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랑한다 / 홍수희 그대가 절벽이라 해도 좋겠네 그대가 온기라고는 지니지 못한 싸늘한 빙벽(氷壁)이라 해도 문제없겠네 그래 그래, 그대와 내가 그냥 그대로 쓸쓸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 해도 관여치 않아 문제는 메아리를 믿지 않는 세상의 마음 외로운 봉우리로 우뚝 선 그대여, 마주 선 봉우리에 대고 소리쳐 봐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부딪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까지 그 메아리 돌고 돌아 세상이 온통,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공명(共鳴)할 때까지 슬퍼하지 마 관계와 관계에 부딪혔을 때 부딪치면 속삭여 봐 내가 너를 사랑한다 언젠가 메아리는 돌아올 테니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한국시>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부산 가톨릭 문인협회, 부산 문인협회, 부산 시인협회, 부산 여성문학인회 회원 詩集으로, '달력 속의 노을'(빛남출판사) '아직 슬픈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도서출판 띠앗, 2003년 11월)等 제2회 <이육사 문학상> 본상 受賞 ---------------------------------- <감상 & 생각>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사랑의 메아리에 너와 나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걸 맡겨 버린 듯 하다 사랑이 뒷걸음치는, 이 차가운 세상의 한 끝에서 싸늘한 빙벽(氷壁)을 마주 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견고한 단절(斷絶)을 뚫고 가슴에 와 부딪는 따스한 영혼의 빛 따라 외치는, 저 사랑의 음절(音節)이 차라리 비애롭다 그 한 음절 한 음절...... 세상의 어둠을 잘라내는 사랑의 기도(祈禱)이겠지만, 닿아 무너질 듯 안간힘의 기도이기에 이 황막(荒漠)한 세상을 돌고 돌아, 삐그덕 삐그덕 하늘에도 닿을 듯한 저 숨찬 사랑의 메아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詩를 감상하니 문득, '그럼에도 사랑하라'를 말한 <시몬느 베이유>의 글 한 구절이 떠올라 옮겨 본다
- 희선, Simone Weil (1909 ~ 1943)
神이 우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기가 없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이러한 우회(迂回)가 없는 한, 인간은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 눈을 가리고 두 손을 쇠사슬로 지팡이에 묶어 놓는다면
이 지팡이는 나를 주위의 것으로부터 분리시킨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지팡이 때문에 주위의 것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것은 지팡이뿐이고 인지(認知)하는 것은 벽뿐이다.
피창조물들의 사랑하는 능력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초자연적인 사랑은 피조물만이 느낄 수 있고 신을 지향(指向)할 뿐이다.
神은 피조물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들도 그밖에 무엇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러나 중개자(仲介者)로서 사랑한다.
이러한 명목으로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남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에는 대조적으로
자신을 남처럼 사랑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