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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상식을 MZ 만 좋아하나? 어린이부터 100 살 먹은 노인까지 다 좋아한다.
2030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윤석열 따위나 지지하는 일부 2030 남성그룹이 뻑하면 입에 달고 사는 그들만의 공정과 상식은 해석이 필요하다.
그대들은 부모세대(5060 세대)의 거대담론이나 민주화 서사를 위선으로 규정한다.
대신 시험성적과 정량적 지표만이 유일한 공정이라고 믿는 맹목적 능력주의에 침잠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연대를 나의 몫을 빼앗는 반칙으로 간주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져오게 만든 그대들만의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은 이해할만한 구석도 있다. 그대들은 과거 남성중심 사회의 기득권을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성평등 정책이나 사회안전망 확충의 비용은 자신들이 지불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이런 불만이 결핍된 자아를 생성했다.
결핍된 자아는 강한 리더십이나 극우적 사이다 발언에서 대리 만족을 찾는다. 자신들의 불만을 타자(여성, 외국인,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분출한다.
기성세대 우파 이데올로그들이 쏟아내는 유튜브와 커뮤니티는 그대들에게 복잡한 맥락을 생략한 채 확증편향만을 제공한다.
역사적 맥락이나 법치주의의 본질을 공부하기보다 10분짜리 요약영상이나 커뮤니티의 '밈(meme)'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논리적 사유능력은 퇴화하고, 자극적인 프레임에 반응하는 정서적 반사작용만 남는다.
그대들이 공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승자독식에 대한 승인에 불과하다.
헌법이 보호하는 가치는 승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패자조차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다. 헌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권력을 옹호하면서 원칙을 운운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는지도 모른 채 알고리즘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그대들은 그런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약자를 공격하면 자기가 강자가 된다고 믿는다.
강한 권력에 자기를 투사하면 자기가 스스로 강자집단에 속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소수자를 낙인찍는 행위는 자신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나약한 인간인가를 만방에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 초라한 자화상을 그대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대들은 윗세대가 이룩한 민주주의를 비웃는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역설적이게도 그대들이 지금 마음껏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자유의 토대 역할을 했다.
시스템을 파괴하는 권력을 옹호하며 그것이 새로운 세대의 참신한 감각이라고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진짜 강한 지성은 불편한 질문을 견디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민주주의의 피로함을 감내한다.
내란수준의 법치파괴를 결단으로 미화하는 그대들의 태도는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좌파 팬덤, 맹목적 추종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거 아나?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짓밟히는 것은 그대들처럼 어설픈 논리로 파시스트 권력의 곁불을 쬐던 평범한 개인들이었다.
그대들은 툭하면 기성세대에게 사고의 업데이트가 안 되어있다고 비난한다.
업데이트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성취 위에 더 정교한 가치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
헌법조문 하나 제대로 읽지 않고 역사적 맥락을 거세한 채 단편적인 정보로 무장한 그대들의 지식은 인공지능의 ‘빠른답변’ 모드로도 1 초 만에 무너질만큼 허접한 것이다.
그대들이 믿고 있는 그 확신이 그대들 것인 줄 알지만 사실은 조회수나 지지율 상승을 노리는 유튜버와 권력의 하수인들이 심어준 환상에 불과하다.
그대들은 시대의 주역이 아니다.
히틀러 유겐트 처럼 그저 소모되고 버려질 정치적 부속품에 불과하다.
그대들의 논리가 정말 헌법적 가치와 보편적 인권 안에서 작동하는지, 아니면 단지 개인적인 원한과 혐오를 배설하는 도구인지 냉정하게 검토해 보기 바란다.
나는 모든 세대를 문명사회의 동료시민(어처구니 없게도 한동훈이 이 좋은 단어를 차용했지만)으로 존중하며 대등한 상대로 대한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불량식품이나 진배 없는 1930 년대식 극우적 차별의식에 매몰되어 같잖게 세대가 특권인양 유세를 부리는 그대들에게는 너그럽게 대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대들도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기보다 그대들의 빈약한 사고력이 가져올 끔찍한 미래를 직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그대들은 ‘삼체’라는 소설을 읽어보았나?
아니, 소설은 그만두고 넷플릭스 영화 ‘삼체’는 본 적 있나?
영화 시작 부분에 마오쩌뚱의 문화대혁명의 참상이 나온다.
그대들의 빈약한 사고력이 가져올 미래 중에 중국 사례를 가져 온 이유는 그대들이 중국을 끔찍하게 혐오하기 때문에 그렇다.
여담이지만 내가 지난 9 월 한국에 갔을때 그대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호칭을 미치광이들처럼 외쳐대는 걸 직접 목격하고 아연실색했다.
그대들의 세대론적 혐오는 역설적이게도 그대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업주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보여준 광기와 닮아있다.
당시 마오권력은 “과거의 관습과 낡은 사고(사구, 四舊)를 타파하자"는 명분 아래 청년세대를 동원하여 기존의 지성체계와 권위를 무너뜨렸다. 자신들만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며,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스승과 부모세대를 수정주의자로 몰아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당시 마오권력의 선동행위는 당내 권력투쟁과 관련이 있지만 그대들에게는 매우 복잡한 이야기일테니까 그 부분은 생략하자.
어쨌든 그 문화혁명이라는 특대형 뻘짓으로 중국의 문명은 상당부분 파괴되었고 극단적인 진영논리만이 횡행했다.
청년들은 영웅이 된 기분을 만끽했지만, 결국 권력유지의 도구로 쓰인 뒤 가차없이 버려졌다.
사실 중국의 문화혁명이 없었다면, 다시말해 중국의 개혁개방이 20 년 먼저 시작되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의 성공신화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세대를 방패 삼아 보편적 가치(법치, 인권)를 부정하는 행위는 혁신이 아니라 야만으로의 회귀다.
그대들이 비웃는 낡은 가치들이 사실은 그대들을 보호하던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음을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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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릴까 말까 망설였었다.
이 글에서 ‘그대들’로 명명한 극우 이대남을 포함한 그 세대 전체가 답이 없는 직업위기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서있는 정치적 스탠스의 사상누각적 본질 따위를 논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능력주의의 토대가 지식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식이 권력’이었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산업혁명 혁명초기에 태어난 한 세대가 평생을 혼란과 빈곤 속에서 사회 시스템의 거름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듯, 재수없게도 AI문명의 대전환기에 인생의 서장을 열고 있는 그 세대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고작 이 따위 것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들이 진짜 침잠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들에 매진하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