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기존 진보 기독교의 문제*
흔히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까지의 보수와 진보라는 표현이 지시하는 현상들을 볼 때, 대체로 보수(保守, conservativeness)는 지켜야 한다는 자세이고, 진보(進步, progress)는 기존의 것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자세를 지배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보수는 사회적으로 우파에 많이 가깝고 진보는 좌파에 많이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저마다 달리 해석하는데, 결국은 보수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진보는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지켜야 하는 것이며, 무엇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일까? . . . . . 현실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도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지킴>에서 <바꿈>으로 나갈 수 있게끔 하는가에 대한 바로 그 지점을 찾는 것이 작금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가치라면 당연히 바뀌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어떤 지점이 우리로 하여금 지킴에서 바꿈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하는가?. . . . .
오류와 비극을 통해보는 기독교 역사: . . . 이천 년 전의 예수사건 자체가 그때까지의 유대교 사회의 오류와 비극에 대한 성찰로서 마련된 일종의 새로운 대안 유대교 형성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이것이 결국은 후대에 기독교로 이어진 것인데 그러한 전승 과정에서는 또한 아무 문제가 없이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매우 꼼꼼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 . . . 신학은 언제든지 <재신학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중세 때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가 각각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지고 신학적 작업을 했다면, 오늘날 우리도 좀더 나은 철학적 맥락을 가지고 신학적 구축을 못할 것은 또 뭐겠는가. . . . .
현재의 한국 기독교의 진보 진영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오늘날 현재의 진보 기독 진영은 주류 보수 기독교의 한계들을 제대로 넘어서고 있기나 한 것인가? 기이하게도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날 진보 기독교인들을 떠올릴 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으니까 거의 대부분은 "사회운동을 하는 기독교인" 혹은 "좌파적 입장을 지닌 기독교인"으로 이해하는 답변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좌파에 가까운 사회적 실천운동을 하는 기독교인"을 진보기독교인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상 진보 기독교인들 이미 스스로부터도 그 같은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걸로 여겨진다. 대체로 진보 기독교인들의 신앙관을 보면 정치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들이 매우 지배적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나 자신이 이를 기이하다고 보는 이유는 적어도 진보 기독교인이라면 1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기에 “기독교 자체의 문제”에 1차적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그보다는 정치 사회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표방할 때가 많기에 하는 얘기인 것이다. 나는 지금 정치적ㆍ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리는 1차적으로는 종교의 자리이기에 기독교 자체의 문제에 더 관심해야 함을 말해주고 싶어서다. 적어도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회운동적 기독교인>이라기보다 <기독교적 사회운동가>가 더 적절할 것이다.
. . . . .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보다 시급한 것은 이미 기독교 자체의 문제다. 그게 더욱 1차적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1차적 사업은 기존 기독교가 계속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오류와 비극들에 대해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기독교 다시 수립하기인 것이다. 오늘날의 진정한 진보 기독 운동은 기존 기독교 자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수립 운동이다. 즉, 대안 기독교 운동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1차적인 작금의 진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 . . . 보수 기독교인들의 어줍잖은 대중문화 정죄론과 진화론을 무시하고 창조과학을 퍼트리는 것에 대해 진보 기독교인들은 분명한 분노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장이야말로 사실상 더욱더 위험한 것임에도 그 심각성을 잘 못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 . . 작금의 진보는 기독교인들의 사회운동이 아니라 이제는 기독교 자체를 새롭게 건설하는 과업이야말로 이 시대에 주어진 현재적 진보라고 본다. . . . 진정한 <진보>란 <진짜 보수>를 의미하며, 그것은 적어도 오류와 비극에 대한 성찰로서 지킬 것은 지키고 바꾸어야 할 것은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진영일 게다. 진보에 대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 자신은 내가 속한 그리스도교의 자리부터가 새롭고 건강하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는 것이다. . . . .

 
            



 
                    




 
                     
                            
"그런데 나 자신이 이를 기이하다고 보는 이유는 적어도 진보 기독교인이라면 1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기에 “기독교 자체의 문제”에 1차적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그보다는 정치 사회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표방할 때가 많기에 하는 얘기인 것이다."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이 문제는 1990년대에 민중교회 담론에서 고민한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없는데 신학화라...말도 안되죠. 늘봄님께서 교리주의에서 벗어나라고 하지만, 종교의 구성요건으로 교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 어떻게 교리나 강령없이 조직을 유지하나여? 민중교회 운동할 때, 운동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운동의 기초공동체로서의 교회조직을 멀리했고, 교역자들은 그래도 교회는 필요하다고 강조했었죠.
늘봄님은 다른 아래 댓글에서 " 탄생할 공동체는 종교적인 모임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삶의 공동체입니다. 진보 보수, 우리편 네편을 가리는 정치적인 단체도 아닙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동참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비전을 내어 놓고 있습니다."라고 상반된 말씀을 하시고요.
정강길님은 그냥 교회운동하자는 겁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