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1.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의 구분
저는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를 사실로서 믿지 않으며 이 점엔 대해선 비판적인 입장입니다(물론 문학을 비롯해 예술로서 의미를 향유하는 건 적극 찬성). 여기서는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naturalism 그리고 <신비주의>mysticism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한 구분을 해보고자 합니다.
<초자연주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과학>과 결코 양립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비주의>는 자연과학과 양립 가능하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양자는 다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그 점에선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도 구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는 자연을 벗어난 초자연적 실체나 원인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이러한 초자연적 원인이나 존재가 간헐적이라도 자연의 인과적 빕칙을 깨고서 자연 속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보는 사조를 의미합니다.
만일 과학이 <초자연주의>를 인정한다고 할 경우, 그 어떤 사건에 대한 해명에 있어 그 원인적 설명을 초자연적인 원인이나 존재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과학적 설명 자체를 아예 봉쇄시키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연세계가 존재하는 가장 궁극적인 원인, 그러니까 적어도 <제1원인>의 자리는 결국 초자연적 존재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와 달리 <자연주의>naturalism는 자연 속에서 얼마든지 자연에 대한 설명과 그 근거들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기에 이것은 자연과학의 탐구 방식에 적합한 사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이라는 학문 영역은 근본적으로 <초자연주의>에 기초되어 있지 않다고 봐야하며, 과학이 과학으로서 자리매김 되려면 과학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는 서로 결코 양립 가능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만일 초자연주의를 인정해버리면 자연주의는 그저 초자연주의에 대한 보조 역할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핵심 본질은 어디까지나 초자연주의에 있을 뿐이죠. 자연의 질서의 최종 원인자의 자리는 결국 <초자연>에 있다고 보는 것이니까요.
만일 기존의 보수 혹은 복음주의 기독교가 주장하는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처럼 자연의 인과적 질서의 궁극적 원인을 결국은 신 존재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나 근본적으로 해명 불가능한 원인에 둔다고 한다면, 자연의 인과적 질서를 탐구하는 일은 그런 초자연적 존재(혹은 초자연적 사건)에 대한 믿음 신앙으로만 귀결될 것이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연의 인과적 질서를 곧바로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비행기의 발명으로 확인된 하늘을 날겠다는 믿음도 결국엔 그것이 가능한 자연의 인과적 질서들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포함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제임스 랜드(James Randi) 같은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혹세무민하는 주술과 마법을 마치 사실인냥 호도하는 이들을 신랄하게 폭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런 주술적인 연출에 잘 속는 이들이 주로 초자연주의를 사실로서 믿는 사람들(여기엔 종교인들이 많겠죠)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 제임스 랜디 동영상 참조 링크)
https://youtu.be/nkVEbqThODc
2. 자연과학의 <합리주의>와 <신비주의>
어떤 면에서 과학의 합리주의는 신비주의와 동전의 양면일 뿐입니다. 이제는 이 점에 대해 다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일단은 <과학 이전의 시대>와 <과학 이후의 시대>를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점에서 가능하면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합리주의>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해 볼 것을 제안해보는 것입니다.
① 과학 이전 -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가 미분화된 혼재 상태
② 과학 시대 - 근대 자연주의 과학의 등장으로 초자연주의 믿음과는 충돌함
③ 과학 이후 - 자연주의적 과학과 신비주의 요소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 가능함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신비주의>mysticism는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있어온 것이지만, 이것은 과학의 온갖 합리적 해명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모름과 물음의 영역들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초자연주의와는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합리적 신비주의>라고도 명명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선 다음의 언급도 덧붙여 두는 바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합리주의>rationalism는 신비주의와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쉽게 말해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차원의 <신비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아직 우리가 성취하지 못한 <미지의 합리주의>인 것이며, 그나마 우리가 성취할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는 <합리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에 <노출된 신비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신비는 늘 해명을 기다린다. 그것은 인간에 내재한 근원적 호기심과 설명 욕구에 기인할 것이다. "
따라서 신비를 신비로만 남겨두려는 것도 신비에 대한 반역이자, 인간 지성의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합리적 해명을 열망합니다.
다만 인간의 합리적 분석 이후에도 항상 이를 빠져나가는 미완의 모호성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학지상주의적 태도 역시 온당치 못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신비는 도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과학이 <자연주의>를 채택하는 것은, <신비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초자연주의>를 제거하면서 이를 합리적 해명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 시대로의 전환 및 과학의 형성이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신비는 여전히 남습니다. 다만 초자연주의적 요소들은 현대에선 상상적인 판타지 문학에서나 유용하게 써먹을 순 있어도 이를 현대인들의 지성의 신념으로 지니기엔 매우 불통스런 요인만 될 뿐입니다.
만일 과학의 세계관이 초자연주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결국은 과학 자체를 훼손시키게 된다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가 과학과 지성적 소통이 가능하고자 한다면 결국 <합리적 신비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성격의 종교들은,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는 지성과도 충돌만 일으키는 매우 불통스런 영역으로 그리고 폐쇄적 믿음의 자족적인 그룹들로만 남게 될 것인데, 이는 분명한 종교 퇴행의 징후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과학의 합리주의라는 것도 적어도 이전보다 더 나은 경험으로서의 시행착오와 관련된 <상대적 의미의 합리주의>인 거지 불변적인 <절대적 의미의 합리주의>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이는 과학의 전개와 역사에서도 보듯이 항상 모험과 진화의 과정에 있는 일종의 <실험 합리주의>를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으로 봅니다.
어떤 면에서 과학의 합리주의는 신비주의와 동전의 양면일 뿐입니다. 이제는 이 점에 대해 다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일단은 <과학 이전의 시대>와 <과학 이후의 시대>를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점에서 가능하면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합리주의>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해 볼 것을 제안해보는 것입니다.
① 과학 이전 -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가 미분화된 혼재 상태
② 과학 시대 - 근대 자연주의 과학의 등장으로 초자연주의 믿음과는 충돌함
③ 과학 이후 - 자연주의적 과학과 신비주의 요소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 가능함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신비주의>mysticism는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있어온 것이지만, 이것은 과학의 온갖 합리적 해명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모름과 물음의 영역들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초자연주의와는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합리적 신비주의>라고도 명명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선 다음의 언급도 덧붙여 두는 바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합리주의>rationalism는 신비주의와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쉽게 말해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차원의 <신비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아직 우리가 성취하지 못한 <미지의 합리주의>인 것이며, 그나마 우리가 성취할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는 <합리주의>란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에 <노출된 신비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신비는 늘 해명을 기다린다. 그것은 인간에 내재한 근원적 호기심과 설명 욕구에 기인할 것이다. "
따라서 신비를 신비로만 남겨두려는 것도 신비에 대한 반역이자, 인간 지성의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합리적 해명을 열망합니다.
다만 인간의 합리적 분석 이후에도 항상 이를 빠져나가는 미완의 모호성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학지상주의적 태도 역시 온당치 못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신비는 도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과학이 <자연주의>를 채택하는 것은, <신비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초자연주의>를 제거하면서 이를 합리적 해명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 시대로의 전환 및 과학의 형성이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신비는 여전히 남습니다. 다만 초자연주의적 요소들은 현대에선 상상적인 판타지 문학에서나 유용하게 써먹을 순 있어도 이를 현대인들의 지성의 신념으로 지니기엔 매우 불통스런 요인만 될 뿐입니다.
만일 과학의 세계관이 초자연주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결국은 과학 자체를 훼손시키게 된다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가 과학과 지성적 소통이 가능하고자 한다면 결국 <합리적 신비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성격의 종교들은,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는 지성과도 충돌만 일으키는 매우 불통스런 영역으로 그리고 폐쇄적 믿음의 자족적인 그룹들로만 남게 될 것인데, 이는 분명한 종교 퇴행의 징후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과학의 합리주의라는 것도 적어도 이전보다 더 나은 경험으로서의 시행착오와 관련된 <상대적 의미의 합리주의>인 거지 불변적인 <절대적 의미의 합리주의>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이는 과학의 전개와 역사에서도 보듯이 항상 모험과 진화의 과정에 있는 일종의 <실험 합리주의>를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으로 봅니다.
3.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의 구분
- 궁극적 원인을 초자연에 두는 입장과 인식 한계 너머의 경험까지 인정하는 입장의 차이
- 궁극적 원인을 초자연에 두는 입장과 인식 한계 너머의 경험까지 인정하는 입장의 차이
물론 초자연주의와 자연주의 그리고 신비주의에 대해 써놓은 기존 백과사전 개념 정의에선 이러한 구분들이 모호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적어도 지금까지 축적된 과학적 성과들의 충돌 여부가 관건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연의 사건을 놓고 그 궁극적인 결정적 원인을 초자연적 실체(혹은 존재)에 둔다면 초자연주의 사조인 것이며 이는 과학의 자연주의와는 충돌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병에 걸린 궁극적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는 걸 부정하고 마귀나 귀신이 들려서 그렇다고 보는 것이나, 신이 죽은 사람도 살아날 수 있게 한다면서 시체를 모셔놓고 기도하는 사례 등등 이런 경우들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비주의는 과학과 충돌하기보다는 단지 인간의 인식 밖의 영역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관련해서는 불가지주의에 더 가까운 사조입니다. 신비주의(mysticism)의 어원 자체가 그러합니다.
mystery는 어원적으로 고대 그리스어인 μυστήριον(무스테이온)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눈을 감거나 입을 닫는다’는 의미인데, 쉽게 말해 <감각에 대한 차단>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신비>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도 입으로도 형언하기 힘든 영역이자 그러한 성격의 것에 해당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어떤 주술적인 마법 같은 것이 신비에 속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미 동서양의 신비사상을 정리한 바 있는 월터 스테이스(Walter T. Stace) 교수에 따르면, 신비사상이 아닌 것으로 주술적인 것, 심령 현상, 투시력 등 이러한 것들은 신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인간의 감각 측정 인지를 벗어나 근본적으로 정의내리기 힘든 영역을 의미할 뿐이라는 거죠.
바로 이 점에서 저의 입장은 <세계 안의 합리주의>를 <노출된 신비주의>로 보는 것이고, 그리고 <세계 너머의 신비주의>를 <미지의 합리주의>로 보는 가운데 양자를 본질상 연결된 하나로서 본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둘은 완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라기보다 동전의 양면처럼 유한자인 인간은 적어도 그때까지의 유한한 세계가 성취해놓은 최선의 합리적 방식들(여기엔 과학의 설명들도 포함 가능)로서 무한의 신비를 기술(description)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거죠.
물론 그것이 세계 안에 언표된다면 그때의 그것들은 더 이상 신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신비 자체는 항상 저 너머의 요소들을 지칭하는 것일테지만 그것이 진화하는 이 현실세계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있어서는 저 너머의 것들도 결국은 합리주의라는 제약된 기술(description)로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지점도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끝으로 영어에서 paranormal 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는 문맥과 맥락에 따라 초자연도 신비도 모두 지칭할 수 있기도 합니다. 적어도 normal 하지 않는 상태를 지칭한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늘상 말씀드리는 것 중의 하나는,
종교도 진화하지 않으면 퇴행하거나 소멸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인간의 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신에 대한 신앙 혹은 무신론에 대한 이해도 깊고 넓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신관도 마찬가지로 진화할 것으로 봅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만 천국에 들여보내고 안믿으면 지옥 심판하겠다는 그런 신은 없습니다. 현재로선 신의 자격으로도 함량 미달일 뿐입니다. 이러한 대전환기에서 종교 역시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순간의 선택이 지구 문명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연의 사건을 놓고 그 궁극적인 결정적 원인을 초자연적 실체(혹은 존재)에 둔다면 초자연주의 사조인 것이며 이는 과학의 자연주의와는 충돌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병에 걸린 궁극적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는 걸 부정하고 마귀나 귀신이 들려서 그렇다고 보는 것이나, 신이 죽은 사람도 살아날 수 있게 한다면서 시체를 모셔놓고 기도하는 사례 등등 이런 경우들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비주의는 과학과 충돌하기보다는 단지 인간의 인식 밖의 영역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관련해서는 불가지주의에 더 가까운 사조입니다. 신비주의(mysticism)의 어원 자체가 그러합니다.
mystery는 어원적으로 고대 그리스어인 μυστήριον(무스테이온)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눈을 감거나 입을 닫는다’는 의미인데, 쉽게 말해 <감각에 대한 차단>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신비>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도 입으로도 형언하기 힘든 영역이자 그러한 성격의 것에 해당한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어떤 주술적인 마법 같은 것이 신비에 속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미 동서양의 신비사상을 정리한 바 있는 월터 스테이스(Walter T. Stace) 교수에 따르면, 신비사상이 아닌 것으로 주술적인 것, 심령 현상, 투시력 등 이러한 것들은 신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인간의 감각 측정 인지를 벗어나 근본적으로 정의내리기 힘든 영역을 의미할 뿐이라는 거죠.
바로 이 점에서 저의 입장은 <세계 안의 합리주의>를 <노출된 신비주의>로 보는 것이고, 그리고 <세계 너머의 신비주의>를 <미지의 합리주의>로 보는 가운데 양자를 본질상 연결된 하나로서 본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둘은 완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라기보다 동전의 양면처럼 유한자인 인간은 적어도 그때까지의 유한한 세계가 성취해놓은 최선의 합리적 방식들(여기엔 과학의 설명들도 포함 가능)로서 무한의 신비를 기술(description)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거죠.
물론 그것이 세계 안에 언표된다면 그때의 그것들은 더 이상 신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신비 자체는 항상 저 너머의 요소들을 지칭하는 것일테지만 그것이 진화하는 이 현실세계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있어서는 저 너머의 것들도 결국은 합리주의라는 제약된 기술(description)로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지점도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끝으로 영어에서 paranormal 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는 문맥과 맥락에 따라 초자연도 신비도 모두 지칭할 수 있기도 합니다. 적어도 normal 하지 않는 상태를 지칭한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늘상 말씀드리는 것 중의 하나는,
종교도 진화하지 않으면 퇴행하거나 소멸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인간의 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신에 대한 신앙 혹은 무신론에 대한 이해도 깊고 넓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신관도 마찬가지로 진화할 것으로 봅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만 천국에 들여보내고 안믿으면 지옥 심판하겠다는 그런 신은 없습니다. 현재로선 신의 자격으로도 함량 미달일 뿐입니다. 이러한 대전환기에서 종교 역시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순간의 선택이 지구 문명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종교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문제입니다. 종교적 이야기가 허구적일 수도 있고,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고, 과학적 사실을 엮어서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그 행간을 엮어 나가는 이야기 꾸미기 능력은 진화된 인간이 갖는 특성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는 것은 종교가 지시하는 과학적 지식이 위대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고리를 하나 하나 엮어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가 “신화”(myth)가 되어서 그것이 자신의 삶에 “의미있는”(meaningful) 차원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천국이나 지옥같은 것 안믿고, 기독교근본주의 신앙 따위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보지만, 그 근본주의 신앙 속에서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인간의 힘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지질학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지질학의 지형을 따라서 우리의 삶의 경험을 엮어서 나온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교과서를 읽기보다는 소설을 더 읽기를 좋아하고, 다큐보다는 영화보기를 더 좋아 합니다. 저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마지막회만 일부러 안봤지만, 사람들은 태양의 후예의 이야기를 원하지 거기 나온 휴대전화가 터진다고 감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통적 기독교도 잘 진화해 왔거든요! 진보교회는 스토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스토리가 없는 종교는 그닥 힘을 얻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감히 판단컨대, 늘봄님은 새로운 문자주의자(new literalist)입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