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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작성자 Terry     게시물번호 -2181 작성일 2005-12-03 08:12 조회수 1957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안톤 쉬낙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졌 있을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이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있게 될때,

아무도 살지 않는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위에서는
"아이세여, 내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힘든 글귀가 쓰여 있음을 볼때,

숱한 세월이 흐른뒤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쓰여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네 소행(所行)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稚氣)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 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동물원의 우리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의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鐵柵) 가를 왔다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砲哮),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듯한 순환(循環),
이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횔덜린의 시, 아이헨도르프의 가곡.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 하는 한 시인밖에 될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듯한 태도를 취할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것은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누구인가 모래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서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때,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 무도회에서 돌아왔을때,
대의원 제씨의 강연집을 읽을때,
부드러운 아침공기가 가늘고 소리없는 비를 희롱할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때.

공동묘지를 지나갈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때,
아, 그녀는 어렸을 적 내 단짝 친구였지.

허구헌날을 도회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꺼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교과서.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혀지는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의 졸졸 흐르느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때,
그 당시는 불현 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빈밭과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시절에 살던 마을을 다시 찾았을때,
그곳에서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빛깔들.
둔하게 울리는 종소리.
가을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극단의 여배우.
세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바이올린의G현.
휴가의 마지막날.
만월의밤.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두세구절.
굶주린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위로 내려 앉은 하얀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감상소감: 복잡한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 차 한잔과 좋은글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합니다. 비록 단조록고 바쁜 이민생활이 될지언정 때로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 자기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흐르는 음악은 Yesterday 입니다) 

Placido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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