 루터는 성도가 세워야 할 진정한 성전은 건물로서의 베드로 성당이 아니라 비진리로 인해 무너져 내린 영혼의 성전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 기독교안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교회 건물의 대형화와 고급화 현상은 종교 개혁이전의 참람했던 영적 형편으로 돌아가는 일일뿐더러 교회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저급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를 가리켜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앙 모임으로 규정합니다. 교파와 신앙고백과 상관없이 신앙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지면 누구든지 교회를 세울 수 있고, 또한 예배만 드릴 수 있다면 교회가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특히 선교 단체나 해외로 이주한 교인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신앙의 단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교회의 형식에 대한 지나친 편견과 교회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교회의 기초와 근거를 사람의 행위에 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신앙 행위(열심과 수고와 헌신)는 열매의 성격이지, 교회를 구성하는 본질의 내용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원적 선택과 부르심에 있습니다. 즉 사람의 모임으로서의 교회가 있기 이전에, 어떤 이들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앞섭니다. 이것은 교회의 시작과 마지막이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인식 중 하나는 교회를 사람들의 종교적인 욕구와 만족을 채워주는 장소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과 세속주의가 결탁할 때,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어떤 이는 교회나 목회자를 통하여 얻게 되는 개인적인 축복과 번성과 성공을 자신들의 신앙적 노력의 대가로서 얻게 되는 열매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종교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형태의 신앙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세상의 성공과 축복을 담보해주는 지성소이며, 복음은 현실적인 요구들을 이루어 주는 적실한 수단 일 뿐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신앙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내어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지만,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는 엄중한 꾸중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주어진 영광스러운 능력과 권능을 인간의 육신적인 이기심과 만족감을 채우는 데만 허비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복음)을 가장 값싸게 취급하는 가장 어리석은 자와 다름없습니다.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3가지 표지
교회의 열악한 영적 형편은 오늘날 우리 시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고 오는 모든 교회의 대표로서 묘사된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교회는 단 두 교회뿐입니다. 사도들에 의해 세워졌던 초대 교회도 복음의 빛을 잃는 순간 거침없이 타락과 배도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로마 제국의 압제와 탄압으로부터 신앙을 지켜내었던 많은 초대 교회들도 기독교 이단들의 거짓 복음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중세 시대의 교회들은 오랜 세월동안 로마 가톨릭교회의 거짓된 가르침 아래 순수 복음을 빼앗긴 채 신음하였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의 화두가 ‘교회 개혁’에 집중된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역사 속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을 말씀으로 면밀히 검토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를 두 가지 형태로 규정하였다.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구분점은 교회의 인위적이거나 외적 요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가 추구하는 내용과 성격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데 있었습니다. 즉 교회의 교회됨은 교회의 규모나 성도의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교회로서의 표지를 얼마만큼 정확하게 드러내는가 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 개혁 시대에 만들어진 신앙 고백서중 하나인 벨직 신앙고백서(29장)에 따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에 대한 바른 분별이 있어야 할 이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의 원리에 따라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이 거짓 교회로부터 참된 교회를 구분 짓는 교회의 세 가지 표지입니다.
첫째, 참된 교회는 오직 말씀으로 순수한 복음을 바르게 전하고 지켜야 합니다. 참된 신앙의 기초는 오로지 바른 말씀의 선포와 정직한 순종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참된 교회는 성례(세례와 성찬)를 올바르게 시행해야 합니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교회를 위하여 제정하셨으며, 이 방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셋째, 참된 교회는 권징(또는 치리)이 바르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바른 권징을 통하여 교회는 그 순수성과 거룩성을 유지하게 되며,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변질되거나 부패되지 않도록 피차 경계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참된 교회는 이러한 교회의 표지들을 통하여 참된 신앙의 내용을 가르치고 고백하였으며 후세에 전수하였습니다. 참된 신앙이 참된 교회의 내용이라면, 참된 교회는 참된 신앙의 보루(堡壘)이기 때문입니다.


기사 등록일: 200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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