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같이 회원 가입된 사이트나 카페가 있었다. 거기에 종종 글을 쓰곤 했다. 글의 주제는 주로 아내와 관련된 것이다. 엉뚱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엔 끝에 아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넣고는 했다. 혹은 아내와 가볍게 대화한 내용의 심화판을 주로 끄적이곤 했다.
예를 들면
'아 씨, 트레일러 타이어 빵구났는데 메카닉이 나더러 스페어타이어 꺼내게 시키네. 그래서 옷이 좀 더러워졌어. 타이어 무거워 혼났네.'
'아니, 딴데로 가지 그랬어.'
'시골이라 갈데가 없었어. 그리고 메카닉이 할아버지더라고'
'아, 그럼 꺼내드려야지'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일이
https://www.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15761&category=&searchWord=&page=3
이렇게 쓰여진다.
혹은
'아 씨, 요즘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써써 거려. 나 진짜 늙었나봐.'
'그러게 염색 하라고 했잖아. 오늘 머리깎고 염색하자.'
'아, 시러시러, 귀차나 <도망>'
이런일이 있은 후에
https://www.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15770&category=&searchWord=&page=3
요런걸 쓴다.
아내는 뜬금없이 올라온 이런 글을 게시판에서 발견하고 무지 재밌어 한다.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 나도 어깨가 으쓱으쓱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내가 쓰는 잡글의 제 1 독자는 주로 아내로 상정되어 쓰여진다.
그런데 이런 사이트나 카페가 문을 닫는 일이 흔하다. 결국 자연스럽게 글을 안쓰게 되었다. 글을 써서 아내를 까르르까르르 웃긴지 몇년이 지났다. 간혹 아내는 왜 더이상 글을 안쓰냐고 물어보곤 했지만 쓸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내가 가끔 CN드림을 방문하는걸 봐왔다. 게다가 작년 초엔 함께 밴쿠버 다녀온 이야기를 이곳 게시판에 남기기도 했다. 즉, 아내는 이곳 게시판에 데뷔한 필자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약 다시 뭔가를 끄적거린다면 CN드림 자유게시판이 되겠구나 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뭐 지금 보니 잘못된 생각같다만…
최근에 아내가 다시 취직했다. 긴 트립 이후에 집에 돌아와도 나 혼자 심심하게 지내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갑자기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고 이곳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내가 더이상 CN드림에 안온다는 거다. 새로운 일때문에 여유가 안생기는가 보다. 아내와 나만 아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넣어놨는데 아무 기색이 없는걸 보니 안오는게 틀림없다. 당분간 아내가 까르르까르르 웃는걸 보는건 어려울것 같다.
그동안 글을 써제꼈던 곳들과 CN드림은 많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사람이 너무 많다. 예전엔 조회수가 100이 넘으면 메가히트였는데 여기선 쉽게 1000이 넘는다. 좀 겁이 나기도 한다.
뭔가 분위기가 내가 쓰는 글들과 안맞는것 같다. 예전엔 그래도 나름 팬도 생기고 그냥 일상의 끄적거림을 즐겁게 맞아주신 분이 많았는데 여긴 뭔가 전투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올라오는 글들이 대부분 읽는 특정인들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게 목적인것 같다. 괜히 내가 분위기를 망치는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잠깐 흑화되어서 <공산당 만세> 같은 본격 정치경제 꽁트를 표방하는 뻘글도 쓰기 시작했지만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공산당 만세>를 읽고 아내가 까르르까르르 웃어줄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여기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3주간 좋은 일도 있었다. 먼저 여러가지 글빨을 생각하다 보니 운전할때 덜 졸린다.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10개 넘게 이미 쓰여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 규칙을 보니 글을 이틀에 하나만 올려야 한단다. 그것도 모르고 며칠전에 이틀동안 연이어 두 개의 게시글을 올린적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강퇴당할뻔 했다. 휴~
또 의외로 트럭운전을 하면 기약없이 기다리는 일이 많은데 글쓰기는 이런 시간 죽이기에 참 좋다. 스맛폰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따다닥 써제끼면 55%가 오타다. 오타 수정하고 있으면 벌써 로딩이나 언로딩이 완료됐다고 싸인하러 오란다. 아따, 시간 잘간다.
여튼, 여기에 아내를 까르르까르르 웃기기 위한 글을 꽤 써놨는데 아내가 안와서 슬프다. 까르르까르르 웃는 아내를 보며 어깨를 으쓱으쓱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