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칼럼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런 질문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늘봄님께서는 이 게시판에 성서이해에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거나 해석하는 대신에 은유적으로 읽어야 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 아래 번영님께 한 답변에서도 "은유적인 믿음"을 강조하셨는데 독자들을 위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잘 이해될 것 같습니다. 성서를 은유적으로 읽어야 된다는 것은 이제는 고인이 된 마크스 보그도 매우 강조 하였는데요. 우리가 시를 읽을 때 당연히 문자적으로 읽으면 안되고 은유적으로 읽어야 될 줄로 압니다. 시는 은유의 집합체이니 더 그럴 것입니다. 저는 보그의 글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도대체 성서를 은유적으로 읽는다는 것이 시적 독해와 어떤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지곤 하였습니다. 이것은 늘봄님께도 동일하게 느낀 의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런 아쉬움을 느낀 이유는 종교적 신앙은 미적 차원과 다른 면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보그는 시적 은유에서 상징이 차지하는 중심적 기능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래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성서의 은유적 읽기와 상징의 기능에 대해서 늘봄님의 설명은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두번째는 "깨달음"의 문제인데요. 깨달음을 awakening 또는 enlightening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합리성과 이성을 기초로한 계몽주의(Enlightenment)에서 지향했던 지식과 종교적 깨달음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봄님의 설교집 [깨달음의 하나님]라는 제목이 지시하듯, 늘봄님께서 생각하시는 깨달음은 지식(knowledge)과 다른 범주인지 또는 다르다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꼭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아서 여쭙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심층신앙"이라는 개념도 설명해 주시면 늘봄님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심층신앙이라는 말이 단순히 문자적 신앙과 대칭어로 만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니까요.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깨달음이란 말은 다른 말로 '인식한다' 는 말입니다. 광활한 우주를 눈으로 보고, 자연과 인간들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이 둘을 가슴으로 느끼고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을 통합적으로 '인식한다' 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왜냐하면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 신/하느님이란 믿는 존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이성적으로 깨닫는 실재(reality)입니다. 따라서 종교와 신앙은 입술로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실천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종교와 신앙은 깨달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