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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금강경을 소리내 읽고만 있는가.
작성자 sattva     게시물번호 6885 작성일 2013-12-22 21:27 조회수 2336
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그저 금강경을 소리내 읽고만 있는가 

 언어의 확장이 필요하다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찰의 불교대학 강의에서 오온과 십이처를 설명하기 전에 반드시 다음과 같이 물어 본다.

 "여러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있는지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십시오." 
대중은 잠시 어리둥절해 한다. 그저 눈이 대상을 보고 귀가 소리를 듣고 코로 향기를 맡고... 

그래서 감수작용과 표상, 의지의 형성과 작용, 인식이 생긴다고 하면 될 것을, 그것이 십이처이고 오온이라고 하면 될 것을 뭐 그리 뻔한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끈질기게 묻는다. 대중의 답은 대략 이렇다. 

"대상을 보고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을 보고 자연을 보고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듣습니다. 가족을 보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건물을 보고 자동차 소리를 듣고 삽니다." 

계속 우리가 매일 평생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살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궁해도 구체적이고 다양한 답을 하지 못한다. 

실로 놀랍다. 늘 보고 듣는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몇 개의 단어만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별다른 생각 없이 세상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나눔 운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차를 마시다가 나는 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들은 잠시 생각하더니만 이렇게 말했다. 
"우선 우리는 늘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많은 사연을 듣게 되지요. 아이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부모 아이, 조부모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청소년들의 하소연을 듣습니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에 짓눌려 늘 시험 성적 앞에서 긴장과 강박으로 웃음을 잃은 학생들의 얼굴을 봅니다. 
대학생들은 또 어떻습니까? 
자신의 등록금을 벌기 위하여 힘들게 노동하는 부모에게 미안해 하는 대학생, 진리 탐구와 우정을 나누지 못하고 오로지 취업에만 몰두하며 경쟁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경주마로 길러지는 대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묻는다. "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요?" "많은 생각이 들지요. 그들의 얼굴과 처지를 보고 듣고 생각하면 아프고 슬프고 우울하고, 심지어는 분노가 치밀기도 하지요. 

그리고 도와 주고 싶다는 생각, 뭔가 작은 힘이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게 되지요. 왜 이렇게 우리 이웃들이 어렵고 힘들게 사는가,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력 때문인가, 아니면 정치와 경제, 교육제도의 전반적인 모순 때문인가를. 

정확한 진단과 함께 적절한 대안을 찾고 실천 합니다." 

 나는 그날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문득 한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불교 교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지만 오히려 이들이 오온과 십이처와 사성제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커피를 더 마셔 가면서 설명했다. 우리의 오감과 생각의 작용이 그에 상응하는 대상을 마주하고 부딪치면서(십이처) 갖가지 형태의 느낌, 관념, 의지, 인식을 만들어낸다(오온).

 이러한 과정이 곧 우리의 삶이고 세계라고 한다. 일련의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갖가지 괴로움과 불안, 불만족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현실은 어떤 특정한 주재신이나 숙명적인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에 맞는 원인이 있다.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러 조건의 결합으로 고통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은 영원한 모습이 아니다. 

조건으로 말미암아 발생했기 때문에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어 소멸할 수 있다. 

그리하면 우리는 자유와 안락의 삶을 살 수 있고 그러한 세계를 불국정토라고 한다(사성제). 

이렇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교리의 대강을 설명했더니 그들은 의외로 빨리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네요."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날 청년의 이 한마디는 바로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절실하게,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는 핵심 열쇠였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부처님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괴로움을 보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묻고 또 물었고, 길을 찾고, 길을 찾았고, 길을 안내했고, 마침내 그 길 위에서 중생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환희롭지 않는가. 

그렇다. 부처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유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언어로 길을 안내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지금 여기이다. 부처님은 당시의 지식인이 사용하던 개념과 대중이 사용하던 언어를 빌어 법을 설명했다. 

그래서 다른 사상과 대화하고 설득했으며, 대중은 친근한 가르침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늘 지금 여기의 언어로, 지금의 문법으로 사유할 때 보다 진정으로 구체적인 삶의 해결로 다가온다.

 어떤 사물과 사건을 여러 시선으로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언어로 설명할 때 우리는 그 지점에서 진정성 있는 이해와 공감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폭 넓고, 다양하고, 적절한 언어의 사용은 바로 자신의 삶과 대중을 향한 관심과 사랑에서 나올 수 있다. 

시선과 관심이 갇혀 있는데 어떻게 언어가 확장 되겠는가. 위에서 나눔 운동을 하는 청년들에게서 보듯이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우리의 시선을 확장 시키고, 확장된 시선은 다양한 사례와 설명을 낳는다. 

우리가 언어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관심과 언어는 늘 한 몸이다. 관심은 자비이고 언어는 지혜와 방편이다. 시대와 현장의 시선과 언어로 사유하고 소통할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생생하게 우리 곁에 있다.

 다시, 시대와 현장에 맞는 언어 사용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하나의 예로 들어 보자. 

먼저, 용어의 다양한 사용과 재해석이다. 여기 '근기'라는 불교 용어가 있다. 근기라는 말을 대중에게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질과 능력'이라든가, '눈높이'라든가 하는 말로 근기를 대신하여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여덟 가지 고통 중에서 구하고자 하지만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있다. 

이를 노동자들게는 이렇게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과 생산, 분배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 불평등과 소외 등의 고통이 구부득고에 해당된다고. 

사랑하는 것들과 이별하고 원수와 만나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는 또 어떻게 폭넓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바로 다양한 사회의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긴장과 억압, 분쟁과 투쟁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이다. 

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발심'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이해하자고 하면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그냥 마음을 낸다라고 하면 발심의 의미에 적합할까. 아니면 삶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이라고 하면 어떠할까. 

즉 문제의식과 실천 의지가 발심의 정확한 의미가 아닌가. 다음은 서술 형식의 변화를 통해서 시대와 현장에 맞는 접근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가 매우 존중하는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한 구절을 해석해 보자.

 보통 이렇게 설명한다. "응당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물론 틀린 해석은 아니다. 

그러나 보자. 이렇게만 설명할 때 대중이 정확하게, 쉽게, 생생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의 지침으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내가 숱하게 재가불자들에게 이 경구의 의미를 물었지만 자신의 삶터에서의 문제 해결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 이 경구를 이렇게 변화를 줄 수는 없을까. "그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로 말이다. 이와 같이 정의하고 다음과 같이 삶의 지침으로 살아 보자. 돈으로부터 자유, 명망으로부터 자유, 몸으로부터 자유, 인정 받고 싶은 욕구로부터 자유, 비교로부터 자유, 명품과 소비로부터 자유, 열등감으로부터 자유 등등. 또 삶에서는 이렇게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권력자는, 내가 세상을 마음대로 주도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기, 그리고 겸 허한 자세로 봉사 하기. 학자는, 내가 남보다 월등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롭기, 그리고 지식인의 사회적 사명에 전념하기. 

농민은,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에서 자유롭기, 그리고 자연 속에서 몸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일이 숭고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기. 인권 환경 빈민 운동가들은, 나는 앞서가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세상을 돕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롭기, 그리고 즐겁게 일하기. 오늘 우리의 언어와 서술 형식은 너무도 굳어 있고 표정이 없고 옛 것과 불교의 울타리에 갇혀 있고 활기가 없다. 

이제는 언어와 서술 형식도, 사유의 방법도, 교리의 해석도, 실천의 방법도 온고지신하고 법고창신해야 한다. 

언어는 끝없이 변화와 창조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와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언어, 진화하는 언어와 함께 우리의 사유와 실천도 진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금강경을 읽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색성향미촉법에 주하지 말고 보시하라(不住色聲香味觸法布施)"고 소리로 독송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부자와 빈자, 나와 가까운 자와 멀리 있는 자, 혈연과 지연, 이념과 종교에 갇히지 않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나눌 것을 염원하면서 마음으로 독송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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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oramas  |  2013-12-2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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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한표 찍고 갑니다.

baduk2  |  2013-12-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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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스님의 금강경독송도 한번 들어보세요,깊으신뜻은 헤아리지못하나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도울선생의 금강경 강의가 이글을 읽으니 아주쉽게 다가오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다음글 살짝 건의) 답글이 달린 원글은 내용만 지워주실 것을 건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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