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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홍수환의 4전5기
작성자 philby     게시물번호 5937 작성일 2012-11-25 00:19 조회수 2631
-퍼온 글 입니다- 
11월 26일은 홍수환이 파나마에서 열린 WBA Jr.페더급 세계챔피언 결정전에서 홈링의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5기 기적의 승부를 연출한 지 3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 유일의 동양챔피언(OPBF) 김민욱의 2차 방어전이 26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4전5기 35주년 행사와 더불어 열린다. 

한 라운드에서만 4번 다운을 당하고서도 바로 다음 라운드에역전 KO승을 거둔 사례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명장면이다. 팬들은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홍수환을 아끼고 자랑스러워 한다. 

온 국민이 힘겹고 초라했던 70년대, 잘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만이 미덕이고 전부였고, 유신이란 철권통치 아래 유행가도 영화도 자유롭지 못했다. 프로야구도 프로축구도 없었다. 그저 TV 연속극에 울고 웃고 가슴을 쳤고,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스포츠 중계를 통해 승전보가 전해져 올 때만이 환호하고 가슴을 폈던 순간이었다. 그 시절 남의 나라에서 계속 쓰러지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챔피언 먹은 홍수환은 그야말로 국민 영웅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국민들은 2차 방어로 단명한 홍수환을 그리 고운 시선으로 봐줄 아량이 없었다. 홍수환은 은퇴 후 알래스카로 이민을 떠나 택시 운전, 마약 배달 누명, 미국 교도소에서의 무죄 투쟁, 접시 닦기, 신발 노점상, 귀국 후엔 해결사 누명, 3년간의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인생의 고비마다 '4전5기' 투혼으로 극복해냈다. 

지금은 복싱선수 출신으로 기업과 관공서에서 모시는 인기 강사로 활동, 복싱선수를 넘어 스포츠 스타 출신의 성공적인 롤 모델이 되었다. 얼마 전 은퇴를 하고 야구해설과 강의 활동을 시작한 양준혁은 '홍수환 선배님이 운동하는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길을 열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며 헌사를 보내기도 했다. 

기나긴 침체에 빠진 한국프로복싱의 부활을 이끌 적임자로 선수 출신으론 처음으로 후배들에 의해 반강제적이다시피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으로 추대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홍수환의 위대함은 은퇴 후의 성공적인 삶에 앞서 그가 보여준 경기력이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빛을 더한다는데 있다. 

197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비행기만 6번을 갈아타고 날아간 적지에서 주눅들지 않고 홈링의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에게 무려 4번이나 다운을 뺐으며 완승을 거두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엄마, 나 챔피온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한국복싱은 물론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원정경기에서 개인타이틀을 획득하는 역사를 썼다. 

그리고, 3년 뒤인 1977년 카라스키야를 이기면서 한국 복싱 최초의 2체급 세계챔피언이자 신설된 WBA Jr.페더급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던 것이다. 홍수환의 등장과 함께 한국프로복싱은 그야말로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았다. 김성준, 김태식, 김철호, 장정구, 유명우가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유명우의 17차 연속방어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라이트 플라이급의 세계기록이다. 이렇게 세계를 주름잡던 한국프로복싱이 끝모를 침체에 빠져 있다. 부활의 특명을 받아 책임을 다하고 있는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을 만나 보았다. 

"박정희 대신 언급한 후원회장은 바로 해임...그 아들이 장하준 교수" 

- 축하 드립니다. 감회가 어떠십니까? "두 말할 나위 없이 팬들에게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가 기적처럼 승리한 원동력도 성원해준 팬들 덕분이기에,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하고 성원해주시는 팬들에게 오늘 같은 날을 통해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 잠시 그 당시로 돌아가 보죠. 파나마는 처음으로 방문한 곳인데, 경기 당일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파나마는 로베르토 두란, 호르헤 루한 등 이미 3명의 챔피언에 이어, 카라스키야까지 무려 4명의 챔피언을 이미 보유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기자회견이든 경기전이든 저를 쳐다도 안 보고 무시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실내경기장엔 총소리가 경기 전부터 울렸습니다. 파나마는 당시 총기소지가 자유였기 때문에 박병학 아나운서가 경기장에 총소리가 울리고 있다고 몇 번이나 멘트를 했습니다. 

중계를 하기도 무서웠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분위기는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양반 삿갓을 쓰고 링 위에 올랐습니다.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어서 파나마 대사관에 긴 담뱃대와 김삿갓이 쓰는 망태기 같은 걸 부탁했더니 양반 삿갓을 구해줬거든요. 파나마 관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아나운서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 2라운드에만 4번 다운 당할 때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제 정신이 아니었죠. 자모라에게 연패하고 3년간 절치부심 연습해온 게 억울해서라도 이대로 정신줄 놓고 쓰러질 수 없다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절대 제정신으로는 못 일어나는 차원이죠. KO로 질 때는 대략 이런 경웁니다. 의식이 없어지든지, 의식은 있지만 더 이상 싸울 의욕이 없어 일부러 안 일어서는 거죠."

 -3라운드 상황은 어땠습니까? 

"파나마 관중은 모두 서서 총을 쏘며 축제 분위기로 3회전을 맞이했습니다. 트레이너인 조순현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환아. 1회전만 더 뛰고 그만 두자.' 나는 한 마디 대답할 말할 기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기장면을 보니 제가 카라스키야보다 더 먼저 뛰어나가더군요. 저는 말 그대로 장렬한 전사를 원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정신은 멀쩡했거든요. 

이기려는 심정은 아니었지만 정신이 깨어 있는 한 포기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게 승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카라스키야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KO직전까지 갔던 홍수환이 내 펀치력을 의식해서 뒤로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계속 공격을 해와서 당황했다. 나는 모든 경기에서 초반에 KO로 이겼는데 계속 버티니 작전에 혼선이 오고 말았다.'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의 동양방송국(TBC)까지 카퍼레이드를 했습니다. 아놀드 테일러를 이겼을 때에 이어 두 번째였죠. 카라스키야전 재방송만 스물 일곱 번 했답니다. 당시엔 그 방법 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팬들의 반응과는 달리 청와대에도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죠" 

- 74년 첫번째 타이틀 획득 때에는 청와대에 초청받아 대통령에게 금일봉도 받고 하셨잖아요. 4전5기로 타이틀 따온 건 그보다 더 축하할 만했는데 무슨 연유가 있나요? 

"김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수도경비사에서 보내준 지프차가 나왔더군요. 첫 번째 챔피언이 되었을 때는 청와대에서 고급 차를 보내주었는데. 왜 4전5기로 두 번째 챔피언이 되었을 땐 군용 지프차로 끝났을까요? 그 이유는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첫 마디로 '이 모든 영광을 박정희 대통령께..' 라는 말 대신 후원회장님과 팬들에게 그 공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인터뷰 내내 박정희 대통령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그 부분을 섭섭해 했다고 합니다. 전 이기긴 했어도 4번을 쓰러졌던 터라 제 정신이 아니어서 본심을 말 한 거죠. 바로 보복이 돌아왔습니다. 내가 인터뷰에서 가장 고마워 했던 분은 당시 국세청 차장으로 있던 장재식씨였거든요. 

이 분은 나에게 고기를 사줘 가며 카라스키야와 싸우면 반드시 옆구리를 때리라고 충고했었습니다. 장재식 차장은 인터뷰 직후 바로 해임됐습니다. 제가 귀국하기도 전에 이미 상황이 끝난 거죠. 

물론 박 대통령이 직접 지시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측근들이 알아서 잘랐겠죠. 당시 군부 독재 시절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그 분의 아들이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장하준씨입니다. 복싱 선수를 후원하면 대대로 복이 온답니다. 복싱이 복이 ING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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