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미대륙을 누비던 장거리 트럭 운전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8년 넘게 잡았던 핸들을 뒤로하고 백수다.
8년여 간의 트럭 운전사 생활은 내 몸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우선 체중이 4kg 늘었다. 대략 1년에 500g씩 쪘다. 수치상으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내용을 까 보면 형편없다. 종아리와 허벅지를 꽉 채우던 근육은 몽땅 사라졌다. 내 리비도를 상징하던 오리 궁둥이조차 탄력을 잃고 흐물흐물 축 늘어졌다. 보기 흉하게 볼록 튀어나온 올챙이배에 얼굴은 호빵맨처럼 빵빵하다. 소중한 근육을 잃고 쓸데없는 지방만 잔뜩 늘었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선 체중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내 체중은 강력한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아내가 출근한 동안 단식을 하며 1Kg 정도 감량을 해 봤자 밥 한 끼를 먹으면 바로 돌아와 버린다. 특히 외식을 하면 여지없이 1, 2키로그램 정도가 순식간에 증량된다. 그래서 요즘은 완전히 외식공포증에 걸렸다. 내 몸은 다시 8년에 걸쳐서 4kg을 줄이도록 강요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게 문제다.
트럭커 생활을 할 땐 보통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 부족한 칼로리는 운전을 하며 졸음을 쫓을 겸하여 견과류, 육포 혹은 사탕 등으로 때웠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백수가 된 이후엔, 더더욱이 7월부터 아내도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는,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강제적으로 먹어야 한다. 나는 아내에게 사육되고 있었다.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에 예전 체중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이렇게 아내에게 사육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적으로 아내의 전생 때문이다. 아내는 틀림없이 굶어 죽은 전생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경신 대기근의 희생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내는 끼니를 거른다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이런 성향을 처음 인지한 것은 결혼식 당일이었다. 식을 마치고, 폐백을 드리고, 식당에서 하객에게 인사를 드린 후, 신혼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아내는 “배고픈데 우린 밥 안 먹어?” 했다. 우리는 하객이 반쯤 빠진 식당의 구석탱이에 앉아 갈비탕을 청했다. 서빙하시는 분들이 우리가 신랑 신부인것을 알아봐서 공짜로 밥을 내주셨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갑자기 식권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할 뻔했다.
비슷한 일은 결혼 생활 내내 계속됐다. 인도 여행을 할 때 도시간 이동을 위해 10시간 이상 기차를 여러 번 타야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기차 안에서 혹시 끼니를 거르지나 않을지 공포에 빠졌다.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기차를 타기 전 바나나와 쿠키 등 비상식량을 챙기고는 했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엘로라 유적군을 구경할 때, 식사 시간을 놓치자 아내는 에너지가 바닥나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전세 택시 기사와 만날 약속 시간 때문에 결국 자이나교 유적 관람을 포기하고 아내를 먹여야만 했다. 두 달 전에 아내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에도, 아내는 응급실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며 식사를 못할 것을 염려하여,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산에서 먹기 위해 쌌던 도시락을 까먹은 후 응급실로 향했다. 부러진 다리보다는 끼니가 우선순위인 것이다.
아내는 착한 사람이다. 자신이 매 끼니를 먹어야 하므로 그녀 주변의 사람도 식사를 거르면 안 된다. 예전 추억 때문에 히말라야 ABC 트레킹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보는데, 아내는 유튜브 촬영자들이 자기들끼리만 식사를 하고 포터와 가이드의 밥을 챙겨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화면에 보이는 포터의 기력이 떨어져 보일 때마다, “저 포터 밥 먹은 거야? 힘이 없어 보이잖아!” 라고 안타까워 한다. 그런 사람 옆에 항상 내가 있다. 나는 배가 고프나 부르나, 올챙이 배가 터지나 마나, 아내가 챙겨 주는 밥을 먹어야만 한다. 이래서야 체중 감량은 요원한 일이다.
전술했다시피 8월에 아내의 복숭아뼈가 부러졌다. 병원에서 에어부츠와 목발 한 쌍을 줬다. 의사는 아내에게 걸을 때 반드시 에어부츠와 목발을 사용하도록 명령하였으나 잘 때와 샤워할 때는 에어부츠를 제거하여도 된다고 말했다. 아내는 마치 로보트 발 같은 거추장스러운 에어부츠를 제거하고 침대에서 24시간 취침 모드에 들어갔다. 랩탑으로 넷플릭스를 보고, 탭과 킨들로 책을 읽고, 폰으로 쇼츠를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내가 아내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삼시세끼를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대령했다. 그리고 남은 찌끄러기를 후다닥 먹어 치웠다. 식사 시간은 채 1분도 안 걸렸을거다. 드디어 나의 체중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침대 생활을 한 6주간 2.5kg 정도 감량했다. 지금 상황에서 항상성을 유지중이다. 수치상으로 별거 아니지만 외형적으로는 꽤 유의미하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두꺼워졌고 오리 궁둥이가 다시 빵빵해지며 나의 리비도가 돌아왔다. 그리고 힘을 주면 배가 홀쭉해진다. 내 얼굴은 더 이상 호빵맨이 아니고 약간 갸름해졌다. 쓸데없는 지방을 버리고 귀중한 근육을 얻었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