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를 돌리던지 넛트가 되던지
그러나
너무 밝아져서 웃지도 못할 상황.
전기 값은 누가 감당하지?
어둠침침한 카페에서
노래를 하던지 전자기타가 되던지
그리고도 춤을 춰야만 된다면?
복을,
일류 대학을,
큰 집을 쥐시옵소서
아니면
내가 땅이 되던가.....
아프칸 가는 배낭에 몸을 숨겨 가던가
그럴 배짱이 없으면
트랜스포머로 변신하던가
제기랄
마징가 제트는 이럴 때 도대체 어딜 간거란 말인가?
4대강에 삽질하러?
용산에 촛불이 내린다.
너무 하얗게 내려서 모두를 덮을것 같다.
빨개야 촛불인데
이젠 말라버렸다.
너무 많은 장면 전환은 헷갈려.
배낭 편집하고
거기 용산,
없어지고
아! 그래
청계천은 집어 넣도록.
원더우먼은 뭐해
이 바쁜 시간에,
빨리 돌아버려.
채플린!
당신은 여기서도 궁둥이 뒤뚱거리며
춤을 추시겠삽니이까?
아니면
가제트로 변신!
나와라 만능 칼....
넛트를 돌리던지 볼트가 되던지
아니면
누가 누가 잘하나
감시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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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까지 해체하고 싶은데
아직 잘 안되네...........................................................










시적 은유만이 가질 수 있는 혁신.
우리 모두 변화를 싫어하고,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라 늘 기존이 되며,
이 변화없는 연장을 누리는 즐거움과 행복.
삶의 은유적 혁신이 없이 일찍 감성과 이성이 노쇠해 버린 삶.
핏빛 한을 품고 사는 용산,
우리는 아직도 구미에 맞는 신만 찾으면서
구원이라는 명품/신상을 구매하며 즐거워 하고,
신은 삽질 에 가슴이 찢기고 신음한다.
채플린의 볼트와 기어는 거대한 괴물 기계.
허나, 포스트 모던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 모래알 처럼
도처에 괴물들만 우글거린다.
나약한 사람들은 냉혈의 기어에 몸이 작살나고
백혈병환자처럼 끊임없이 흘리는 피.
혈안이 된 삽질이 4대강을 휘몰고,
그 삽질의 성공으로 지도력을 가늠하는 세상.
여전히 우리는 모더니티의 언저리에 서성거린다.
삽질과 용산이라는 두 세상.
한쪽은 천군천사의 나팔소리가 휘황찬란하고,
한쪽은 한의 소리가 땅속 깊이 스며들어,
소통의 부재.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당연하게 흘러가고 (taken-for-granted ways),
피눈물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강물이 되는 세상.
해체는 새로운 구성인데, 님의 글은 많은 공백을 남겨 주기에
이미 해체의 길에 들어섰고,
우리는 그 해체의 빈 공간을 채워 재구성의 모험을 감행해야 할 터인데,
당연시되는 세상의 행복에 압도되어 있습니다.
자유를 꿈구며님, 잘 읽었습니다.
아프리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