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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151]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유신론적 하느님”에게 의존하는 “믿음” 보다 “하느님 없이” 자율적으로 “성숙한 인간성”을 살아내는 “삶”이 절실히 필요하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5361 작성일 2021-10-22 06:06 조회수 235

코로나19 팬데믹의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인격신론초자연적 하느님은 확실하게 실직자가 되었으며 사실상 그런 하느님은 이미 오래 전에 인류 사회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지구촌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수많은 위기에서 유신론적 하느님 존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람들을 분열과 혼돈에 빠트렸다. 더 이상 어떤 모양의 하느님이라도 예배기도외부로부터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타자적 하느님은 설득력과 효력이 없다. 인간은 하느님 없이모두가 함께 안전하게 행복하게 의미있게 살 수 있는 이 있다. 그것은 과학을 거부하지 않고, 과학을 신뢰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 기초로 삼는 새로운 의식 인간성이다.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19 팬데믹 지구적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보수성향기독교인들은 현대 의학을 반대하고, 백신접종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하느님이 바이러스를 막아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따라서 신천지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에서 종교 자유를 핑계 삼아서 방역수칙과 행정명령을 어기는 일이 많이 생기더니 집단감염  온상지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 과학을 반대하고 거부하는 인격신론 초자연적 하느님바이러스를 막지 못하고, 제대로 할 일을 잃은 무직자로 전락하여 무용지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건강과 안전에 위험한 장애물이 되었다. 사실상 종교 뿐만 아니라 표현 자유를 포함한 모든 인권은 전체 국민이 공동체적으로 평등하게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취지에서 생긴 자유인권이 이기적이고 부족적인 생존 욕구로 인해 분란의 원천이 되는 상황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종교 자유 표현 자유에는 국민적인 책임이 따른다. 코로나 19 팬데믹에서 개인의 자유를 외치면서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부족적인 옹졸한 짓이다. 종교자유는 공동체의 안전을 침해하거나 해를 끼쳐가면서까지 보장될 수 없다. 표현 자유는 민주체제에서 100퍼센트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것의 실천은 시민들의 건전한 이성지성으로 조절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의식과 성숙한 인간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종교 표현 자유를 전적으로 옹호하면서도 자기절제가 가능한, 수준 높은 국민들이 있어야 자유가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비극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 지구촌은 잠시 개인적인 자유를 접어두고 이기적인 생존 욕구의 경계 넘어 공동체적으로 팬데믹을 극복하는 것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21세기 과학시대의 현대인들은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온전하게 살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삶과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기 위하여, 과학이 발견한 138억년의 우주진화 이야기의 깊은 의미와 존엄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진심으로 기쁨과 자유와 평화와 성취감을 지속적으로 체험하기 원한다면 우주 끊임없는 진화와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인식하며 사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기존 종교체계들이 만들어 놓은 내세적 구원론, 영원히 살겠다는 생존 욕구의 윤회론, 보상심리의 인과응보 등의 기복신앙과 그에 대한 교리와 전통들은 두려움 이기심을 가증 시킬 뿐이며, 가정과 사회를 분단과 혼돈에 빠트리고 있다. 과학공개적으로 계시(啓示)하는 우연적이고 자연적인 진화과정생명일회성을 인식하며 온전하게 산다는 의미는 눈앞에 보이는 실제적인 현실 세계과학이 발견한 자연과 우주세계를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겸손함 진실함 책임감으로 상호의존관계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필자는 독자들에게 우리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가 유신론적 하느님 없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삶의 방식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1) 첫째로, 우리는 과학이 발견한 자연과 우주의 의미에 대하여 겸손해야 한다! 138억 년 전에 빅뱅으로 우주가 가장 먼저 탄생했고, 우리는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개체들 중에 하나로 지구에 속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인간초자연적 존재가 빅뱅 이전부터 미리 계획한대로 창조한 피조물이 아니며 다만 자연적이고 우연적으로 등장했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도 아니고 다만 우주의 변두리에 위치한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인간오만 편견은 오히려 우주의 궤도와 운행에 해를 끼칠 뿐이다. 인간은 다른 세계에서 이 우주로 이주해 오지 않았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출현했다. 인간은 우주세계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언젠가 우주가 폭발하여 사라지면 인간도 함께 사라진다. 자연의 법칙은 어떤 초자연적인 힘//하느님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법칙은 공개적이며 과학적인 진리이다. 인간은 이 진리에 겸손해야 한다. 모든 종교 철학교육은 이 법칙의 기초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은 현실과 자연과 우주에 겸손할 뿐만 아니라 신뢰해야 한다.     

 

(2) 둘째로, 우리는 자연과 우주에 대하여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연과 우주에 대하여 정직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실제적인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기적을 맹신하지 않고, 형이상학적 내세에 대한 망상을 버리고, 현세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연과 우주에 대하여 진실하고, 숨김없이 투명하고, 진실한 태도를 갖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삶의 길이 된다. 우리는 내세에 대한 달콤하고 그럴듯한 말과 또는 최후심판과 징벌이라는 두려움에 찬 위협적인 말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감성적이고 표층적인 감동은 우리에게 순간적인 기쁨이나 변화는 줄지 몰라도 우리의 삶을 심층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이고 심오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    

 

(3) 셋째로,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나의 삶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진실한가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삶에 대해 100% 책임질 때에 가능하다. 나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될 수 없다. 나의 이대로의 모습과 나의 삶의 질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나의 삶은 비교급 삶이 될 수 없다. 잭 캔필드는 자신의 저서 행복의 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게 살기 원하면 나의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100% 책임져야 한다. 여기에는 나의 성취, 나의 실패, 내가 만든 결과들, 나의 대인관계, 나의 건강상태와 겉모양, 나의 수입, 나의 부채, 나의 감정,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물론 100%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난  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타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즉 우리의 부모님들, 직장상사들, 친구들, 언론들, 직장동료들, 고객들, 배우자들, 기후, 경제, 점쟁이의 점술, 교회목사, 심지어는 신/하느님, 등 이 모든 타자들과 사건들에 책임을 떠맡긴다. 우리는 드러난 결과와 현상의 문제점을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참고: ‘The Success Principle’, Jack Canfield)    

 

오직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끼고,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질 때에 만이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 영원함을 깨달어 알 수 있고, 두려움과 이기적 욕심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성공과 축복과 영원함은 죽은 후에 다른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의미는 저 멀리 하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자신의 내면 경계 넘어 관계 속에 있다.    

 

(4) 넷째로, 우리는 전체를 위해 공동체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우주는 모든 개체들의 근원이고,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우주는 각 개체들이 모여 이루어진 통합적인 전체이다. 따라서 나 한 개체는 우주이고 나의 모든 이웃 개체들도 우주이다. 나를 제외하거나 다른 개체들을 소외시키거나 제외하고서 통합적인 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우주세계궁극적인 현실이고,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주라는 전체는 어느 한 개체도 폄하되고 소외될 수 없다. 실제적인 현실에서 삼라만상이 자연적으로 출현하고, 개체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개체들이 출현하고, 모든 지식, 이해, 능력, 고통, 변화가 일어난다. 이 전체의 실제적인 현실은 모든 것들을 포용한다. 우리 인간 개체들은 전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이고 목적이다.       

 

개체들이 통합하여 전체를 이루는 온전함진화과정의 핵심이다. 이 온전함을 거부하거나, 현실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거나,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타자들에게 전가하면 우리는 우주 전체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모든 개체들은 전체로부터 소외될 수 없다. 우리 각 개체들은 우주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깨달음에 이르고, 자유와 해방을 누리고,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은 도전적인 일이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자연과 우주를 신뢰하고,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겸손함과 진실함이 성숙해지고, 나의 모든 삶에 대해 100% 책임지고, 한 개체로써 전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 인간 본성이다. 진화는 단순히 과학적인 의미를 넘어서 인간 존재 의미에 대한 심오한 뜻을 지닌다. (참고: ‘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Edward O. Wilson)

 

(5) 다섯째로, 우리는 도전들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환영해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자신 있게 드러내고 싶지 않는 부정적인 면들, 즉 우리가 저지른 실수, 결점, 온전하지 못했던 삶의 영역 등 이 모두는 우주의 한 부분들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 신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실수들과 결점들은 우주세계진화과정에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피해를 주는 혜성들과 지진들과 전염병들은 우주진화 이야기에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기후변화와 범죄와 테러와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우리가 출현한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의 세상을 멸망할 더러운 곳으로 정죄하고 회피하기 보다는 우리 인간이 숨쉬고 진화하고 성숙하는 오직 하나의 세상으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경계 넘어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생명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과 우리의 어리석음, 이기심, 탐욕, 추함, 우매함, 인색함과 우리의 추잡한 말들과 행동들을 은폐하지 않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우주는 이미 이 모든 것들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있다. 우리의 욕심과 죄와 결점은 새로운 탄생과 성장의 소중한 요소들로 전환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심판 받아 마땅한 더러운 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 ‘On Human Nature’, Edward O. Wilson)

 

오늘 우리의 주변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돌아보자. 우리의 이웃들과 사회와 세계는 무엇이 절실하게 필요한가? 극심한 빈부차이, 성차별, 인종차별, 종교차별, 성적본능차별이라는 인간차별 생태계 파괴, 테러, 전쟁,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촌을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는 닥쳐오는 현실적인 도전들을 초자연적 하느님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한체 우리의 자율적이고 창조적 불가능하다고 쉽게 포기할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죽은 후에 이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옮겨 간다는 내세적인 망상에 빠져 있을 것인가? 만일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진정으로 우주를 신뢰하며 산다면 우리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이주한다는 불량신학 믿음은 유치한 부족적 꿈에 불과하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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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21-10-25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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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없는 종교", "종교 없는 기독교", "교회 없는 사회", "종교 없는 사회" 라는 말들이 요즘 미디어와 서점에서 부쩍 자주 들린다. 75년 전 2차 대전 말기에 나치 히틀러에 의해 감옥에 갇힌 본훼퍼 목사가 처음으로 "종교 없는 기독교"라는 말을 한 이래 지금까지 교회 안밖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교회는 그동안 이러한 예언자적 도전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고 온갖 몰상식하고 유치한 짓들을 많이 해왔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가 급성장하면서 권위적인 교회는 교인들을 통제하기가 불가능해졌다.

필자가 20년 동안 목회지에서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은퇴생활에서 "예수 살기 운동" 곧 "역사적 예수 탐구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기고 있는 것은 교회 죽이기가 아니다. 나는 충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나의 신학의 족보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흐름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나를 "무신론자 목사"라고 부른다. 본훼퍼 목사도 무신론자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다. 오늘 세계의 주류 신학계를 선도하고 있는 나의 모든 멘토들과 많은 동료 신학자들은 무신론자 기독교인들이다. 이들은 기독교 교회를 다시 살리려고 끊임없이 참 사람 예수, 역사적 예수, 인간 예수의 정신을 탐구하고 있다.

유신론적 믿음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무신론적 삶의 시대가 도래했다. 2천년 전에 예수는 삶으로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르쳤다. 예수는 종교제도에 대해서 철저히 반대했다. 따라서 당시의 유신론적 종교체제에 따르면 예수는 무신론자였다. 예수에게 종교와 인종과 성의 경계가 없었다. 예수는 이런 경계를 높이 쌍아올린 유신론적 성전종교를 반대하고 거부했기 때문에 처형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의 교회는 예수가 그렇게도 반대했던, 예수를 처형했던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맹신하는 종교제도를 답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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