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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께서는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를 싫어했다. 내가 들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68 년 홍콩과 일본에 출장을 갔는데, 태풍때문에 예정된 날짜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일주일 이상을 호텔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는 온라인 송금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고 도쿄에 지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 귀국 비행기가 뜰때까지 돈을 아껴써야 했다.
그러다보니 가장 싼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일본에서 가장 싸구려 음식에 속하는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를 며칠 동안이나 번갈아 사 드셨다고 한다.
선친과는 달리 나는 오므라이스를 좋아하는 편이다.
토마토와 계란은 그 맛의 조화에 있어서 찰떡궁합이기때문에 안 좋아하기가 어렵다.
신촌에 있는 현대백화점 음식코너에 가면 돈가스 + 오므라이스를 8 천 원에 파는 집이 있는데 (지금은 훨씬 더 올랐을듯) 한국여행 갈 때마다 한 번 씩은 간 것 같다.
2018 년 가을엔가, 한국에서 최고의 오므라이스를 하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간 적도 있다.
누구에서 소개받은 것은 아니고, 넷플릭스 드라마 심야식당에서 오므라이스집으로 나온 걸 본 것이다.
늘 그렇듯이 순진한 나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드라마만 믿고 갔다가 낭패를 봤다. 북촌에 있는 뭉치바위라는 집은 오므라이스집이 아니라 쌈밥집이었다.
도쿄 긴자에 렌카테이라는 유서깊은 식당이 있다.
煉瓦亭이라고 쓰고 한국발음으로는 연(련)와정이라고 읽는다.
한국사정에 어두운 내가 쌈밥집을 오므라이스집으로 잘못 알고 찾아갔듯이, 일본사정에 어두운 누군가는 이 집을 오므라이스집으로 잘못알고 찾아갈 수도 있다.
포크커틀릿을 돈가스로 개조한거나 오믈릿을 오므라이스로 현지화한 게 모두 이 식당의 작품인 연유로 돈가스와 궁합이 잘 맞는 오므라이스를 사이드메뉴로 팔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집은 돈가스집이다.
돈가스는 육식을 금지해 온 메이지 이전의 전근대에서 벗어나 서양의 육식을 일본식으로 처음 재창출한 음식이라는 점에서 개혁의 상징으로 꼽힌다.
돈가스먹고 튼튼해져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 열강에 올랐던 일본은 그 ‘돈가스 정신’으로 아시아 주변나라들을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근대화시켜줬다고 지금도 자부하고 있다.
유서깊지만 결코 비싸지 않은 이 허름한 돈가스집은 일본의 그런 자부심을 상징하는 노포라고 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나쁘고 잘못된 자부심이기는 하지만, 아 그런 사연이 있는 식당이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고,
도쿄 여행 중 긴자에 갈 일 있으면 궁금하니까 한 번 쯤은 사 먹어 볼만도 하지만, 먹방후기를 남길 마음은 전혀없다.
왠지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