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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호 목사의 주일 비판에 답함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6622 작성일 2013-01-15 20:25 조회수 3272
한성호 목사의 글과 관련해서 한마디 하고 갑니다. 이분은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은 콘스탄틴 이후라고 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저는 종교운동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운동이나 첫 제자들의 종교운동은 기존의 유대교에서 독립적인 운동을 전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유대교 내의 종교 개혁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초기 종교운동은 유대교 내의 종파운동이었습니다. 그러한 내용이 신약성서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아래에서 제가 지적했듯이 바울의 선교도 일차 선교대상은 다른 이방인들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도시에 흩어진 유대인 이주자들의 회당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사도행전의 언급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구요. 

그리고 2세기에 접어들면 확연히 유대교와 다른 기독교운동으로 초기 예수운동이 발전되었고 이들 집단이 커지면서 자기들의 종교를 설명하려는 변증학 (apologetics)이 나온 것이죠. 안식일 교회에서 안식일에 대한 설명이 두드러진 것도 하도 기성 교회들이 이단이라고 하니가 그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교회로 넘어간 한성호 목사도 그런 경우이기도 하구요. 

그 변증가 (apologist) 중에 유명한 저스틴 마터 (Justin Martyr (AD 100–ca.165)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연표를 보면 알듯이, 저스틴 마터는 상당히 초기의 교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스틴은 기독교이라는 이유 때문에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아마 165년에 로마 제국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변호하는 유명한 글들을 썼는데 하나가 부활에 대하여(On The Resurrection)이고 다른 하나가 변호론/호교론(Apology)입니다. 이 호교론은 두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 첫부분에 다음과 글을 그는 썼습니다. 

CHAPTER LXVII -- WEEKLY WORSHIP OF THE CHRIS- TIANS.

And we afterwards continually remind each other of these things. And the wealthy among us help the needy; and we always keep together; and for all things wherewith we are supplied, we bless the Maker of all through His Son Jesus Christ, and through the Holy Ghost. And on the day called Sunday, all who live in cities or in the country gather together to one place, and the memoirs of the apostles or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are read, as long as time permits; then, when the reader has ceased, the president verbally instructs, and exhorts to the imitation of these good things. Then we all rise together and pray, and, as we before said, when our prayer is ended, bread and wine and water are brought, and the president in like manner offers prayers and thanksgivings, according to his ability, and the people assent, saying Amen; and there is a distribution to each, and a participation of that over which thanks have been given, and to those who are absent a portion is sent by the deacons. And they who are well to do, and willing, give what each thinks fit; and what is collected is deposited with the president, who succours the orphans and widows and those who, through sickness or any other cause, are in want, and those who are in bonds and the strangers sojourning among us, and in a word takes care of all who are in need. But Sunday is the day on which we all hold our common assembly, because it is the first day on which God, having wrought a change in the darkness and matter, made the world; and Jesus Christ our Saviour on the same day rose from the dead. For He was crucified on the day before that of Saturn (Saturday); and on the day after that of Saturn, which is the day of the Sun, having appeared to His apostles and disciples, He taught them these things, which we have submitted to you also for your consideration.

출처: http://www.earlychristianwritings.com/text/justinmartyr-firstapology.html

위의 글을 보면, 저스틴은 그 어느 곳에서도 안식일을 제 7일로 지키자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로마에서 종교로 공인받기 훨씬 이전인 박해받는 시절에 형성된 것입니다. 사실 예수도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였고, 바울 역시 유대적인 의례를 멀리하려고 노력했고, 이런 전통속에서 예수의 부활과 성찬에 대한 관심들이 저는 안식일보다 더 강하게 전승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초기 교회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구분하는 정기적인 만남을 필요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주일개념입니다. 그런데 안식일교회에서 자신을 상당히 갖는 부분은 신약성서에 주일 성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안식일을 특정해서 열심히 지키자는 것도 없구요. 

그러면 우리는 주일성수, 안식일의 전통은  초기 교회에서 찾아봐야 하는데, 그 손을 주일성수에 더 들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가지 제가 아래서 썼지만 일요일 성수와 상관없이 안식일의 전통의 맥을 잇고자 한 것은 바로 가톨릭교였습니다. 이런 가톨릭적 전통을 엄청 싫어하는 사람들이 종교개혁자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안식일주의가 개신교사이에 붐을 형성한 것은 가톨릭 전통이 남아있던 영국에서였지 대륙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안식일주의의 맥을 이은 가톨릭의 역할을 안식일 교회에서는 칭찬해 줘야 합니다. 

콘슨탄틴 때 일요일에 아무일도 하지 말라는 칙령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붙들면 되지 않고 종교개혁과 퓨리탄적 전통에서의 안식일주의의 발흥을 안식일 교회에서는 꼭 되돌아봐야 합니다. 

* 운영팀.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3-09-17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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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3-01-15 21:5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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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고마워요.

한가지 만 더 지적하죠. 토요일 안식일이 맞다면 안식일주의가 영국에서 나와서 미국 안식일 교회에서 부흥했으니까 약 1600년 이상 신은 잠자고 계신 것이죠. 왜냐하면 안식일 교회가 진리라면요. 영국에서 토요일 안식일 교회를 최초로 분명히 한 사람은 John Traske(1585-1636)로서, 그는 Jacobean Judaizer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추종자 일부가 암스테르담의 유대교로 개종한 것같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와 연속성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연속성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안식일 교회가 구약적(유대교적)이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도 통용되는 것이죠. 이정도로만 하죠. 앞으로 나오시려면 출전을 갖고 나오시면 좋겠군요. 그냥 막연히 콘스탄틴 언급하지 마시구요. 제가 위에 인용한 저스틴 마터의 글을 자세히 음미해 보세요.

ljw3=lee  |  2013-01-16 23:5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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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다가 관련된 생각을 잠시 남기려 합니다.
Justin Martyr이 초대교부중에서 기독교의 가치를 이방에 전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록이 성경의 기록을 우선할 수 없고, 그의 사상도 불완전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평가합니다.
그는 이방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자랐고, stoic teacher 밑에서 세계관을 물려받았으며, Aristotle 사상의 추종자였습니다. 그는 매우 강력하게 Platonism 사상을 믿고 그 인식속에서 기독교 신관과 Logos 그리고 Christianity를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Trinity 보다는 Dualism을 주장하였고 Platonic 견해에서 비롯된 신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헬레니즘화된 세계에 기독교를 그들의 인식체계와 용어를 사용해서 소개하고 변증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그의 기록이 초기 기독교 역사서인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제자들이 회당과 아울러 이방인 도시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안식일에 이방인들과 함께 예배했던 기록을 앞서거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4절이하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안식일에 거의 온 성이 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46절에는 유대인이 거절하므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였고, 48절에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라고 기록된 사실을 볼때 바울이 단지 유대인들만을 위해 안식일을 접촉점으로 준수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 사도행전 16장 13절에서는 빌립보에서 안식일에는 유대인의 회당이아니라, 기도처를 찾다가 이방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이방인 여인인 루디아이며 그와 온 집식구들이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사건이후, 복음은 이방인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초기 바울의 행적이 헬라파 유대인을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안식일 준수와 가르침이 단지 기독교를 유대사회에 변증하거나 연속성속에서 취한 그의 전통적인 처신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안식일 준수는 그의 삶의 신조였고 개인적으로 규례화 된것이었습니다. (행 17장 2절, 18장 4절)
더우기, 바울은 유대인과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할례와 결례등을 강력히 반대하며 자신의 신앙 신조를 주장했습니다. 이런 바울이 안식일을 단지 유대인의 연속성 또는 유대인 선교를 위한 접촉점으로 삼았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글이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안식일을 의도를 가지고 변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과 안식일의 본래 의미와 뜻은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성을 정확히 변치않고 천명하고 신앙으로 고백하는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성경절을 통해 안식일은 나의 날(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 20:10, 사 58:13, 마 12:8)
단순히 인간의 편리나 이해를 위해 변경되거나 대치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논쟁이나 다툼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3-01-17 04:4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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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w3=lee님, 안녕하세요. 저는 님이 어떤 교파적 배경을 갖고 계시는지 관심은 없지만 제 글에 문제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말씀을 하기 전에 한성호 목사의 글을 인용하므로써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성호 목사는 //드디어 자칭 기독교인으로 위장개종을 선언한 콘스탄틴 로마 황제의 토요일예배 말살계획이 주후 321년 봄에 성공하게 되는데, 이른바 일요일 공휴일화에 따른 강제 휴업령까지 선포된 기독교 사상 최초의 계명변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그리고 4년후 태양의날인 일요일을 부활절로 성수하라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거쳐 364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마침내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성별하는 악법이 제정됐으니 이것이 오늘날 “주일대예배” 의 뿌리가 된 셈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위의 글에서 한성호 목사는 “콘스탄틴 로마 황제의 토요일예배 말살계획이 주후 321년 봄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지난 모든 세기의 일요일 예배를 “변개”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 번 그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발상이며, 오히려 그 이전에 이미 주일성수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성서 어디에도 명확하게 안식일 성수나 주일예배에 대한 분명한 내용이 없다고 제가 말씀드렸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식일 단어 역시 기독교인이 예배를 위한 날로 드러난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상 가장 최초로 가장 중요한 저스틴 마터의 원자료를 인용해 보여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님께서는 저스틴이 스토익 영향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이 추종자였다, 이원론자였다, 플라탄주의자 등,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신학적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저스틴은 기독교 신학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시절에 당시의 학문적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고 기독교를 비기독교인들에게 소개학 변증한 가장 위대한 변증가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이교론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상적/지적 토양을 제대로 이해한 최초의 조직적인 호교론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처럼 현대성서학적 연구물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한체 성경만이 판단기준이다고 해서 성경을 자기 주장을 위한 proof texting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합리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고 기독교 변호의 근거를 구약성서에서 많이 찾아낼 수 줄 알았으며, 예수의 메시야직과 신성을 끌어낼 줄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철학의 근간인 지혜의 애호자(lover of wisdom)라는 말보다는 진리의 애호자 (lover of truth)말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안식일 교회에서 저스틴에게 감사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재림 (second coming)을 주장한 최초의 신학자였으니까요. 또한 그는 “Christian”이란 말을 당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위의 인용구처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변증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님이 인용한 사도행전 어느 구석에서도 안식일을 기독교의 중요한 날로 지켰다는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2세기 초에서 중순에 이르는 시기의 저스틴 마터가 경험하고 관찰한 기독교인들의 생활습성이 초기 기독교의 생활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 선교보다는 주로 전통적인 유대율법을 준수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사회학적 연구서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Rodney Stark, The Triumph of Christianity (2011 ). P. 75-77. 스탁은 누가를 제외하고는 바울과 함께 수행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다 (Except for Luke, of course, most of his entourage was Jewish)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유대인들에게 얻어맞은 것도 바로 주로 유대인 중심으로 선교를 한 탓이었고요. 바울의 신학과 선교는 점점 더 유대교로부터 멀어져 기독교의 정체성으로 넘어갔다고 보아야 합니다 (True enough, Paul’s rejection of the Law created an even more profound gap between Christianity and orthodox Judaism). 그러면 왜 바울이 유대 이주자들에게 선교의 촛점을 맟추었을까요? 선교의 초창기에 그가 가장 근접하기 쉽고 또 개종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종교이론에서 기독교인이 몰몬교인 될 확률이 불교인이 몰몬교인이 될 활률이 높다고 합니다. 바울도 비슷한 종교적 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예수사상을 전파하므로써 많은 유대인 개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님께서 인용한 사도행전 18장 4절을 죽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바울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다인과 그리스인들과 함께 토론을 벌이고 그들을 설복시키려고 애썼다. 실라와 디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후로 바울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면서 오로지 전도에만 힘썼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대들며 욕설을 퍼붓자 그는 옷의 먼지를 털면서 "잘못의 책임은 당신들이 지시오. 나에게는 잘못이 없소. 이제 나는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다. 이 사람은 하님을 공경하는 이방인으로서 바로 회당 옆에 살고 있었다.// (행 18:4-7). 공동번역

위의 4절에 “안식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Every Sabbath he reasoned in the synagogue, trying to persuade Jews and Greeks.” NIV
여기서 보면 그러면 안식일 날 희랍인들도 회당에 나와 안식일을 지킵니까? 또한가지 바울이 이방인한테로 간다고 하면서 어디까지 갔는지 아십니까? 회당 바로 옆에 사는 이방인이었습니다. Then Paul left the synagogue and went next door to the house of Titius Justus, a worshiper of God. 사도행전에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한다고 하지만 별로 성공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자, 그럼, 안식일 교회에서 제7안식일이 구약성서의 전통의 맥을 제대로 잇는다 칩시다. 주일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초기 교회의 전통을 잇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스틴 마터가 제대로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죠.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하우돈  |  2013-01-18 11:5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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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아프리카님과 ljw3=lee님의 글을보면서 두분이 신학에 대한 조해가 깊으신것 같습니다.저는 두분의 글을 보면서 많은것을 배우고 성경절을 찾아보곤 합니다.성경절을 이용한 말씀 너무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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