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월드컵때마다 조별진출국 예언을 합니다 (상당히 잘 맞춘다고 자부 합니다.).
이번에도 서울시장 예언을 submit합니다. (알고리듬을 이용한 예언방법은 아니고, 기냥 저의 "감"(즉 신이 내린 땡감) 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박원순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7-9%정도의 차이로 이길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선거결과에 관심있는 분들은 지난번 개표때처럼 밤을 세우실 필요가 없을것 같고, 초반개표만 지켜보면 당락의 윤곽이 나올것으로 사료됩니다.
월드컵때도 그렇지만... 예언을 집어넣은뒤는 언제나 가슴이 떨립니다. (아니면 말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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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며칠전 facebook에다 쓴낙서입니다. 이낙서를 기화로 두명의 조카가 이번에 투표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젊은분들 투표 꼭 하세요.
(1) 나경원은 박원순이 13살때 그의 할아버지 세대의 "판단"을 근거로 그를 병역기피자로 몰아갔다.
(2) 그녀는 자기가 이사로 있던 자기 아버지 학교비리에 대한 의혹에 대해 "우리아빠 얘기를 왜하나? 내가 시장후보인데?"라며 화를 냈다.
(3) 이게 말이 안된다는걸 그녀가 모르기에는 그녀는 너무 똑똑하다.
(4) 그렇담, 이건 그녀가 "나쁜사람"이란걸 보여준다.
좀 착한 사람들이 뽑혔으면 좋겠다.
- 멀리 외국에서 경기도민이...










저의 논지는 간단했습니다. \"나\"가 확장된 것이 \"가족\"이라면 나의 확장인 가족에게 내가 투자를 많이 해도 아깝지 않고, 나의 \"가족\"이 확장된 것이 \"교회\"라면 그것에 열심히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그 경계를 넘어서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미적일 수는 있어도 선한 행위가 될수 없지 않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타심\" (altruism)라는 말을 잘 몰라서 사용은 안했는데, 적어도 이타적인 윤리로 발전해야 한다면 가족주의를 벗어나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글을 보니, 이타심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직계 가족에게 먼저 가고, 그 다음으론 친구나 아는 이웃에게 확장되고, 그 다음으론 먼 친척, 그 그 다음으론 우리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로 확장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의 저의 생각은 좀 극단적이었습니다. 위의 현상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실천하는 이타심인데 그래도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측은지심이 들어서 도와주는 것이 인지성정일 것입니다. <Peter Singer, The Expending Circle: Ethis, Evolution, and Moral Progress, p. 31>
저는 나경원이란 분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그 간의 그가 행한 행동을 보면 가족주의를 넘은 최소한의 이타심이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서울 시장이 된다\"는 슬로건을 걸었지만, 우리같은 서민은 상당도 못할 13억의 시세차익을 그것도 최근에 남기고, 미용에 회원비가 1억원이 드는 곳을 들락거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피눈물나게 한 자위대 행사에 참여하고, 자기 아빠 학교 재단을 위해서 사학법 개정 반대를 누구보다 앞섰고 여전히 본인이 그곳 이사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나경원님은 전혀 \"자기 가족\"의 범위를 넘어선 착한 행동을 한 전력이 거의 없습니다. 착한 마음에 진화가 덜 된 이런 분이 약자를 위한 시장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는 나경원님에게서 그런 전형을 보았습니다.
토마님의 예언대로(\"예측\"이란 말을 안쓴 이유를 대략 짐작하지만) 만일 박원순님이 시장으로 당선된다면, 반공주의, 흑색선전, 조중동의 광폭으로부터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반공주의의 잔영은 많이 제거될 것입니다. 토마님이 한잔 사실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