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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싸르니아는 여기에 줄선다 !!
싸르니아는 외국인이다. 대한민국 국적법상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인천공항 이미그레이션에 도착하면 ‘외국여권’ 이라고 써 있는 본홍색 표지판 앞에 줄을 서야 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여권’ 표지판 앞 줄은 길지도 않고 쭉쭉 빠져나가는데 ‘외국여권 줄은 길기도 하거니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입국심사대 서서 시간을 끌며 뒷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다가 뭐가 잘못됐는지 옆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사무실로 보내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동남아 또는 서남아 출신 필이 나는 사람들이다.
작년 가을 어느 날 아침, 드디어 싸르니아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무려 20 여 분을 기다린 끝에 입국심사대에 가게되었는데, 정작 내가 입국심사를 받는데 소요된 시간은 불과 20 초, 20 초 때문에 20 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니 허망해 진 나머지 공연히 열불이 났다. 게다가 이 해 부터는 지문날인까지 해야했다. 입국심사대 주변에서 똥폼을 잡으며 왔다갔다하는 간부인듯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해외동포들이 꼭 이 줄에 서서 입국심사를 받아야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약간은 시비조일 수 있는 이 질문에 그 간부 직원은 의외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그런 항의가 많다는 것을 고백하기도 했다.
드디어 올해부터 확 바뀌었다.
초록색 ‘대한민국여권’ 표지판에 재외동포 포함 (OVERSEAS KOREAN) 이라는 글자가 새로 추가됐다. 재외동포비자와 방문비자를 소유한 외국국적 해외동포들은 이제 시간 오래 걸리는 외국여권 앞에 줄 설 필요가 없다. '재외동포비자와 방문비자를 소유한 외국국적 해외동포'라는 제한규졍이 있긴 하지만 방문비자 자체가 필요없는 미주여권소지 해외동포들은 이 제한규정에 구애받을 필요없이 대한민국여권 입국심사카운터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입국절차에 있어서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좋아진 것일까?
좋아진 것 맞다. 그런데 여기에는 좀 찝찝한 문제가 남아 있다. 이 개선된 입국절차에 한국거주 외국인들은 여전히 제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니니 오지랖 떨지말고 모른 척 하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뭔가 앞뒤가 바뀐듯한 입국심사 혜택에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 년 전 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싸르니아는 이런 의견을 내 놓았었다.
즉, 입국심사 분리를 국적별로 나누는 대신 <다문화 국가>답게 거주자 (Residents) 와 방문자 (Visitors)로 나누는 건 어떨까. 그러면 한 가족이, 예를 들어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남편과 베트남 여권을 가진 부인이 뿔뿔이 헤어져 따로 줄을 서는 일도 없을 것 아닌가,,, 하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국적별 분리 입국심사>를 폐지한 나라로 캐나다 사례를 들었었다. 캐나다는 입국심사대를 Canadians (자국 여권소지자) 와 Foreigners (외국 여권 소지자) 로 나누는 게 아니라 Residents 와 Visitors로 나눈다.물론 자국 여권소지자는 본인 선택에 따라 따로 마련된 스캐너를 통해 스스로 여권을 스캔만 하고 입국할 수도 있지만,국적이 다른 가족이나 일행이 있을 경우 줄을 따로 설 필요는 없다.
싸르니아가 이 말을 하자마자 어떤 분이 나타나서‘대한민국이 언제부터 다문화국가냐’ 고 항의하다 사라진 일도 있지만, 대한민국은 누가뭐래도 다문화국가고 앞으로 점점 더 심화된 다문화국가가 될 것이다. 다문화는 좋다-나쁘다하는 가치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이자 존재 그 자체다.
어쨌든 입국심사제도는 제한적이나마 개선됐다. 이 개선된 입국심사제도의 최대 수혜자는 미주국적 해외동포들 뿐 인 것 같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개선되었을까?
싸르니아가 작년에 항의했기 때문 아닐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작 싸르니아의 생각은 좀 다르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올 봄 재외동포단체들이 방미사절단과 새누리당에 차례로 압력을 넣은 모양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외동포단체란 미주동포단체를 말한다.홰외동포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자마자 불과 수주일만인 지난 6 월부터 세 제도가 시행됐다.박근혜 대통령 방미 직후의 일이다.
이런 추정도 가능하다.
대한민국 파워엘리트 집단 자녀들 중 상당수가 미국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그 자녀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입국심사때 겪은 불편에 대해 엄마아빠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을 것이고 그 엄마아빠들은 자녀들이 해외여행 때 마다 겪는 불편에 마음이 아프던 차에, 미주동포단체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자마자 얼씨구나 하고 법무부에 “당장 바꿔”하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바뀐 새 입국심사제도가 '윤선생 성추행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일종의 ‘보상’ 이라는 추정 역시 가능하다.
물론 싸르니아는 이런 추정은 하지 않는다. 싸르니아는 대한민국이 특권이나 압력보다 보편적 가치에 의해 의사결정이 좌우되는 나라라고 귿게 믿고 있다. (물론 내 개인적인 믿음이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전혀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위야 어찌됐건
이제부터 싸르니아는 더 이상 외국여권 줄에 서서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건 분명히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립없다.
다만,,,,,, 멀쩡하게 대한민국의 합법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외국인 거주자들도 내국인과 동등한 입국심사자격을 부여받기를 바란다.
차라리 엄연한 외국거주 외국인인 싸르니아보다는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을 더 갖추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입장을 한 번 바꾸어 생각해 보자.
만일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에 동화되고자 노력하며 한국에서 살고 한국에서 일하면서 세금도 내고, 종래에는 한국 시민이 되는 것을 소망하는 어느 베트남 여성이, 한 때 한국인이었지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국적을 취득해서 그 외국에서 거주하며 한국에는 이따금 놀러나 오는 사람이 자기는 아직 누리지 못하는 제도적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새 입국심사제도,, 당근 환영이지만 혜택을 받아야 할 대상을 선정하는 순서가 바뀐 것 같다.
이런 글쓰면 또 맘이 따뜻한 척 한다고 할까봐 안 쓰려고 했는데,
맘 따뜻한 척 하는 게 아니라, 지난 봄 발생한 이른바 '방미사절단 소동' 직후 갑자기 바뀐 새 입국심사제도,,, 좋기는 좋은데 아무래도 이상하고 어색해서 이야기를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