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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0 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아온 네덜란드 출신의 40대 영주권자가 하루아침에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5 살 때 이민 와서 미국인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16 살 때 저지른 단 한 번의 마약관련 범죄 기록이 무려 29 년이 지난 이제와서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영주권 갱신까지 무사히 마쳤음에도, 잠시 해외에 나갔다 들어오는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그는 ‘추방 대상자’로 전락했고, 결국 가족을 남겨둔 채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낯선 네덜란드로 쫓겨났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미국 이민사회 전체에 아주 서늘하고도 명확한 경고를 던졌습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 영주권(Green Card)은 그 이름처럼 ‘영구적인 거주’를 보장하는 철갑 신분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 영주권은 사실상 언제든 사소한 문제에 의해서도 회수될 수 있는 장기체류 허가증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민국 직원의 재량, 수 십 년 전의, 그것도 미성년 시절의 범죄 기록, 혹은 급변하는 정치적 환경에 따라 미국 영주권자의 삶의 터전은 법원의 판결도 없이도 언제든 송두리째 뽑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이 증명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그가 왜 40 년이 지나도록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습니다.
Owen Ramsingh 은 5 세 때인 어머니와 함께 1986 년 네델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왔습니다.
만일 그의 어머니가 오웬이 만 18세가 되기 전에 시민권을 취득했다면 오웬도 자동으로 시민권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취득하지 못하면서 오웬은 성인이 될 때까지 영주권자 신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웬이 성인이 된 후 본인이 직접 시민권을 신청하려 했으나, 16세 때의 '가중중죄'(Aggravated Felony)기록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신청하려면 '도덕적 인격(Good Moral Character)'을 갖췄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가중중죄 기록은 시민권 신청 자격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요인이 됩니다.
오웬은 1997년 미성년자 시절 코캐인 소지혐의로 기소된 사건 때문에 시민권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웬이 추방되자 미국에 남은 그의 부인도 네덜란드로 이주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5 살 때 이주한 오웬은 모국어인 Dutch를 기초적인 단어조차 구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그는 100 퍼센트 미국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인 그의 부인은 당연히 네덜란드어를 못 합니다.
이 부부 사이에 사망한 딸이 하나 있는데, 오웬은 영구입국금지조치를 받았으므로 죽은 딸의 묘지조차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이 가족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입니다.
이 사건은 미국 영주권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오웬과 유사한 이유로 시민권을 못 받은 채 영주권자 신분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격조건을 충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을 의도적으로 안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경종을 울렸습니다.
시민권 취득자격이 안 되는 전자의 경우는 그렇다치고, 수 십 년을 미국 땅에서 숨 쉬고, 세금 내고, 자녀 낳아 기르면서, 사실상 인생의 뼈대를 미국에 묻었음에도 시민권 신청을 주저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생긴 셈 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흔한 소리 중 하나는 "내 출신국의 국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또는 “내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아서” 등등 일 것 입니다.
물론 태어난 고국에 대한 애정과 향수는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 활동하겠다는 명확한 계획이 있다면 그 선택은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영주권자로 남아있다가 귀국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경우가 여기에 속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고국으로 영구귀국할 생각이 있습니까?
미국에 뼈를 묻을 각오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돌아갈 생각이 없으면서 단지 심정적인 이유로 원래의 국적표시에 집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안일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오히려 스스로를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아닌, 언제든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는 영원한 ‘이방인’의 위치에 스스로를 가두는 꼴 이기도 합니다.
의무없이 권리만 행사하는 삶, 반대로 권리 없이 의무만 다하는 삶은 둘 다 위태롭습니다. 시민권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정책에 투표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뜻이며, 최악의 경우 국가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왕에 짐을 풀고 새로운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했다면, 자격 조건이 주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시민권을 획득하여 법적, 사회적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것이 정상적 선택입니다.
고국의 여권을 쥐고 있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시민권을 취득한다고 해서 자신의 혈통과 뿌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의 삶은 미국에 100% 소속되어 있으면서 서류상의 국적만 과거에 묶여 있는 상태야말로, 이쪽에도 저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죽도 밥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을 낳을 뿐 입니다.
딛고 서 있는 그 땅에서 완벽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고, 당신과 가족의 미래를 예측 불가능한 불안으로부터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그 나라의 온전한 ‘시민’이 되는 것 뿐 입니다.
오웬 람싱 사건이 미국 이민사회에 명확하게 던진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